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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결산] 올해의 가요 노래 15곡

올해 우리 음악계는 꿈틀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활력에 미진했다. 그렇지만 기억해둘 작품과 노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도헌
김도헌
- 14분 걸림


팬데믹의 공포가 잦아든 2022년이었지만 우리 음악은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의 활력을 되찾지 못했다.

진공의 시간으로부터 빚어진 결과물은 깊이를 상실했고 에너지를 잃었다. 과감한 시도보다 안전한 레퍼런스가 대거 등장했다. 내면의 이야기, 개인의 심경은 부족한 창작에 대한 비판을 막는 방패로 기능했다.

역행하는 시대를 바라보는 대신 달관을, 연결과 소통의 제안 대신 홀로 있기를 선택했다. 일단 뛰어놀자는 음악은 노골적인 흉내와 과거의 유산 벤치마킹에 머물렀다. 해외 트렌드를 영민하게 소화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이들은 케이팝 신의 젊은 창작가들이었다.

올해 우리 음악계는 꿈틀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활력에 미진했다. 그렇지만 기억해둘 작품과 노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글의 순서와 순위는 무관하다.

2022년 올해의 가요 앨범 15장
올해 우리 음악계는 꿈틀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활력에 미진했다. 그렇지만 기억해둘 작품과 노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장기하 ‘부럽지가 않어’

‘나는 그냥 아무렇지 않았으면 좋곘어’ (‘등산은 왜 할까’)라 노래하던 밴드 커리어 막판 장기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 얼마간의 휴식기를 갖고 솔로 앨범 ‘공중부양’으로 돌아온 장기하는 타이틀 ‘부럽지가 않어’를 통해 달관 끝 초연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장기하와 얼굴들 마지막 앨범 ‘mono’에서와 다르게 솔로 장기하의 노랫말에는 날이 살아있다. 허허실실하는 가운데 각운을 딱딱 맞춰가며, 랩인지 노래인지 모를 그만의 창법으로 노래하는 장기하에게서 새로운 욕구를 확인했다.

윤하 ‘사건의 지평선’

혜성은 지지 않는다. 본인을 상징하는 노래 '혜성'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천문학 테마의 앨범 'End Theory'를 발표하며 지지층을 결집시킨 윤하는 올해 리패키지 앨범 타이틀곡 '사건의 지평선'을 통해 벅찬 환희의 순간을 만끽했다. 말 못할 고난과 슬픔의 지난 날을 담담히 웃으며 기억하고, 소중한 작별을 다짐하며 지체없이 진공의 세계로 몸을 던지는 '사건의 지평선'은 윤하의 화신(化身)같은 곡이다. 메시지 뿐 아니라 음악으로도 스스로를 100% 구현했다. 벅찬 기타 팝과 피아노 연주가 강조되는 후렴부, 호소력 짙으나 결코 만만하지 않은 가창은 5분이 넘는 노래를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다. 2022년 가요계에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격언을 붙여야 한다면 그 주인공은 윤하가 되어야 한다.

뉴진스 ‘Hype Boy’

뉴진스 신드롬의 핵심이다. 잴 것 없이 ‘관심을 원한다’라 선전포고한 ‘Attention’로 어안이 벙벙해져있던 세상은 세상은 해맑은 Z세대 틴에이저들의 러브송 ‘Hype Boy’ 펀치를 맞고 녹다운됐다. 몽글몽글한 신스 리프 아래 알앤비 소울 코드 진행을 숨겨둔 프로듀서 250의 신비로운 비트와 맑고 힘찬 멤버들의 보컬, 네 편으로 구성된 입체적인 스토리텔링의 뮤직비디오와 복잡다단한 설정에 부합하는 활기찬 퍼포먼스까지 빈틈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가 긴 생머리를 기르고, 카메라 대신 서로의 눈을 맞추며 등을 돌려 춤을 췄다. 하입 보이를 동경하는 뉴진스는 2022년 한국 가요계 최고의 하입 그룹이었다.

레드벨벳 'Feel My Rhythm'

진부한 작법이라 볼 수도 있는 클래식 샘플링을, 그것도 수차례 활용된 바흐 'G선상의 아리아'를 날카롭게 조각내어 기이한 봄의 제전으로 완성한 레드벨벳의 'Feel My Rhythm'은 2022년 케이팝에서 가장 우아하고 급진적인 시도 중 하나였다. 과격하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마법의 트랩 비트 위 익숙한 바이올린 선율을 자유자재로 조합하고 결합하여 불온하고도 찬란한 구성을 완성했다. 레드벨벳만이 들려줄 수 있는 기괴한 페스티벌의 생명력이 아직 다하지 않았음을 증명한 SM의 야심작이었다.

