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노을(Parannoul)과의 대화
"저도 님들을 응원합니다."
3월 9일 슬로우다이브(Slowdive)의 내한 공연 오프닝 무대에 파란노을이 선다는 소식은 한국 인디 팬들에게 화제였다. 2023년 세번째 정규 앨범 'After The Magic' 발표와 공연 이후 오랜만에 오프라인 무대에 서는 파란노을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공연을 펼칠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고보니 3집과 라이브 앨범 'After The Night' 이후 파란노을의 소식은 뜸했다. 밴드캠프를 통해 해외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며 참여한 여러 곡 외에는 그의 블로그를 통해 간헐적으로 업로드된 내용과 차기작에 대한 힌트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년 전 새 아티스트의 등장에 열광하며 상찬의 언어와 본인의 추억을 아끼지 않던 이들은 파란노을의 이름을 금세 잊었다.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파란노을은 '청춘반란'을 부르짖다 사라져간 수많은 인디 뮤지션 중 한 명이었고, 겪어보지 않고 이해할 생각도 없는 '요즘 20대'를 설명할 때 사용하기 편리한 상징이었다."
지난해 작성한 After The Magic 리뷰 처럼 신예의 등장에 찬사와 미사여구를 아끼지 않던 이들은 금세 사라졌지만, 파란노을은 충실한 음악 활동을 통해 세계적으로 견고한 팬층을 확보하며 근사한 음악 활동을 펼치고 있다. 파란노을의 근황, 그리고 생각이 궁금해졌다. 우려와 다르게 그는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했다.
2021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이후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 기사가 많지 않았습니다. 해외 매체도 Sleep Like a Pillow, RYM과의 2021년 인터뷰 이외 내용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인터뷰가 많지 않은 이유에 대해 궁금합니다. 인터뷰를 거절하신 것인지, 인터뷰 요청이 없었던 것인지를요.
제 이미지가 조용해서 그런지 얘기할 거리가 없어서 그런지 안 유명해서 그런지 사실 요청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3월 9일 슬로우다이브의 내한 공연 오프닝 공연 무대를 서게 되었습니다. 오프닝 공연 제안을 받았을 때의 소감은 어떠셨나요. 평소 슬로우다이브의 음악을 자주 들으셨나요.
슬로우다이브는 어릴 때부터 즐겨들었기에,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땐 많이 기쁘면서도 한국에 저보다 슈게이즈를 잘 하는 밴드들이 많을텐데 1인 밴드이고 경험도 없는 저를...?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평생을 합쳐서 세 번째 라이브인데 이렇게 큰 무대에 서게되니 불안감도 많이 들었고요. 그러나 지금 아니면 이런 기회가 언제 오겠냐 싶어서 냅다 수락했습니다.
슬로우다이브의 공연을 위해 어떤 밴드 구성으로 어떤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밴드 형식으로 준비했습니다. 몇몇 분들은 달랑 노트북이랑 키보드 하나 들고가서 원맨쇼 할 거라는 말도 있었는데 이런 큰 곳에서 그러면 현장에서 돌팔매질 받을 것 같아서요... 또 제가 라이브를 많이 하지 않는 편이라 이번 기회에 오랜만에 밴드 셋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2023년 상상마당에서의 라이브 공연 이후 오랜만에 대중 앞에서 무대를 서게 되었습니다. 오프라인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은 어떻습니까.
공연하는 건 늘 새롭고 재밌습니다. 작년 단독 공연때도 제 음악에 맞춰 가사를 따라 불러주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그런 분들을 보면 괜시리 기분이 좋고 내가 방구석에서 이 정도 자리까지 올라왔구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반면 공연 준비는 워낙 제 성격이 외향적이지 않고 집에만 있으려다 보니 많이 힘들어요. 셋리스트 짜고 한 번 합주하는데 돈도 많이 깨지고 이러다 보면 '다시는 안 해야지'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지만 그래도 그럴 때마다 앞서 말했던 관객들을 떠올리면서 힘도 보충하고 그럽니다.
게르다의 공연 이후 두번째 게스트 공연입니다. 게스트 공연 외 오프라인 공연에 대한 계획이 혹시 있다면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직 없습니다. 있다 해도 비밀이에요.
