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결산] 올해의 팝 앨범 15장
전지구적 고립의 시간 동안 세계 음악 시장이 얼어붙었다. 그러나 영구 동토층 아래에는 창작가들의 뜨거운 파토스와 차가운 에토스가 뜨거운 용암처럼 꿈틀거리며 용틀임하고 있었다.
거대 팝스타들은 해빙(解氷)의 시간을 꿈꾸며 거대한 야심을 펼쳐 보였고, 거리의 시인들은 스스로를 지탱했던 신념에 질문을 던지며 공명을 일으켰다. 스트리밍의 시대 글로벌 음악 시장을 지배하는 라틴 팝과 아프로비트 장르 뮤지션들은 올해도 선지자의 힘찬 진군 아래 영미권 팝에 새 문물을 전파했다. 집 뒤뜰 차고에서 대마초 냄새를 풍기며 기타를 뜯던 밴드들의 기력이 쇠하자 좁은 방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젊은 창작가들이 록의 새 전성기를 열었다.
증명, 배반, 충격, 고뇌, 그리고 파티. 2022년 팝의 주요 앨범 15장을 공개한다. 순서와 순위는 무관하다. 애플 뮤직, 유튜브 뮤직 플레이리스트에는 올해 즐겨 들었던 팝 노래 100곡이 선곡되어 있다.
The 1975, Being Funny In a Foreign Language
위태로운 프런트맨 매티 힐리의 여러 기행에도 불구하고 1975는 Z세대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팬들의 마음을 가장 잘 읽어 음악으로 표현하는 밴드다. 다소 허황됐던 전작을 뒤로하고 발표한 'Being Funny In a Foreign Language'는 산뜻하고 유연하게 청춘의 불안을 표현한 수작이다. 마약 중독, 위선 가득한 인간관계, 우울한 뉴스 속에도 아름다운 감정을 노래하며 구원을 기도하는 밴드의 진심이 올해도 음울한 청춘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The Weeknd, Dawn FM
'After Hours'로 팬데믹 시기를 지배한 위켄드는 진공의 시간 동안 슈퍼스타의 지위를 십분 활용, 어두컴컴한 연옥을 탐험하는 라디오 콘셉트 앨범 'Dawn FM'으로 2022년 쾌조의 출발을 알렸다. 고통스러운 진공의 시간을 연옥에 비유, 구원의 밝은 빛을 홀연히 들리는 라디오 방송과 음악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현대 대중음악으로 빚은 단테의 '신곡'이다. 퀸시 존스,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 맥스 마틴, 칼빈 해리스,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 등 전자 음악과 팝 음악의 대가들을 초빙한 구원의 길이 짙은 잿빛의 황홀을 선사했다.
Harry Styles, Harry's House
원디렉션으로부터 홀로서기에 나선 후 승승장구했던 해리 스타일스가 'Harry's House'로 차세대 팝스타 지위에 쐐기를 박았다. 1980년대 프린스의 영향이 지대한 이 솔로 세 번째 정규 앨범은 야심 가득한 선언부터 섹슈얼한 유혹, 고독한 춤사위와 싱얼롱 송가까지 팝스타에게 기대하는 모든 요소를 다 갖춘 작품이다. 유해한 마초 팝스타의 시대는 끝났다. 유연하고 젠더리스한 태도가 시대의 사랑을 차지한다.
Wet Leg, Wet Leg
틱톡 챌린지로 기회를 얻은 여성 인디 록 듀오 웻 레그는 바이럴의 행운을 발판 삼아 기민하고 유쾌한 데뷔 앨범을 발표하며 주류 시장에 진입했다. 까슬까슬한 펑크 록과 시니컬한 태도로 보편의 감정을 노래하는 밴드는 힙합과 알앤비 장르 외에도 록 음악 역시 소셜 미디어의 부흥을 입을 수 있으며, Z세대 로커들이 모두 이모코어만 추억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Carly Rae Jepsen, The Loneliest Time
칼리 레이 젭슨의 팬데믹은 가장 고독한 시기임과 동시에 간절한 그리움이 더욱 큰 사랑을 틔울 수 있다는 다짐의 시간이었다. 검증된 송라이팅 능력과 로스탐(Rostam) 등 2010년대의 전성기를 견인한 동료들의 지원으로 탄생한 'The Loneliest Time'은 진솔하고 감각적인 노래로 꽉 찬 웰메이드 팝 앨범으로, 시끌벅적한 댄스플로어의 들뜬 마음을 이어가면서 잔잔하게 세상을 위로했다. 이 앨범의 유일한 단점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Midnights'과 발매일이 같았다는 사실 뿐이었다.
Rosalía, MOTOMAMI
천재가 민속의 틀을 깨고 대중음악의 요소를 포식하며 지식을 습득하며 신세계를 넘보는 광경에 세상은 경외의 눈빛을 보냈다. 플라멩코 계승자로 홀연히 등장해 팝의 빈도를 늘려가던 스페인의 로살리아가 발표한 'MOTOMAMI'는 전대미문의 문제작이다. 불온하고, 위험하고, 황홀하고, 우아한 이 앨범은 라틴 팝과 레게톤 진영의 우수한 예술성을 입증하는 2022년 단 하나의 작품으로 대체재가 없다.
