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드(jerd) 인터뷰
앨범을 내고 나서 무언가를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싱어송라이터 저드(jerd)가 지난해 발표한 정규 2집 'BOMM'은 R&B 팬들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획득한 작품이었다. 인간관계 속 자아의 탐구를 계속해나가는 저드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에는 알앤비 가수 저드보다 DJ 저드로 활동하고 있다.
일에 매몰되어 살다 보니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서 활동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음악에 대한 갈증도 있다. 나는 서정적인, 감성을 다루는 음악을 하고 있지만 사실 센 음악도 좋아하고 춤도 굉장히 좋아한다. 음악에 대한 갈증이다. 힙합, 하드 테크노, 정글 등 특정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을 튼다. 지난해 7월 7일부터 디제이를 시작한 '디린이'다. 헨즈 클럽, 서울커뮤니티라디오에서 플레이했고, 다양한 베뉴에서 다행히 연락받고 있다.
제21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R&B 부문 노래와 앨범 후보로 선정됐다. 'BOMM' 앨범과 '영업 안 합니다'가 주인이다. 한국대중음악상 외에도 'BOMM' 앨범은 R&B 팬들과 평단의 일치된 호평을 받았다.
자고 일어나서 인스타그램 태그로 확인했다 (웃음) 한 해의 수확 아닌가. 좋은 음악, 좋은 앨범, 좋은 노래를 낸 음악가 옆에 이름을 올린 것만으로도 영광스럽다. 음악적으로 내가 잘 나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표에 대해 어느 정도 살짝 답변을 들은 기분이다.
'BOMM'은 하이라이트 레코즈 해체 이후 저드가 인디펜던트로 발표하는 첫 앨범이었다. 하이라이트 해체 이후 독립적으로 활동한 경험은 어땠나.
음악을 들어줄 사람이 주위에 없었다. 혼자 사운드클라우드에 음악을 올리며 경력을 시작하게 됐는데, 집단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경험은 색달랐다. 학교에 다니는 기분이었다. 음악 교류도 하면서 친구들도 사귀는 재미가 있었다.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단체였다. 그런데 해체 소식 들었을 때는 의외로 무덤덤했다. '내가 조금 더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도 했지만, 어쨌든 해체할 정도면 정말 큰 이유가 있었을 테고 모두가 여유 없는 상황에서 억지로 단체를 이어가면 일이 잘 풀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데뷔 EP 제목은 'Too Many Egos', 첫 정규 앨범은 'All My Personas'를 줄인 'A.M.P'였다. 'BOMM'은 'Back On My Mind'의 줄임말이고. 내면 탐구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진다.
지구에 80억 명이 살고 있고, 나는 80억 개의 세상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부터 잘 알아야 한다. 나의 모순적이고 부족한 면들을 잘 알아두어야 타인이 그런 모습을 보인다 해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나에게 갇혀있고 싶지는 않다. 나르시시즘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내면을 탐구하되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닐 거라 항상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BOMM'도 그렇게 시작한 작품이다. 일단 내가 봄에 태어났으니 봄에 대한 인식을 뒤집어보고 싶었다. 흔히 '봄날은 온다'라는 표현에서 보이듯 봄을 긍정적인 계절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봄은 까다롭다. 황사도 불어오고, 꽃샘추위도 닥친다. 마냥 화사하고 아름답지 않은 시기라는 발상의 전환, 그리고 우울의 감정도 계절의 흐름처럼 왔다가 가는, 그런 의미를 담고 싶었다.
앨범의 테마는 전체적으로 우울하다.
우울이라는 주제를 꼭 다루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나의 자아를 탐구하는 가장 마지막 영역이라 생각했다. 어가장 어두운 이야기를 꺼내며 밝아질 수 있다고 느꼈다.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모두 홀로 해냈다. 프로듀서 제이플로우(Jflow)가 마스터링 과정에서 도움을 주었다. 우울을 다루는 앨범의 소리를 어떻게 만들고 다듬어나갔는지 궁금하다.