권은비 'Glitch'

아이즈원 활동 종료 후 권은비의 솔로 커리어는 단독 작품으로 나왔더라면 더 높은 평가를 내릴 수 있을만큼 과감하고 새로운 시도로 빛난다. 그 중 단 한 곡을 꼽으라면 'Gliitch'다. 세계적인 드럼 앤 베이스와 UK 개러지 유행에 발맞춘 몽환적인 신스 샘플과 감각적인 알앤비 보컬 라인 및 코러스가 조화를 이루고, 숨가쁜 속도 위 이리저리 비틀리고 번쩍이는 소리의 고속도로를 질주하다 끝내 모든 것을 무너트리고 마는 마무리까지 어느 하나 놓칠 부분이 없다. 찰나의 디지털 섬광을 대안의 메시지로 연결하는 주제의식까지 훌륭하다.

해파리 '부러울 것이 없어라'

장기하의 노래는 산전수전 다 겪은 신선의 달관이다. 해파리의 노래는 현대 사회 맥시멀리스트를 꿈꾸는 선인의 소소한 풍류곡이다. 남창가곡 ‘소용이(騷聳伊)’ 중 ‘불아니’의 아이디어를 가져온 부러울 것이 없어라’는 남성의 높이 솟구치는 가창을 뒤틀린 전자음과 가성 보컬 샘플로 대체하고, ‘길삼 잘하는 여기첩’을 ‘요리 잘하는 귀여운 애인’으로 전복했다. 해파리의 세련된 작업은 즐겁다.

보수동쿨러, 해서웨이 ‘페스티벌’

부산에서 결성된 밴드들의 활약이 계속되는 가운데 흔치 않은 밴드 간의 콜라보레이션도 좋은 결과를 낳았다. 펜데믹의 억압이 끝나고 본격적인 축제 시즌과 함께 발표된 앨범 'LOVE SAND'를 상징하는 노래 '페스티벌'은 지난 2년간 벅찬 무대를 꿈꾸며 숨죽이던 모든 인디 팬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서로의 음울과 어둠을 잠시 걷어내고 환희와 즐거움, 기대를 가득 채운 노래가 마스크를 벗고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모든 순간을 장식했다. 보수동쿨러와 해서웨이가 쏘아올린 희망가의 교훈은 분명하다. 다정할 것, 많이 웃을 것, 긍정할 것, 그리고 즐거울 것.

CHS ‘Highway’

2018년 싱글 ‘땡볕’으로 데뷔한 밴드 CHS는 여름에 진심이다. ‘정글사우나’, ‘엔젤빌라’ 등 이국의 따갑고도 습한 더위를 소리로 옮기는 이 노래는 밴드 CHS와 큐 더 트럼펫(Q The Trumpet)의 흥겨운 연주가 곁들여진 여름 송가다. 네오 사이키델릭의 기타 연주와 흥겨운 삼바 리듬, 곡 후반 큐 더 트럼펫과 함께하는 아프로큐반 파트까지 풍요롭고 활기찬 여름을 선사한다.

조용필 ‘세렝게티처럼’

72세 거장이 2013년 'Hello'처럼 활기찬 젊음의 음악을 들고 돌아올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마주한 결과물은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Bounce'와 'Hello'보다도 선 굵고 호쾌한 록 '찰나'에서 조용필은 적당히, 그만하면 등의 단어를 거부하고 현역 뮤지션으로 왕성한 에너지를 뽐냈다. 짝으로 발표한 싱글 '세렝게티처럼'은 그의 야심을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의 곡이다. 드넓은 대지 위에 붉은 태양이 떠오르듯 벅찬 선율과 이국의 정취, 희망과 용기를 담은 메시지는 전성기 콜드플레이의 대곡이라 해도 위화감이 없다. 집착이라 할만큼 치밀한 음악 탐구의 욕망. 목적 없는 음악으로 부유하는 모든 후배들을 부끄럽게 만든 베테랑 뮤지션의 사자후였다.

