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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Power Station : Review, Column, Interview, etc

뉴진스의 'Ditto' 뜯어보기

음악, 가사, 영상, 대표의 이름으로 들어본 선공개곡.

김도헌
김도헌
- 11분 걸림

겨울 컴백을 알린 뉴진스가 12월 19일 싱글 'Ditto'를 공개했다. 2023년 1월 2일 싱글 'OMG'로 컴백하기 전에 먼저 발매한 수록곡이다. 2022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그룹인만큼 반응이 뜨겁다. 두편의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공개 16시간만에 도합 700만 조회수를 돌파했다. 뉴진스의 'Ditto'를 음악, 가사, 영상, 그리고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기준으로 뜯어봤다.

음악 - 250

250은 뉴진스의 'Attention', 'Hype Boy', 'Hurt'를 만들었다. 올해 3월 한국인의 뽕짝 음악을 새롭게 해석한 정규 앨범 '뽕'으로 화제를 모았던 그는 신인 케이팝 걸그룹의 메인 프로듀서로 거대한 성공을 거뒀다.

올해 초 250과 인터뷰를 가졌을 때 그는 명성 높은 미국 드라마 ‘더 와이어’를 언급하며 볼티모어 클럽 장르에 관한 관심을 이야기해주었다. 상반기 앨범 ‘뽕’을 제작하며 빠져있었던 음악 장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볼티모어 클럽은 1980년대 후반 볼티모어의 유색인종 빈민층들 사이에서 하우스, 하드코어, 브레이크비트 등이 결합하여 형성된 음악 장르다. 비모어(Bmore)라고도 불리는 이 장르는 불안정한 4분의 8박자에 빠른 스피드로 사람을 휘청거리며 춤추게 만드는 트랜스 상태의 비트를 유지하며 저속한 가창 샘플을 반복 재생한다.

You Think You Know But You Have No Idea: The Difference Between Baltimore, Philly, and Jersey Club
Here’s how you tell them apart.

'Ditto'가 보도자료를 통해 볼티모어 클럽 댄스 뮤직을 직접 언급해서 재미있었다. 실제로 노래를 들었을 땐 볼티모어보다 저지 클럽(Jersey Club)에 가깝다고 느꼈다. 미국 언더그라운드에서 볼티모어 클럽이 인기를 얻자 가까운 뉴저지에서 발전한 음악이고, 최근 틱톡과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장르기도 하다.

저지 클럽은 BPM이 좀 더 빠르고 파티와 쾌락을 찬양하지만, 볼티모어 클럽 장르보다 부드럽다. 250은 힙합LE와의 인터뷰에서 볼티모어와 저지 클럽의 차이를 분명히 설명한 바 있는데, 나는 그가 이번 곡에서 저지 클럽을 의식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볼티모어 클럽이든 저지 클럽이든 장르를 특정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이 노래가 이 양식을 빌려 어떤 정서를 표현하고 싶은지다.

250은 뽕짝의 핵심 정서를 슬픔으로 이해했다. 그에게 뽕은 눈물이 나고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야 하는 복잡한 아이러니의 표현 수단이었다. 그가 만든 뉴진스의 음악도 슬프다. 몽글몽글한 환상을 아련한 꿈으로 실어 보낸 ‘Attention’도, 안절부절하고 예민할지라도 자신감만큼은 확실한 ‘Hype Boy’, 우울한 목소리로 상처 주고 싶지 않노라 이야기하는 ‘Hurt’ 모두 왠지 모르게 눈물샘을 자극한다.

‘Ditto’도 슬프다. 신스 리프는 너무나 간결하고 멜로디라인은 튀는 부분이 없어 몇 번 들으면 귀에 바로 감기는데 드럼 비트는 잘게 쪼개져 어지럽다. 일단 춤을 추어야 할 것만 같다.

가사 - 검정치마, 우효

검정치마의 올해 앨범 제목은 'Teen Troubles'다. 밴드를 이끄는 조휴일의 십대 미국 유학 시절 자전적인 경험을 담고 있다. 그 배경이 되는 도시가 뉴저지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이민자, 유학생들이 많이 살았던 동네다.

작사란에 이름을 올린 다른 가수는 우효다. 우효는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영국 런던, 서울에 오가며 젊은 날을 보냈다. 'Ditto'보다는 유학생 정서로 가득했던 'NewJeans' 앨범에 참여했을 법한 이들이다.

