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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Power Station : Review, Column, Interview, etc

베트남 스타가 틱톡을 정복하기까지

'띵띵땅땅' 리듬 아래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있다.

김도헌
김도헌
- 17분 걸림

​틱톡은 노래 격전지다. 기본적으로 15초, 길게는 60초까지 짧은 시간 내에 사람들이 춤을 추고 특정 동작을 하게끔 만드는 중독성을 갖춘 노래가 우후죽순 등장하고 또 사라진다. 일반적으로 틱톡에서 가장 인기 있는 노래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빠르기는 125.4 BPM에 길이는 19.5초라고 한다. 형식만 지켜지면 나머지는 자유로운 편이다. 노래의 언어, 노래의 국적, 노래의 주인공, 심지어 노래의 원래 형태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덕분에 틱톡은 평소 접할 수 없었던 다양한 국가의 노래를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전 세계 노래들이 다양한 형태로 가공되어 수많은 콘텐츠의 배경음으로 사용되고 있다.

2022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소셜 미디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챌린지 곡으로 거듭난 노래가 있다. 베트남 가수 호앙 투 링(Hoàng Thùy Linh)의 'See Tình'이다. 틱톡 피드,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띵띵띵띵', '띵띵땅땅'이 바로 이 노래다. 정확히는 'See Tình' 원곡을 댄서블하게 리믹스한 쿠캑(Cukak)의 리믹스 버전으로, 후렴구 '띵띵땅땅' 파트의 중독성과 몽글몽글한 댄스곡이 틱톡 유저들의 선택을 받아 짧은 시간 내에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콘텐츠로 발전했다.

원곡 표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틱톡 특성상 다양한 버전이 난무하고 있으나 노래 기반의 콘텐츠 수는 현재 적게 잡아도 수백만 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중국에서만 추정되는 이 노래 관련 동영상 조회수가 40억 회 이상이다. 한국에서도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널리 알려지다 얼마 전 한국 여자배구 V리그 올스타전에서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소속 미들 블로커 이다현이 세리머니로 춤을 선보이며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 곡이 되었다.

챌린지에 힘입어 호앙 투 링도 가수 인생의 전성기를 마련했다. 그는 지금 베트남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수다. 유튜브 구독자 수 162만 명, 틱톡 팔로워는 52만 명이 넘는다. 2022년 8월 11일 발표한 네 번째 정규 앨범 'Link'는 'Gieo Que', 'See Tình', 'Đánh Đố', 'Bo Xì Bo', 'Hạ Phỏm' 다섯 곡을 싱글 릴리스했다. 틱톡 바이럴을 일으킨 'See Tình'와 'Bo Xì Bo'는 베트남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비평적으로도 성공했다. 베트남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시상식 그린 웨이브 뮤직 어워즈(Green Wave Music Awards)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사운드 믹싱 부문을 수상했다. 또 다른 시상식 데디케이션 뮤직 어워드(Dedication Music Awards)에서 'See Tình'가 후보 지명되지 않아 논란이 될 정도였다. 음악 웹진 피치포크 사이트에서는 7.2점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여기까지는 다소 평범한(?) 틱톡 바이럴 히트 곡의 사연이다. 혹자는 호앙 투 링을 통해 베트남 팝을 지칭하는 브이팝(V-POP)의 놀라운 성장세를 주목해 볼 수 있다 (실제로 베트남 현지 보도에서는 싸이 '강남스타일'의 성공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자주 보인다). 최근 유행하는 틱톡 바이럴 히트곡을 검색하여 원작자를 확인할 수도 있다. 그런 해석도 의미가 있지만, 나는 'See Tình'와 호앙 투 링에게 찾아온 의외의 운명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다. 'See Tình'는 원곡과 전혀 다른 형태로 바이럴 히트를 기록했다. 가수의 삶은 더욱 극적이었다. 지금은 슈퍼스타지만, 호앙 투 링은 어린 나이에 엔터테이너의 꿈을 포기해야 할 위기를 겪었다.

베트남, 스페드업, 베트남

Hoàng Thuỳ Linh & ĐEN - Gieo Quẻ (Casting Coins) | Official Music Video

챌린지로 'See Tình'을 알게 된 이들은 원곡을 듣고 나서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베트남의 히트 프로듀싱 팀 DTAP이 작곡한 이 노래는 베트남 남부 메콩강 삼각주의 까이랑 수상 시장의 풍경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는데, 그래서 노래 뮤직비디오에서 호앙 투 링은 분홍빛의 한 마리 잉어로 분해 건장한 청년 어부를 유혹하는 옛날이야기 속 주인공을 연기한다. 베트남 음악 시장은 베트남 전통 요소의 활용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데디케이션 뮤직 어워드가 'See Tình'을 시상식에서 제외한 이유도 코로나19 시기 베트남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는 'Gieo Quẻ'에 더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었다.