원필 ‘행운을 빌어줘’

입대를 앞두고 개인의 매력을 뽐내기 시작한 데이식스 멤버들 가운데 원필의 ‘Pilmography’가 빛났다. 2020년 더 블랭크 숍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차분하고 단단한 미성의 가창을 선보인 그는 단독 앨범을 통해 다양한 장르를 매끄럽게 소화하며 훌륭한 송라이팅 재능을 입증했다. 그 중에서도 청춘의 다짐을 담은 2020년대의 입대곡 ‘행운을 빌어줘’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밴드 시절 혼란스럽고 상처받은, 연약한 청춘을 노래하던 원필은 이제 단단한 목소리로 힘찬 다짐과 씩씩한 작별 인사를 건넨다.

르세라핌 'ANTIFRAGILE'

걸 크러시와 당당한 여성상, 꾸밈 없이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자아를 표방하는 그룹은 많았다. 이 주제 의식을 고스란히 체화(體化)한 팀이 올해의 르세라핌이었다. 고통스럽고 잔인할 정도의 자기계발과 혁신의 강조 끝에 하이브 최초의 걸그룹은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는 금강불괴의 'ANTIFRAGILE'로 거듭났다. 곡과 퍼포먼스 모두 훌륭한데, 배드 버니, 로살리아, 라우 알레한드로 등이 견인하는 레게톤 유행의 요소를 정확히 구현하고 있으며 이는 온 몸을 쥐어 짜내는 강렬한 무대로 연결된다. 올해 르세라핌만큼 독기 가득한 노랫말으로 극한의 비장미와 청춘의 절박한 다짐을 토해낸 그룹은 없었다.


(여자)아이들 'Nxde'

이런 분위기는 기회다. (여자)아이들을 둘러싼 녹록지 못한 상황 속에서 팀의 리더 전소연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아티스트 에고를 케이팝 산업에 이식했다. 그 결과 올해 가장 급진적인 아이돌 팝 'TOMBOY'와 입체적인 케이팝 오페라 'Nxde'가 탄생했다. 전자가 세계적인 걸 록(Girl Rock) 열풍을 걸그룹에 도입한 모범 사례였다면 후자는 예술과 대중의 최접점에서 카르멘, 마릴린 먼로, 제시카 래빗의 옷을 빌려 입고 아이돌 성적 대상화를 짖궂게 비판했다. 걸그룹의 주체적인 시선도 대중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기에 'Nxde'는 아리땁다.


아이브 'Love Dive'

'참을 수 없는 이끌림과 호기심'을 야기하는 방법? 2000년대 팝이 연상되는 큰 질감의 다크 팝, 신비롭고 모호한 유혹, 나르시시즘 가득한 틴에이지 러브 판타지를 뒤섞은 마법의 물약 권하기. 지난 연말을 뜨겁게 달군 'Eleven' 유행이 채 가시지 않은 올 봄, 아이브는 'Love Dive'로 매혹 가득한 사랑의 전령이 되어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건넸다. 복잡다단한 세계관과 은유 대신 나 자신을 사랑하자는 간결하고도 힘있는 메시지와 선명한 곡 구조, 선망하지 않을 수 없는 우아한 가창과 멤버들의 퍼포먼스가 반짝이는 환상의 케이팝 걸그룹 신화 속 한 장면을 완성한다. 망설임과 고민 사이 정공법이 통했다.

빅 나티 '낭만교향곡'

바흐, 쇼팽, 브람스, 베토벤, 슈베르트,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비발디와 드뷔시. 신세대 힙합 뮤지션의 러브송은 힙합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매력적이다. '정이라고 하자'로 2022년을 휩쓸던 빅나티가 6월 발표한 두번째 미니 앨범 '낭만'의 타이틀 싱글 '낭만교향곡'은 매력적인 밴드 세션 연주 기반의 비트와 재치있는 기악 가창 아이디어가 빛나는 곡이다. '마에스트로' 창모의 랩과 자신의 커리어를 오마주하는 박재범의 보컬은 2022년 가장 인상적인 콜라보레이션 중 하나다.

우즈(WOODZ) '난 너 없이'

셀프 프로듀싱을 통해 단단한 솔로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우즈(WOODZ)는 2022년 팝 펑크 리바이벌의 핵심 유행 요소를 가장 충실히 구현한 아티스트였다. 직관적인 '난 너 없이'는 더할나위없이 깔끔한 멜로디 진행에 세기말 펑크 로커들과 Z세대 록 워너비들의 취향을 모두 휘어잡을 수 있는 키치한 콘셉트를 더했다. 머신 건 켈리, 블랙베어 등 아티스트들이 겨냥하는 정서를 해맑은 틴에이지 케이팝으로 연결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2022년 케이팝이 록 요소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기록할만한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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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김도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