멕시코 음악이 세계를 넘보고 있다.
배드 버니의 코첼라 공연은 라틴 음악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던 레게톤 장르의 정점이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주도권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 푸에르토리코와 콜롬비아 + 플로리다의 권력 구도를 흔들어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 잡은 세력이 있다. 멕시코와 미국 남서부 지역을 관할하는 레히오날 멕시칸(Regional Mexican) 장르다.
멕시코는 신흥 음악 강국이다. 인구 1억 2,700만 인구를 바탕으로 하는 튼튼한 내수시장과 반다, 듀랑겐세, 그루페로, 마리아치, 노르테뇨, 체하노 등 독특한 자국 전통의 음악 장르가 있다. 2023년 5월 유튜브 US Top Songs 차트의 25%를 멕시코 음악이 차지하고 있다. 2022년 한 해 동안 멕시코 음악은 스포티파이에서 5.6억 회 이상 스트리밍되었으며, 그중 21%가 해외소비였다.
올해는 멕시코 음악 역사상 최고의 글로벌 스타와 메가 히트곡이 등장했다. 1999년생 페소 플루마가 발표한 'Ella Baila Sola'는 4월 한 달 동안 스포티파이 6억 회, 유튜브 8억 회 이상 스트리밍되며 멕시코 아티스트 최초로 빌보드 글로벌 차트 1위에 올랐다. 막노동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페소 플루마는 2023년 최고의 글로벌 히트곡과 함께 슈퍼스타가 되었다.
코첼라에서 무대를 펼친 미국 출신 라틴 팝 아티스트 베키 지는 페소 플루마와 함께한 'Chanel'을 공개하며 차기작을 레히오날 멕시칸 앨범으로 선언했다. 페소 플루마가 노래를 발표하고 나서 10일 후에는 배드 버니가 텍사스 출신 레히오날 멕시칸 밴드 그루포 프론테라와 'un x100to'를 발표했다. 슈퍼스타가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미 이 장르가 라틴 세계에서 센세이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레히오날 멕시칸 음악은 독특하다. 세련된 뎀보우 리듬으로 혁신적인 음악을 들려준 레게톤과 반대다. 슈퍼카를 타고 호화로운 복장을 갖춰 입은 Z세대 음악가들이 그들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가 춤췄을 마리아치 밴드의 반주에 맞춰 노래와 랩을 뱉는다. 한국으로 비유하면 인스타와 틱톡을 능숙하게 다루는 신인 가수가 근대가요 밴드의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격이다.
또한 솔로 곡이 거의 없다. 레히오날 멕시칸 음악가들은 마리아치 밴드와 함께 무대에 오르며 협업을 선호한다. 페소 플루마가 스포티파이 글로벌 톱 50 차트에 올린 6곡 중 다섯 곡이 콜라보레이션 노래다. 배드 버니와 그루포 프론테라, 페소 플루마와 에슬라본 아르마노, 푸에르자 레히다와 에드가르도 누녜즈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페소 플루마가 처음부터 옛 음악을 사랑한 게 아니다. 임영웅처럼 축구 선수를 꿈꾸다 음악의 길에 투신한 그는 힙합과 레게톤 음악을 즐겨 듣는 래퍼 지망생이었다. 하지만 곧 페소 플루마는 자신의 목소리가 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때 그의 귀에 들어온 음악이 전통 멕시코 음악이었다. 오랫동안 라틴 음악 시장에서 구닥다리, 촌스러운 음악이라 비하 받던 장르였지만 멕시코 자국 시장에서는 수요가 있었다. 페소 플루마와 동료 Z세대 뮤지션들이 레히오날 멕시칸 음악의 부흥을 이끌었다.
이들의 주제 선정 역시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멕시코의 전통 시와 노래 형식 코리도(Corrido)다. 코리도는 19세기 멕시코 독립 전쟁 시기부터 멕시코 혁명을 거쳐 일상 속 다양한 주제부터 민중 영웅, 심지어는 범죄자들의 삶을 낭만적으로 그리며 멕시코 민중 사이에서 사랑받는 장르가 되었다. 그게 20세기 중반부터 나르코스같은 최악의 마약상들마저 찬양하여 미국 남부까지 악명을 떨친 나르코코리도스(Narcocoridos) 장르다.
페소 플루마 등 신예들도 과거 나리코코리도스 내용의 음악을 발표한 바 있어 논란이다. 세계 시장 진출, 특히 미국 시장에서 문제가 된다. 다행히 그들은 주제를 한결 가볍게 만들어 접근성을 높였다. 즐거운 파티, 사랑과 이별, 감정의 변화를 노래한다. 일상의 다양한 순간에 공감하고자 음악을 사용하는 틱톡에서 레지오날 멕시칸 장르 음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크리스티안 노달, 나다나엘 카노, 푸에르자 레히다, 게라 엠엑스, 야리차 이 수 에엔시아, 그루포 프론테라 등 멕시코 음악이 세계 시장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들의 강점이 최신 유행의 발 빠른 습득이 아닌, 대대로 내려온 유산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더불어 우리가 '라틴 팝'이라 뭉뚱그리는 시장이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엄밀히 말해 라틴 팝은 라틴 음악의 대중적 갈래 중 하나일 뿐이다. 라틴 음악은 다양한 국가와 각자 독특한 개성으로 무장한 아티스트, 그들이 만들어 내는 장르가 각축을 벌이는 곳이다.
2023/06/21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