노래를 좀 더 알아보자. 'See Tình'는 캘빈 해리스(Calvin Harris)의 'Feels'와 도자 캣 & 시저(Doja Cat & SZA)의 'Kiss Me More'를 닮아있는 디스코 팝이다. 장난스러운 리믹스 버전과 달리 원곡은 97 BPM의 여유로운 R&B 디스코 팝이다. 가사는 매우 로맨틱하다. 십 대 시절의 첫사랑을 떠올리며 가사를 쓴 호앙 투 링은 '사랑을 보다', '사랑에 빠지다'의 중의적인 표현을 후렴부의 반복되는 '띵띵땅땅'으로 표현했다. 부드러운 노래에서 가장 귀를 잡아끄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파트가 'See Tình'의 예기치 못한 성공을 불렀다.

Hoàng Thuỳ Linh - See Tình | Official Music Video. 챌린지 원곡이다.

요즘 틱톡에서는 스페드업(Sped-Up)이라는 장르가 한창이다. 스피드 업(Speed Up)의 줄임말로, 원래 노래의 100%, 혹은 150% 이상의 속도로 빠르기를 조정한 음원을 뜻한다. 당연히 보컬은 앨빈과 슈퍼밴드의 다람쥐 목소리처럼 가늘어지고 세련된 비트는 납작한 형태로 가공된다. 이 특징이 빠르게 콘텐츠를 소비하는 숏폼 동영상의 특성과 자극적이고 재치 있는 음원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아떨어졌고, 틱톡에서만 적게는 수백만, 많게는 수십억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지금은 웬만한 가수들이 스페드업 버전의 노래를 공식 발매할 정도다.

스페드업 장르의 역사는 2000년대 나이트코어(Nightcore)의 부흥으로부터 출발한다. 나이트코어는 원래 노르웨이의 DJ 듀오 나이트코어의 이름으로부터 탄생한 흐름으로, 원곡의 속도를 빠르게 조절하고 피치를 높여 서브컬쳐 성향이 물씬 풍기는 썸네일을 등록하는 리믹스의 경향을 의미한다. 이들의 리믹스는 원곡의 저작권을 침해한다는 민감한 부분부터 단순 배속과 음정 조절이 어떻게 창작으로 불릴 수 있냐는 장르 팬들의 공격이 쏟아져 독립적인 음악 장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음악 저작권 침해가 심각한 베트남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나이트코어 리믹스가 쏟아져 나왔는데, 그럼에도 일단 빠르고 신나기 때문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들의 리믹스를 주목한 찰리 XCX(Charli XCX), 소피(SOPHIE) 등 아티스트들이 하이퍼팝의 등장에 공헌하는 등 아주 의미가 없는 흐름은 아니었다.

'See Tình'의 성공도 원곡을 배속한 리믹스 버전 덕이다. 베트남의 DJ 쿠캑(Cukak)이 다소 얌전한 노래의 템포를 높이고, 리듬감 있는 비트와 중독적인 전자음 후렴을 더하자 모두가 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이 곡은 틱톡의 스페드업 버전과는 달리 호앙 투 링의 목소리를 온전히 살렸다. 보통 스페드업되는 노래가 목소리까지 바꿔버리는 경우를 생각하면 특이한 경우다. 당장 현재 바이럴을 일으키고 있는 '나문희의 첫사랑'도 허밍 어반 스테레오의 'Banana Shake'를 빠르게 배속한 몬더그린을 기초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히트를 기록함은 물론 원곡과 아티스트의 이름을 각인하는 데 큰 공을 세운 결정이었다.

그래서 베트남 매체들은 이 경향을 나이트코어가 아니라 베트남의 하우스 음악을 지칭하는 비나하우스(Vinahouse)로 짚는다. 실제로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2008년 중후반부터 베트남 주요 대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한 비나하우스는 EDM의 흥행 요소에 베트남 전통의 음계를 더하고 140 BPM에 달하는 빠른 속도를 통해 현재 베트남 대중음악 시장의 주요 장르로 자리 잡았다. 틱톡은 리믹스 곡들의 글로벌 도약 발판이 되어준다. 지난해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제로투 댄스의 원곡도 베트남 가수 파오(Pháo)와 프로듀서 CM1X의 'Hai Phút Hơn' 카이즈(KAIZ) 리믹스 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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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앙 투 링의 인생역정

노래와 관련된 내용도 흥미롭지만, 더 인상적인 지점은 호앙 투 링이 걸어온 길과 그가 베트남 연예계에서 갖는 의미다.