뉴진스는 'Ditto'를 뉴진스와 그들의 팬덤 버니즈가 함께 맞는 첫 겨울의 수록곡이라 소개했다.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이제 막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신인 그룹이 ‘훌쩍 커버렸어.’, ‘널 보는 내 마음은 어느새 여름 지나 가을’을 노래하며 혼자되기 싫어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이 내겐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뉴진스는 첫 겨울부터 끝을 상정한다. 이 주제 의식은 이어지는 영상에서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영상 - 돌고래유괴단

검정치마 이야기 하나 더. 검정치마는 'Teen Troubles' 앨범 발매와 함께 유튜브 채널에서 16분가량의 단편 영화를 공개했다. 제목은 'Teen Troubles In Dirty Jersey'다. 미국의 어느 한적하고 말라버린 도시에 사는 열일곱 주인공과 친구들의 엉망진창 방황하던 세기말의 기록이 쓸쓸하게 빛바랜 영상으로 남아있다. 돌고래유괴단의 신우석 감독은 Y2K 유행의 정서를 바탕으로 여고괴담2, 경성학교의 미감과 미묘한 긴장감을 영상에 담았다.

돌고래유괴단의 최근 작품 중 'Ditto'와 가장 유사한 결을 지닌 작품은 ‘잠은행’이다. 이말년씨리즈 웹툰 에피소드를 원작으로 한 이 단편영화는 지독하게 우울한 블랙 코미디다.

두개의 사이드로 나눠 발표한 'Ditto'의 정서도 유사하다. 생생한 감정과 분명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모든 순간이 한순간에 흩어질 기억으로 단절되어 사라진다. 아련한 학창 시절의 추억을 놀랍도록 정확히 모사하는데 이것은 최소 20대부터 현재 40대까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MZ세대 틴에이저들을 겨냥한 장치가 아니다.

숱한 오마주와 오브제로 빼곡한 영상은 뉴진스와 버니즈, 케이팝 그룹과 그들의 팬덤에 전하는 기획자의 연약한 약속이다. 삶의 모든 순간을 함께하는 듯 행복하고 아름다운 ‘덕질’은 내 곁에 있는 현실의 누군가로 인해 손쉽게 해체되어버리거나 아예 없었던 것이 되어버린다.

관심, 하입, 사랑을 원하는 우상들은 거대한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사랑에 익숙해졌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조리 물이 빠져버린 간석지를 보며 망연자실한다. 그런데도 사랑해달라, 기억해달라는 간절한 외침이다. 에프엑스와 샤이니, 엑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영상은 호기심을 더 많이 가지고 그룹의 서사에 더 깊이 이입할수록 빠져나올 수 없는 수많은 장치들을 무심한 듯 툭 툭 던져 넣은 작품이다. 누군가는 힘주어 해석하며 다양한 심상과 영상의 바탕이 되는 다양한 대중문화 IP를 논할 때 다른 한 편에서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을 수 있다.

민희진

케이팝을 소비하는 이들 대다수가 이 산업의 한계와 현실의 모순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이 이 기묘한 트루먼 쇼에 사랑을 아끼지 않고 감정을 이입하는 이유는 열정을 다하는 청춘과 그들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위해 번잡한 고민 없이 오로지 직진하는 저돌적인 면모에 있다.

뉴진스는 그 극한을 지향하는 그룹이었다. 그들이 새 시대 걸그룹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나는 그들이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기획자의 취향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여 전달하는 케이팝이다. 뉴진스는 소녀시대, 카라가 아니라 S.E.S.나 핑클에 가깝다.

그래서 'Cookie' 논란에 대한 민희진 대표와 어도어의 입장문은 어리석었다. 뉴진스를 소비하는 이 복잡미묘한 감정을 모조리 무시하고 기획자가 전면에 나서 제작 의도를 설명한 순간 낭만의 모큐멘터리는 잔혹한 다큐멘터리로 전락했다. 푸르른 대양 끝에 다다랐다 믿었을 때 쿵 하고 카누가 벽에 부딪혀 당황하는 팬들 앞에 세계 기획자가 친히 문을 열고 내려와 조잡한 하늘 바탕 시트지를 스스로 떼어내버린 셈이다.

'Ditto'를 바라보는 감정도 양가적이다. 난 벌써 작별을 생각하는 이 슬픈 팬송이 갓 데뷔한 뉴진스에게 어울리지 않는 곡이라 생각한다.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데 몸과 마음은 다 자라지 못해 괴로워하는 그런 젊음의 고독이라면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메시지와 철학 역시 지난 의견문의 논조가 아른거리면서 결국 그룹 대신 대표와 회사의 이야기만 남겠다는 생각이 든다. '출산한 기분이 든다'는 민희진 대표의 인터뷰는 더욱 몰입을 방해한다. 뉴진스가 기대 이상으로 성공했기에 당분간 이 기조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뉴진스는 매력적이다. 아름답고 재능있는 멤버들이 세련된 노스탤지어와 신세대의 동경을 자극한다. 그러나 마음 놓고 애정 쏟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KPOPFeatures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김도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