최근 일본 여행에 다녀오신 후 구입한 앨범을 블로그에 공개하셨습니다. 근황에 대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냥 집에서 혼자 작업하면서 심심하면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보고 그럽니다. 딱히 건실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After The Magic 앨범 이전까지 정규와 EP를 꾸준히 발표하였는데요. After The Magic 앨범 이후로는 파란노을의 이름으로 1년정도 공백기를 가져가고 있습니다. 앨범 발매 후 어떤 창작을 하고 계신가요.
그냥 대중적인 것 마이너한 것 이것저것 쑤셔보고 있습니다. 제작년부터 머릿속에 떠올린 기깔나는 아이디어가 있는데 모종의 이유 때문에 지금까지 못해왔거든요. 올해엔 누가 먼저 가로채기 전에 꼭 세상에 발표하고 싶습니다. 세상은 1등만 기억하잖아요?
발매 이전에 단독 공연을 진행한 다음 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라이브 일정과 앨범 발표의 과정을 어떻게 구상하셨나요.
그 당시 앨범 진척이 너무 늦어져서 블로그에 2022년 11월에 내겠다! 했다가 결과물이 너무 안좋아서 일보 후퇴하고 2023년 1월에 낸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때마침 상상마당 측에서 단독공연 오퍼를 제안해주셨고 발매 시기와 맞아떨어져서 이참에 선공개 공연을 하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지요. 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었고 어쩌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가상 악기 대신 실제 악기 연주와 뮤직비디오, Digital Dawn 및 동료 음악가들과의 협연으로 빛난 앨범으로 After The Magic을 기억합니다. 블로그에서 짤막하게 설명하셨습니다만,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으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제 말이 모호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어릴 적 겪은 꿈을 토대로 현실의 자신과 근심걱정 없고 하하호호하는 꿈 속 자신을 계속 비교해서 이유 모를 괴리감을 느끼게 만든 앨범이에요. 그 꿈을 묘사하기 위해 현악기 연주가 필요했고, 이렇게 된거 실제 기타도 써보는게 어떻겠나라는 발상이 떠올라 약 1년 반 동안 엎고 뒤엎고 고생했어요. 그 중 이 영상이 꿈의 시각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어요.
가사에 언급되는 민들레라던가 여러 부분이 이 영화에서 따왔습니다.
꿈은 그냥 메르헨적인 어린이 작품 극장판 줄거리라고 보면 됩니다. 우연히 어릴때로 되돌아가 낯설면서도 그리운 곳에서 잊은 사람들을 만나고 역경들을 헤쳐나가 이대로 해피엔딩인 줄만 알았지만 사실은 꿈의 나와 현실의 나는 완전 다른 사람인... 마지막 곡에서 자신을 잊지 말라는 건 꿈에서의 저이자 꿈이라고 치부했던 과거의 저이고, 전 트랙 '개화'같은 경우는 좀 더 처절하고 명확하죠. 곧 사라질 존재의 회광반조 같은...
사실 이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게 이건 제 설정일 뿐이고 청자들이 알아서 1시간 분량의 영화 스토리를 만들라는 게 제 의도였기 때문에 철저히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이 긍정적이고 밝은 느낌의 트랙들이기에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죠.
앨범은 실제로 아름다움, 의지, 합창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그 핵심에 ‘우리는 밤이 되면 빛난다'가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모집한 전세계 음악 팬들의 목소리가 코러스로 담겨있습니다. 프로젝트의 배경과 실행 과정, 그리고 결과물에 대한 소감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Takagi Masakatsu님에게 영감을 얻었습니다. 'Omusuhi' 앨범 작업 도중 트위터 게시물로 특정 음을 올리고 그 목소리들을 모집하는 프로젝트였는데, 그 랜덤함과 일상적인 소박함의 아름다움이 'Nijiko'라는 곡에 잘 드러나있어요.
대략 200분 훨씬 넘게 보내주셨는데, 합쳐서 들어보니 매우 감동적이었어요. 거기서 몇 개는 (자신의 소원을 말하는 클립이라든가) After the Night에 실리긴 했지만, 사실 소원 클립들은 원래 앨범에 들어갈 예정이었어요. 원래 넣을려던 노래가 구리고 러닝타임이 길어져서 노선이 틀어졌지요... 지금 와서 완성본을 들으니 본래 의도했던 (타카기님 결과물처럼) 개인적인 것들의 조화보다는 그냥 집합이라는 느낌이 강해져서 아쉽습니다.