앨범을 만드는 데는 6개월 정도 걸렸다. 데모를 6~70곡 정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가사가 술술 나왔다. 보컬이 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너무 목소리가 앞으로 나가지 않고 전체적인 소리와 조화를 이루길 희망했다. 사실 어떤 곡에서는 보컬이 잘 안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지점도 있었다. 개별 곡보다는 전체 앨범 단위 감상을 의도하며 만들었다. 나는 스스로 캐치한 멜로디를 잘 쓰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싱글을 잘못 만드는 게 나의 장점이자 단점인데, 오히려 그 부분을 장점으로 생각하여 이번 앨범을 더욱 유기적으로 만들고자 했다. 소리로는 제임스 블레이크와 프랭크 오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두 아티스트는 내면을 드러내는데 도가 튼 음악가로 생각한다. 새해 첫날 들었던 노래도 프랭크 오션의 'Wise Man'이었다. '이 세상에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은 없다. 우리는 우리 그 자체일 뿐.'이라는 가사에 크게 감동했다. 제임스 블레이크의 'Don't Miss It'에서도 메시지 영감을 많이 받았다.
앨범을 여는 곡은 'Aria'다. 아리아는 보통 극을 이어주는 진전의 흐름으로 극에서 활용된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샘플링한 곡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항상 1번 곡을 먼저 만들며 앨범 작업을 시작하는데 바흐의 선율이 귀에 맴돌았다. 사실 샘플링은 아니고, 원곡과는 다르다. 앞부분만 쓰거나 음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나가지 못하게 되어있다. 내가 선율을 듣고 찍은 멜로디다. 음악보다는 '선상'이라는 단어에 끌렸다. 배 위에서 내가 항해했던 삶을 바라보는, 세계를 바라보는 인상을 주고자 했다.
또 다른 곡으로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에 눈길이 간다.
하이라이트 레코즈 시절 한국 대중가요의 히트곡을 커버하는 프로젝트로 준비했던 곡이다. 곡을 추리며 듣다 보니 이 노래를 스킷으로 사용하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랭크 오션도 'Blonde' 앨범에서 카펜터스의 'Close To You'를 앨범의 전환점으로 사용하는 등 해외에서는 고전적인 히트곡을 자신의 스타일로 재해석하여 자신의 작품에 활용하는 모습이 흔하다. 이 곡을 기점으로 앨범의 분위기가 바뀐다.
'Bridal Shower', '영업 안 합니다' 등 앨범은 다양한 장르를 혼합하여 표현하는 곡이 많다.
저드라는 아티스트를 수식할 때 강점 중 하나가 '반전'이라 생각한다. 'Bridal Shower'는 완급조절에 신경을 썼고, '영업 안 합니다'는 갑작스럽게 뒤틀었다. 'Bomm'에도 트랩 비트가 들어간다. '영업 안 합니다'는 정말 작업하기에 어려웠다. 작업 과정도 어려웠고, 곡을 듣는 이들의 반응도 신경 쓰면서 작업해야 했다. 곡을 만들 때부터 꼭 짱유와 함께하고 싶었는데 염원이 이뤄져 다행이라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BOMM' 앨범이 졸린 감이 있어서 (웃음) 잠을 깨우라는 부분이기도 하다.
앨범에서 가장 고심했던 곡이 있다면.
'각설'이다. 원래는 '각설'은 하우스 트랙이 될 예정이었으나 피아노 발라드로 결론을 지었다. 음악의 테마를 정했고, 가사도 다 나와 있었는데 장르를 정하기가 어려웠다. 하우스의 '각설'은 각설이 타령을 연상케 할 정도로 밝은 곡이었다. 나의 모든 내면의 이야기는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로부터 출발한다. 모두가 완벽할 수 없고 누구나 실수한다. 그걸 마음에 두고 있지 않고 솔직하게 감정을 털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평생 반복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으로 썼던 노래가 '각설'이다. 작년에 왔던 우울감이 죽지 않고 또 오는 것이다. 인간관계 속 시행착오는 'BOMM'의 모든 곡에 적용한 감정이기도 하다.