1988년 하노이에서 태어난 호앙 투 링은 십 대 시절부터 스타였다. 걸그룹 '티엔 턴'의 멤버로 활동하던 그는 2006년 유명 잡지사 콘텐츠 1위에 오른 것을 계기로 각종 TV 프로그램 호스트와 광고 무대를 섭렵했다. 이후 7년 동안 하노이 예술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며 내공을 다지던 그는 16살부터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본격적인 배우의 길을 걷게 되는데, 2007년 모범적인 고등학생들의 삶을 그린 '방 안(Vang Ahn)의 일기'라는 시트콤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베트남이 기대하는 차세대 스타로 거듭날 준비를 모두 마친 상황이었다. 그러나 곧 '방 안'은 모두에게 지우고픈 이름이 되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베트남에서 큰 사건으로 남아있는 '방안 스캔들'이 시작된 것이다.

2007년 10월 11일 호앙 투 링과 당시 남자친구의 성관계 영상이 인터넷에 급속히 퍼졌다. 남자친구는 성관계 영상을 촬영한 후 그 영상을 자신의 노트북에 저장하였는데, 그 사실을 잊고 지인에게 노트북을 빌려주는 바람에 영상이 복제됐다. 호앙 투 린과 시트콤이 워낙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터라 베트남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총 14명이 용의자로 베트남 경찰에 불려 가 수사를 받았고, 동영상 유포에 직접 가담한 네 명은 구속되었다.

호앙 투 링은 명백한 피해자였다. 당시 하노이 공안 국장이었던 응우옌 둑 퀵 소장 역시 호앙 투 링과 남자친구는 아무 잘못이 없음을 밝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00년대의 연예계에서 이런 스캔들이 터졌을 때 대중은 여성을 비난했다. 성관계 영상 촬영 및 유포에 동의하지 않았던 백지영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슈퍼볼 무대에서 저스틴 팀버레이크에게 최악의 행동을 당한 자넷 잭슨이 학부모단체의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던 시절이었다.

가족 단위로 '방 안의 일기'를 즐겨 보던 베트남 대중 역시 혼전 성관계를 맺은 호앙 투 링을 맹렬히 비난했다. 언론은 그를 동정하는 척 비판했고, 베트남 정부는 방송국을 공개 비판하는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시트콤은 중단되었고, 호앙 투 링은 눈물을 흘리며 시청자들에게 사과했다. 휴대폰 번호가 유출되며 가족들을 향한 공격이 쏟아졌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행히 세상은 느리지만 변하고 있었다. 사회적 매장 위기에 놓인 호앙 투 링을 옹호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영상을 유포한 이들이 비판받아야 하며 호앙 투 링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라 말한 자유아시아방송의 보도, 베트남에 불어닥친 서구화 물결 가운데 신세대와 기성세대의 가치관 갈등을 대표하는 사례로 이 사건을 언급하며 보수적인 베트남 사회를 지적한 벤 스토킹(Ben Stocking) 등이 호앙 투 링을 지지했다. 젊은 베트남 청년들도 여성에게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 분위기에 반발하며 호앙 투 링에 대한 공격을 비판했다.

마음을 추스른 호앙 투 링은 스캔들 3년 후인 2010년 본인의 이름을 내건 앨범과 함께 가수로 새 출발을 알렸다. 다행히 대중의 인식은 긍정적이었다. 청춘스타에서 성숙한 솔로 가수로의 변신을 시도한 선택이 적중하여 베트남 대중음악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판매량도 준수한 스타가 되었다. 호앙 투 링은 이후 많은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네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광고 모델과 TV 방송 프로그램 출연, 배우로의 새로운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2019년 발표한 싱글 'Để Mị Nói Cho Mà Nghe (Let Mi tell)'는 발매와 동시에 베트남 유튜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노래가 되었으며 현재까지 유튜브 조회수 1.7억 회를 기록했다. 현재 'Link' 앨범과 'See Tình'의 성공은 이런 굴곡진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낯선 것에 대해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다. 모르는 것에 대한 예민한 반응이 인간의 본능이라지만, 그것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대신 미지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여 평가절하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장황한 이유가 등장하지만 결론은 단순하다. 생각하기 싫고 귀찮아서다.

호앙 투 링과 'See Tình'의 성공이 남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틱톡 챌린지의 위력은 모두가 인정하나 그것의 가치와 사회적 배경을 진지하게 논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자주 들리는 건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부정적 인식, '잼민이'라 불리는 젊은 세대 취향에 대한 은근한 깔보기, 우월 의식이다. 성관계 영상 유포 피해자임에도 질타를 받고 십대 시절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낸 호앙 투 링 역시 보수적인 사회 시선에 큰 상처를 입은 인물이다.

안이한 생각과 자기확신, 배타적인 태도를 걷어내면 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즐겁고 설레는 '띵띵땅땅' 리듬 아래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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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김도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