파란노을의 음악은 언제나 잘 들리는 멜로디를 담고 있습니다만, After The Magic은 더욱 보컬과 메시지가 더 잘 들렸던 앨범이었습니다. 전작에 비해 여러모로 보다 진취적으로, 전진한다는 느낌,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창작 과정에서 특별히 신경을 쓰신 부분이 있다면?
전작에 비해 제일 신경쓰게 된 건 아무래도 프로듀싱이 아닐까 싶습니다. 깔끔하면서도 드럼은 여전히 깨지고 전체적으로 시끄러운 그런 사운드를 원했는데, 제가 믹싱 개념이 전무했기 때문에 공동 프로듀서인 이아직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죠... 결과적으로 보면 꽉 차고 맥시멀리즘하면서도 빌 땐 빈 그 느낌이 만족스럽습니다. 다만 '요소'에만 집중을 하다보니 송라이팅이라던가 곡 구성이 비슷해져서 뒤로 갈수록 질린다는 평을 받았어요. 그 부분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2집 핸드폰 녹음은 당시 제가 보컬에 크게 신경 안쓰기도 했고 (지금도 안하지만...) 환경이 열악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요번엔 녹음에 좀 신경 썼어요.
앨범은 홀로가 아닌 다양한 동료 뮤지션들의 참여로 만들어졌습니다. 도움을 주신 분들에 대한 소개와 감사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꼭 직접적으로 참여하진 않으셨더라도 제게 도움을 주신 전세계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3집을 무사히 완성할 수 있었어요.
'Let’s Walk on the path of a Blue Cat'과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After The Magic'의 세 정규 앨범 제목이 연결되는 지점이 흥미롭습니다. 2집에 대한 설명으로 ‘스무살이 될 때까지 꿈만 꾸던 주인공이 현실을 마주하는 장면을 표현'했다는 표현을 보았습니다.
세 앨범 제목이 연결된다는 건 저도 처음 들어보네요, 저도 흥미롭습니다. 2집은 99% 자전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지금 들어보면 굉장히 얼굴이 빨개지는 부분이 많아요. 그래도 모든 감정은 일시적이기 때문에 힘든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거잖아요? 저는 그런 휘발적인 젊은 감정들을 잊어버리기 전에 음악에 담아 일종의 셀프-박제를 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현실을 마주하는 장면이란, 저는 중학생 때부터 혼자 피아노를 치면서 자작곡 데모들을 만들며 제가 재능이 있다고 믿었어요. 스케치를 만들고 머릿속으로 아케이드 파이어처럼 편곡하며 '요거 발매하면 대박나겠는데?' 라고 자기위로를 했죠. 그러나 현실은 흔한 대한민국 재수생 1이자 음악적으로 이룬 것도 없었기 때문에 현실에 타협해 그 근거없는 자만심을 버려야 했죠. 그런 자포자기적인 심정을 표현한 앨범입니다. 정말 어리고 섣부른 생각으로 만들었기에, 어린 분들이나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를테면 재수라던가 재능 차이라던가)에게나 와닿는 앨범일 거에요. 그렇지 않은 분들은 앨범의 감성이 별로라고 생각하는게 당연하다고 봅니다.
2021년 여러 인터뷰에서 본인을 숨기고, 음악을 만드는 일이 부끄럽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3집은 불친절하지 않았습니다. 매체의 주목과 팬들의 반응으로부터 새로운 다짐을 하신 듯한 앨범이었습니다. 현재 파란노을의 창작관은 어떤 상황인가요.
3집이 다소 친절한 건 예전부터 제가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서지 딱히 제 외부적인 요소에 대한 다짐같은 건 변하지 않았어요. 저는 재밌어보이는 건 다 시도하는 사람입니다, 앰비언트에 꽂혀서 일주일만에 Mydreamfever 명의로 앨범을 만든 적도 있고요. 저는 여전히 지인들에게 음악하는 걸 숨기고 있고, 평소의 자신과 음악에서의 자신을 구분하고 있어요. 밖으로 나서려 하지 않는 이유도 자신감이 없는 것도 있겠지만, 사람들에게 음악 자체로만 기억되고 싶어서인 것도 있습니다. 아이러니한게 저는 음악으로 제 인생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있는데 그 인생을 보여주는 게 싫다니,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줄려는 것도 있겠네요.