타이틀 곡 중 하나인 'X됐어'에 대한 소개도 부탁한다. 평소에 욕을 많이 쓰나? (웃음)
요즘 좀 줄였다. (웃음) 너무 내면에 갇히게 되면 무언가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한다. 나는 스펀지 같은 사람이라 주위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에 따라서도 성격이 많이 변하는 편이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았을까? 잘못 살았던 거 같아'를 강하게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음악은 나의 심연이다. 세상에 나의 깊은 마음을 꺼내 보일 수는 없다. 그 심연으로부터 길어 올린 결과가 나의 음악이다. 실제로 음악을 내고 나서 많은 분이 괜찮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는 둥 많은 반응을 보였다. 다행히 앨범을 낳고 나서 싹 나았다. 심연을 꺼내 보이면서 부정적 감정을 해소한다. 모두가 자신의 가장 깊은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나와의 대화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더 잘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한 입 베어 물면 꽤 떫지'라 이야기하는 '홍시'도 같은 궤에 있는 곡으로 들린다.
평소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많이 쓴다. 어느 지점까지는 좋은데, 너무 그 범위를 넓게 잡으면 무심해 보이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는 최상의 배려가 타인에게는 냉정한 반응으로 받아들여지는 거다. 경험을 돌아보며 만든 곡이다.
개인의 경험을 녹여낸 또 다른 곡이 있다면.
앨범의 모든 곡이 그렇지만 'Blondie'를 꼽을 수 있겠다. 이 노래는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개념을 풀어본 곡이다. 누군가와 만날 때 나는 그 사람 자체로 이해하는 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각자의 단점은 모두가 갖고 있는 것인데, 그것을 가리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로 마주하고, 서로 보완하며 배워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하지 않나. 나를 잘 알아야 다른 사람도 잘 알게 되고,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BOMM'의 핵심은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저드가 보컬을 악기로 사용하고, 잘 들리지 않기를 의도한 부분도 있다고 말한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주제를 전달하는 데 있어 핸디캡이 되지 않았느냐는 우려를 표하자, 저드는 '확실한 의도의 주제는 어떻게든 닿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BOMM'은 심연의 목소리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어둠으로부터 베일에 싸인 듯 몽환적으로 다가오는 나의 이야기. 그래서 저드의 목소리는 앞에 나올 수 없었다.
첫 단독 콘서트를 2023년 11월 12일 CJ 아지트 광흥창에서 열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회사 없이 혼자 모든 일을 하다 보니 정신이 없었고 날짜를 굉장히 급하게 잡았다. 공연 당일 날 샵 시간을 착각했고, 택시를 탔는데 사고가 났다. 늦게 도착한 현장에서 장비가 고장나는 바람에 리허설 추가 영상 라이브 클립을 촬영하지 못했다. 식사 시간에 공연 진행 요원들의 설명을 들어야 했고, 20분 후 공연이 시작됐다. 주위 사람들이 굉장히 걱정했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긴장할 겨를 없이 무대에 오르게 된 거다. 공연장에 찾아온 팬 분들과 이야기를 길게 나누지 못했고, 모두 사인을 해주지 못해서 아쉬웠다. 공복이라서 아쉬웠지만…. 이제 어떤 공연이라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첫 단독 공연으로 좋은 출발점이었다.
앨범을 마무리하는 'VANS'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20대 끝에 설 때쯤엔 뭔가 될 듯 해 보였는데 여전히 먼 길인 것 같아'. 저드의 20대는 어땠나. 그리고 30대의 저드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한 기준에 다다르기 위해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대 내내 열심히 음악을 만들었고 일했다. 그 현실 가운데 바라본 미래는 양적인 성과보다 질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20대 말이 되어 돌아보니 일은 많았는데 생각보다 이룬 게 없다고 느낀다. 'BOMM'에 어떤 달콤한 곡이 있나. 대단한 성공담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도 없다. 나의 성장 과정이 그랬던 거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즐기는 것보다 더 값진 삶을 살았다. 내면의 길을 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끝없는 나와의 싸움 과정에서 다섯 번 무너져서 네 번 일어날 것을 열 번 무너져서 아홉 번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BOMM'을 내고 나서 무언가를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더는 우울하거나 외롭지는 않았다. 큰 해방감과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내가 너무 나 안에 갇혀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대의 저드는 그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나가는 여정을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