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미우 & 황소윤, 아버지가 이어준 인연을 세계로
"실마리가 풀리는 기분이네요."
사카모토 미우. 사카모토 류이치와 야노 아키코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6세 나이로 아버지가 작곡한 노래 ‘The Other side of Love’와 함께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일곱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며 일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친 그는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던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아 구분과 경계 없는 음악 경력을 쌓아 올렸다. 에세이스트, 라디오 DJ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인 그는 생전 한국 문화에 꾸준히 관심을 보였던 아버지처럼 한국에 많은 애정을 보인다.
2023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심사위원을 맡으며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그가 12월 27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첫 내한 공연을 펼쳤다. 공교롭게도 세종문화회관은 사카모토 류이치가 2012년 트리오 내한 공연을 펼친 곳이다. 2023년 3월 28일 세상을 떠난 시대의 음악가였던 아버지의 뜻을 이어 사카모토 미우도 더욱 활발한 국제적 활동을 통해 그의 음악, 아버지의 음악을 알리고자 한다.
공연 다음 날 사카모토 미우와의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 자리에는 생전 사카모토 류이치와 친분을 맺었던 밴드 새소년의 리더 황소윤 씨가 함께했다. 황소윤은 전날 공연 중 깜짝 게스트로 등장해 ‘The Other Side of Love’를 부르며 새로운 감동을 불어넣었다. 인터뷰는 미우 씨와 소윤 씨의 대화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어제 사카모토 미우씨의 공연에 깜짝 게스트로 등장한 소윤 씨를 보며 많은 관객들이 놀랐습니다. 두 분의 합동 무대는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사카모토 미우 : 아버지께서 밴드 새소년과 소윤 씨를 소개해 주어 반했습니다. 일본에서 새소년 공연을 보고 나서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고요. 언젠가 같이 공연했으면 좋겠다고 줄곧 생각해 왔는데, 원래 소윤 씨는 사전 일정이 있어 참가를 못 하는 상황이었어요. 다행히 기회가 되어 저의 무대에 초대할 수 있었어요.
황소윤 : 당연히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미우 씨가 노래할 때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고, 인연을 맺으면 보탬이 될 수 있는 데까지 도와드려야 한다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카모토 미우 : 소윤 씨가 무대 위에서 감정을 터트리는 모습이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동경의 마음이 든달까요. 소윤 씨의 표현법은 제가 해보지 못한 방법이거든요. 반대로 만났을 때는 굉장히 침착하고 조용한 인상이에요. 음악을 하실 때만 그러신 건가요?
황소윤 : 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점점 자유롭게 제가 원하는 대로 음악을 펼치고 있어요. 이번에 월드 투어를 하면서 더 그런 경험을 많이 느꼈는데요. 정확하게 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무대나 음악은 순간을 기록하는 일이거든요. 그 순간에 강하게 몰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다짐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여러 가지 경험을 온전히 다 받아들이자, 좀 더 유연해지고 자유롭게 행동해야 하는 그런 경험을 반강제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사카모토 미우 씨는 어제 첫 내한 공연을 잘 마쳤습니다. 공연은 어떠셨습니까?
황소윤 : 저는 게스트라서 중간에 등장해야 하는 입장인지라, 무대를 보면 안 된다고 관계자분들께서 말리시더라고요. 객석에 갔다가 대기실로 다시 돌아와야 해서요. 하지만 미우 씨의 공연을 꼭 보고 싶었어요. 중간에 공연을 봤죠. 저와는 굉장히 다른 문법을 가지고 있는 무대였어요. 세종문화회관은 제가 평소 공연하는 환경과 정말 다른 곳이었고, 극장이 주는 압도감이 너무 생경했어요. 미우 씨의 온전한 영혼에 집중하게 되는 공연이었습니다. 온화함과 따뜻함을 너무 과하지 않게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이 곡은 이런 곡입니다'라고 설명해 주시는 내용을 상상하며 음악을 들었는데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보통 저는 공연을 많이 보지 않을뿐더러 이런 소규모 공연을 볼 기회는 더욱 적었는데, 덕분에 진심으로 즐겁게 지냈습니다.
사카모토 미우 : 극장 말씀을 하셨는데, 소윤 씨의 말처럼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 공연은 처음이었어요. 일단 저는 라이브를 친밀하도록 꾸미고 있어요. 관객 한 분 한 분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거든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노래가 많다 보니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게끔 하고 싶습니다.
소윤 씨와 함께 부른 곡은 미우 씨의 ‘The Other Side of Love’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곡이기도 한데요. 이 노래를 고른 이유가 있을까요.
사카모토 미우 : 영어 가사라 같이 부르면 좋지 않을까, 우선 그렇게 생각했고요. ‘The Other Side of Love’를 16살의 제게 만들어 데뷔하게 해주셨던 아버지와의 추억, 그리고 아버지께서 소개해 주신 소윤 씨와의 인연을 떠올려 결정했습니다. 이 노래는 제게 시작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앞으로 한국에서의 활동을 시작한다는 뜻도 전하고 싶었어요. 여러 가지 의미의 ‘시작'을 알린 노래였어요.