Bad Bunny, Un Verano Sin Ti
2022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 된 앨범이다. 2020년 영민한 'YHLQMDLG' 앨범으로 왕좌에 오른 배드 버니가 올해 발표한 'Un Verano Sin Ti'는 21세기 유행하는 레게톤 계열의 모든 장르를 융합하여 매혹적인 리듬과 중독성 강한 훅으로 지구를 삼켰다. 유흥과 쾌락을 넘어 고국 푸에르토리코의 정치적 상황을 암시하는 등 성숙한 시각까지 담아내며 커리어 최고의 순간을 경신했다.
Kendrick Lamar, Mr. Morale & The Big Steppers
켄드릭 라마가 5년의 공백 끝에 발표한 새 정규 앨범 'Mr. Morale & The Big Steppers'는 지금까지 그의 모습과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의 걸작이다. 블랙 커뮤니티를 넘어 사회 전체를 관조하는 켄드릭은 가정으로부터 사회를, 사회로부터 국가를, 국가로부터 철학을 이끌어낸다. 모호하고 불친절한 방법으로 고독한 천재의 시선을 전하는 작품은 보편적인 소재로부터 논쟁을 이끌어내고 생각하는 아티스트의 고뇌를 투영하여 탐구와 반성을 촉구한다.
The Smile, A Light for Attracting Attention
톰 요크, 조니 그린우드, 톰 스키너의 슈퍼그룹 더 스마일은 최근 라디오헤드보다도 더욱 라디오헤드스러운 앨범을 내놓았다. 'Hail to the Thief'를 연상케 하는 공격적인 냉소의 메시지가 'In Rainbows'처럼 여유롭고 정교한 사운드 위 수놓아지며 직관적이고 난해하지 않은 작품이 탄생했다. 혼돈의 화성이 유연한 그루브를 만나 빈 틈 없이 맞물려 들어갈 때의 쾌감은 라디오헤드 사단만이 들려줄 수 있는 유형의 카타르시스다.
Beyoncé, Renaissance
21세기 블랙 메디치 가문의 수장 비욘세가 팬데믹 종식을 선언하며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을 총동원해 장엄하고도 격의 없는 음악의 대성당을 건축했다. 1980년대 시카고와 뉴욕의 전설적인 클럽과 전자 음악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질서 있고 장엄하게 완공한 이 앨범은 남녀노소 인종성별 구분 없이 모두에게 활짝 열린 해방의 댄스플로어이자 코로나19 이후 대중음악의 새 시대를 선언하는 포고령이었다.
ALVVAYS, Blue Rev
토론토 밴드 얼웨이스의 세 번째 정규 앨범 'Blue Rev'는 밝고 경쾌한 슈게이징 언더그라운드 파워 팝 앨범이다. 좀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1990년대의 유산을 MZ세대 보편의 경험으로 다듬어 모호하고도 경쾌하게 풀어낸 이 작품은 2020년대 아마추어리즘 기반의 광포한 노이즈 유행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다. 어지럽고도 아름다우며 또한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는 등 상당히 정교하다.
Fontaines D.C., Skinty Fia
2010년대 후반부터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영국 포스트 펑크 록 흐름이 올해도 이어졌다. 수많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가장 흥미로운 앨범을 내놓은 팀은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 밴드 폰테인즈 D.C.였다. 2019년 데뷔 앨범부터 놀라운 창의력을 선보인 밴드는 '사슴의 저주'를 뜻하는 앨범 'Skinty Fia'를 통해 또 한 번의 도약을 일궜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영국에서 살아가는 이방인 청년들의 불안과 고독, 혼란과 분노를 완곡하게, 때로는 강력하게 전달하는 음악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설득력이 있었다.
Tove Lo, Dirt Femme
검증된 싱어송라이터 토브 로는 'Habits (Stay High)'의 성공 이후 끝없이 사회 규범과 고정관념에 도전했다. 독립 레이블 설립 후 처음으로 발표하는 정규 앨범 'Dirt Femme'은 한 여성이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다양한 정의를 내리며 누구와도 같지 않은 나 자신으로 거듭나는 승천의 순간이다. 감각적인 신스 팝과 아름다운 선율 아래 도발과 홀로서기의 다짐을 담은 앨범은 올해 가장 급진적이고 작가주의적인 싱어송라이터의 작품이었다.
Sudan Archives, Natural Brown Prom Queen
신시내티 출신의 브리트니 파크스(Brittney Parks)만큼 올해 급진적이고도 짜릿한 앨범을 내놓은 싱어송라이터는 드물었다. 수단 아카이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그는 두 번째 정규작을 통해 현세대가 파격이라 생각하는 대부분의 음악 장르를 모조리 섭렵해 셀 수 없이 다양한 인격을 압축하여 한 몸에 품어내는 신내림의 경지를 펼쳐 보였다. 당당한 태도와 거침없는 크로스오버가 차세대 실험가의 리스트에 수단 아카이브를 업데이트한다.
Pusha T, It's Almost Dry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된 거리의 삶을 날카로운 랩으로 뱉어낸 푸샤 티의 'It's Almost Dry'는 카니예 웨스트, 퍼렐 윌리엄스, 88 키스 등 호화 프로덕션과 함께 2022년을 상징하는 랩 앨범으로 남았다. 기본에 충실한 퍼포먼스는 난해하지 않으며, 간결한 붐뱁 기반의 비트는 21세기 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성공한 랩스타의 삶을 투명하게 담아냈다. 명작에 크게 공헌한 프로듀서 카니예 웨스트가 기행을 벌일 때 앞장서서 그를 비판한 푸샤 티는 올해 최고의 랩스타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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