Home is Where의 'Long distance conjoined twins' 믹스를 통해 Asain Glow와 함께 참여했습니다. 파란노을의 1집을 떠올리게 하는 믹스가 인상적이었습니다. 1980년대 말 Emo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곡이었습니다. 컴필레이션에 참여하게 된 배경과 곡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Home is Where 분들께 리믹스 앨범에 참여하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았고, 때마침 저도 그들의 1집을 좋게 들었기 때문에 냉큼 수락했습니다. 선정된 곡은 제가 정한게 아닌 거기서 정해준 겁니다. 원곡은 두 코드 무한반복으로 조금 반복이 오래되지 않나는 생각이 들었어서, 보컬만 그대로 냅두고 나머진 완전 뜯어고쳤습니다. 그러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아서요. 저는 리믹스는 원곡과 비슷하면 굳이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대한 원곡과 다른 맛을 주고 싶었어요.
Siren for Charlotte 레이블의 Xtalline : 001 컴필레이션 ‘Acryl’에 참여하였습니다. 2023년 2월 만들어진 신생 레이블로 보이는데, ‘새로운 시대의 부흥을 향한 미적 안목', ‘원경음악'을 테마로 한다는 설명이 인상적입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 참여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cryl이라는 곡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립니다.
이것도 제게 먼저 연락이 왔습니다. 포스트 슈게이즈(Post-Shoegaze)라는 이상하지만 끌리는 단어를 열심히 설명해주셔서, 요것도 재밌을 것 같아 참여했습니다. 재밌을만한 건 무조건 수락하거든요. 저는 포스트 슈게이즈라는 말에 그닥 동의하지 않기에 그들이 정한 장르의 이름을 '리버브 뮤직(Reverb Music)'이라고 얘기했었죠. 이 트랙은 그들이 장르의 예시로 보내주신 '아메리카 민요 연구회'의 곡에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걸 신스게이즈라 해야하나, 아무튼 몽환적이면서도 드림팝과는 확실히 다른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아크릴은 그런 모호한 무언가에 대한 제 나름의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컴필레이션을 들어보면 포스트 슈게이즈에 대한 같은 설명을 들었음에도 전부 다른 음악을 하고 있죠. 그런 부분이 되게 인상적입니다, 각 아티스트들의 생각과 스타일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어요.
블로그에 ‘내년에 큰 거 세 개를 낼 예정이다'라는 포스팅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두 개가 될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젝트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4집 하나랑 다른거 두 개를 구상 중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엎어질 수도 있고 미리 말하면 재미없기 때문입니다.
2022년의 Digital Dawn 공연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현재 참여한 아티스트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을 전개하고 있고, 많은 아티스트들이 파란노을이 그랬던 것처럼 함께하며 의견을 나누고 창작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제2의 Digital Dawn을 기대해봐도 좋을까요?
아뇨, 당분간 그럴 일은 없을 거에요. 사실 디지털 던은 2022년 원맨쇼 공연의 이름이었지 일종의 크루 같은게 절대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어느새 일종의 카르텔인 것처럼 불어났나봐요. 다들 그저 음악 동료일 뿐이지, 장르적으로 크게 겹치지도 않고 DIY 아티스트인 것 빼면 공통점이 그닥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밴드 맛을 봐서 그런지 혼자 노트북 끼고 둥가둥가하는게 이젠 어색하네요.
Digital Dawn 공연이 파란노을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향후 창작의 방향에 어떤 영향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겐 아주 큰 의미가 있습니다. 처음으로 음악 관련해서 용기를 낸 행동이자 '밖'으로 나간 행위인 거나 마찬가지죠. 당시 퍼포먼스는 그닥 좋지 않았지만 이후 밴드 셋을 할 때도 영향을 주었고요. 음악적으로 외향적이게 되었기 때문에 용기가 생겨서 3집에도 피처링을 여러 번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향후 창작이라기보단, 한국 DIY 씬의 가능성을 보았는지 뭔지, 눈에 띄는 솔로 아티스트가 보이면 슬쩍 밴드캠프에 돈 질러주거나 노래 좋다고 얘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작년 단독공연 때 기타를 쳐주신 Yo 님도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되었구요.
파란노을 이후 인디 음악 팬들 사이에서 슈게이징 장르를 주목하는 흐름이 많이 늘었고 실제로 다양한 방면에서 이모와 슈게이징 등 장르를 결합하는 흐름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미 해외에서는 2010년대 중후반부터 팬데믹 시기를 거쳐 두드러지는 흐름인데요. 현 상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신지요.