아버지가 작곡해 주신 노래를 아버지가 소개한 후배 음악가와 노래하는 경험이 독특했을 텐데요.
사카모토 미우 : 독특한 경험이었고, 어떻게 보면 좀 신기했어요. 그리고 공연 전날 한국에서 아버지의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가 개봉했어요. 때마침 보름달도 떴어요. 아버지의 책 제목이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잖아요. 게다가 어제 공연에는 아버지의 오랜 친구분께서도 찾아와주셨죠. 시간대가 맞아떨어진다는 점이 신기했어요. 아버지께서 앞으로 음악을 좀 더 즐겁고 재미있게 하라고 이끌어주신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소윤 씨가 기억하는 사카모토 류이치 씨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황소윤 : 사카모토 류이치 씨와는 인터넷으로 3~4번 정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고 이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그의 음악과 영향에 대해 대답하게 되지만, 오늘은 그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 이야기해 보고 싶네요. 그가 가지고 있었던 따스함이 제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단단히 얼어있는 부분을 녹여주었습니다. 나를 이렇게까지 안아주는 사람이 있구나, 그런 안도를 많이 받았어요. 그 든든한 마음과 믿음이 아직도 제 가슴속에 남아있어요. 미우 씨를 만났을 때도 그 온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 씨는 앞으로 저의 음악 인생에서 흔들리고 괴로울 때마다 사카모토 류이치 씨를 떠올리며 저를 있는 그대로 깊은 속까지 바라봐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카모토 미우 : 저는 처음 소윤 씨를 만났을 때 물론 팬의 마음도 있었습니다만, 먼저 이 사람을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가수로서의 황소윤보다 이 여자아이가 궁금하다. 아마 아버지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로 생각합니다.
황소윤 : 미우 씨의 공연을 보며 ‘아, 이 사람은 정말 진실한 사람일 것 같아. 사카모토 류이치 씨가 내겐 진실한 사람이었으니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음악가는 그가 하는 음악이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질과 추구하는 방향에 담긴 마음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거든요. 가장 치열하게 자신의 것을 남겨온 사카모토 류이치씨도, 미우씨도 저의 마음을 봐주신 것이 아닐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누군가를 바라볼 때 그런 시선을 갖추고 싶다고 다짐했고요.
사카모토 미우 : 제가 음악을 시작한 지 27년째가 됩니다. 이제는 인생 자체가 음악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20대 때는 당연히 그러지 않았죠. 현재의 생활과 사고방식이 모두 저의 음악으로 만들어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무대에 올렸을 때 음악가 미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미우가 나가서 노래한다는 마음을 갖고요. 40대가 되니까 그런 점이 많이 느껴지네요. 소윤 씨도 이제 계속 음악을 해나가게 될 거예요. 나쁘지 않은 의미의 ‘일체화'죠. 저희 아버지는 매사 호기심이 많으신 분이셨기에 굉장히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다루셨어요. 매우 많은 도전을 하시다가 말년에는 심플한 피아노로 돌아오셨거든요. 인생 자체가 하나의 소리가 되었다고 할 수 있죠. 저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황소윤 : 실마리가 풀리는 기분이네요.
사카모토 미우 : 이제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자, 어떻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진 않아요. 내 삶을 좀 더 잘 살아내고,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살면 되지 않느냐는 마음을 갖고 있죠. 그러다 보니 음악이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생각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제가 약한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래 음악을 해 온 사람으로서 그런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씨가 미우 씨에게 소윤 씨를 소개한 것처럼, 각자 생각하기에 추천하고 싶은 자국 아티스트를 알려주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황소윤 : 피아니스트 진수영 씨가 떠오릅니다. 한국은 일본과 미국에 비해 국가가 가지고 있는 정서를 음악에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진수영 씨의 음악은 그를 잘 표현해서 좋아합니다.
사카모토 미우 : 저는 일본 밴드 로트 바롱을 추천하겠습니다.
최근 한일 양국의 아티스트들이 많이 교류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한국 팬들도 일본 음악을 최근 많이 찾고 있고, 일본에서도 한국 음악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새소년도 월드 투어를 다녀왔고, 미우씨도 한국에서 공연을 펼치셨습니다. 앞으로 세계 무대에서 어떤 무대를 펼치고 싶으신가요?
사카모토 미우 : 어제 공연하면서 언어에 장벽이 없다는 걸 다시 느꼈습니다. 다른 음악가들도 이야기하는 부분인데요. 제 가사가 일본어 혹은 영어지만 제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과 느낌은 관객분들에게 온전히 가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고 있어요. 저는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울림을 굉장히 좋아해요. 좀 더 한국에서 여러 공연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한국어와 일본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살려서 두 가지 언어로 같이 협업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윤 씨와 좀 더 많이 노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소윤 씨의 목소리로 좀 더 심플한 멜로디의 발라드곡을 불러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황소윤 : 저는 다시 한국 안에서만 활동하던 시기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어요. 언어의 제약 없이 음악으로 소통하는 과정을 직접 경험했고, 이를 다시 음악으로 만들어 돌려드릴 시기가 올 거라고 믿어요. 한국에 있는 사람들만 저의 음악을 사랑해 줄 거라 생각하고 음악을 만들던 때는 지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