다른 곳에서도 슬쩍 언급한 내용이긴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선 온전히 슈게이즈 붐은 오기 힘들다고 봐요. 뭔가 슈게이즈가 떴다기보다는 제 이름이 떴다는 느낌이라, 저를 좋아해주시는 대부분 사람들은 슈게이즈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제가 해외에서 유명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야 아무리 선두주자가 위로 올라가도 낙수효과가 없기에 슈게이즈 붐은 오지 않죠... 제가 2집에서 언급한 '행동하는 찐따'도 이 작디 작은 씬에 슈게이즈나 DIY 음악을 용기내서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래야 어릴 때 이런 음악을 듣고 영향을 받은 아이들이 커서 한국에 좋은 음악을 나눠주는 거죠. 일종의 사이버 농사로 봐주세요.
해외에 로파이 이모가 뜨게 된 지분에는 저보다 Weatherday의 영향이 더 크다고 봐요. 저도 Weatherday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아니면 최근 틱톡에서부터 유행하는 그런지를 섞은 무언가는 quannnic 덕분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러나 모든 장르가 흥망성쇠하듯 곧 사그라들 겁니다. 어쩌다 메인스트림이 이 스타일을 찍먹해서 크게 소비된 후 사람들이 질려해서 버려진다던가, 아니면 이대로 다소 마이너하게 유지되다 흐지부지되던가 둘 중 하나겠죠.
제가 보기에 슈게이즈가 유행하는 이유 중 대부분이 만들기 쉬워서라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뭐든지 진입장벽이 높으면 시도할 엄두조차 나지 않잖아요? 그런데 DIY 슈게이즈는 유튜브에 튜토리얼만 쳐도 친절하게 다 알려주고, 심지어 DAW 기본 내장악기로도 비슷한 사운드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예전 힙합처럼 어린 아티스트들이 많이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향후 음악시장을 완전히 뒤바꿀 AI까지 얘기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그건 너무 나간 것 같네요...
파란노을님께서도 활동하셨던 포스트락 갤러리가 현재 한국 음악 신에서 활발한 음악의 팬 혹은 창작가로 활동하며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왑띠님의 기획으로 포스트락 갤러리 컴필레이션 앨범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포스트 락 갤러리는 파란노을님에게 어떤 공간인지, 향후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는지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디시인사이드 인식이 좋지 않죠... 그래도 고등학생 때부터 유용하게 써온 곳이기에 애착이 많이 갑니다. 디씨이기 때문에 분명 해악적인 면도 있고, 가끔 들어가보면 예전보다 글의 질이 나빠진 것도 있지만 그래도 리스너들 수용소 중 하나가 없어지면 허전할 것 같아요. 컴필레이션 앨범을 들어보면 대부분 로파이한 락 트랙이신데, 그런거라도 시도해보며 음악을 하는 건 매우 좋은 현상이에요. 뭐든지 처음은 빈약하지만 한 번 원동력이 생기면 그 후엔 '나는 마치 인간 폭주기관차다~'같이 혼자 알아서 작업물을 만들거든요. 그러다 하나 얻어걸려서 뜨게 되면 좋게 풀리는 거고, 아니어도 저를 포함한 누군가는 당신의 음악을 기억해줄 겁니다. 제 2집에 크게 영향을 준 국내 아티스트처럼요... 10년 후 포스트락 갤러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 한국의 여러 유망한 아티스트들이 상주했던 곳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최근 즐겨 들으시는 음악을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최근엔 12 Rods라는 밴드에 빠졌습니다. 첫 EP 'Gay'가 피치포크 만점을 받고 레이블에서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다 결국엔 보컬분이 파산해서 해체된 비운의 밴드이지만, 파워풀한 인디락과 예측불가한 코드진행이 저의 취향에 딱 맞아요. 그 외엔 Hakushi Hasegawa나 Akutagawa 같이 예전부터 듣던 일본 분들을 듣고 있습니다. 사실 남의 작업물보다는 제 데모곡들을 더 많이 듣습니다. 매번 들을때마다 어딜 어떻게 고쳐야할지 눈에 보이기 때문에.
향후 파란노을의 작품에 힌트가 될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해주신다면?
Walrus의 '光のカケラ', The Brave Little Abacus의 모든 앨범, 그리고 제 2집을 들으면 4집을 다 들으신 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오랜만에 오프라인 공연장에서 만날 슬로우다이브, 그리고 파란노을의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모두들 사랑합니다 슬로다이브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