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가 검열할 차세대 금지곡 5
그들은 우리의 입을 막았다. 2022년 10월 16일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43주년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식에서, ‘늑대가 나타났다'를 노래할 예정이었던 이랑은 행사 3주 전 행정안전부로부터 이 곡을 행사에서 빼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한 내용인지 알 길이 없었다. 행정안전부 측은 ‘미래 지향적인 밝은 느낌의 기념식'을 희망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검열이 아니라고 했다. 아티스트는 행안부로부터 공식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다.
자신을 ‘민중가수'로 칭하는 이랑의 세 번째 정규 앨범 제목이자 타이틀곡 ‘늑대가 나타났다'가 화제다. 절망하는 군중이 자기 이름을 호명하며 성큼성큼, 권력의 성벽을 무너트리려 진군하는 이 노래가 정부 기관의 검열로 인해 새 시대 민중가요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 ‘늑대가 나타났다'를 막은 이들이 경기를 일으킬 새 시대의 금지곡들이 있다.
방탄소년단 ‘Am I Wrong’ (2016)
만약 방탄소년단이 지난 10월 15일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콘서트 ‘Yet To Come’에서 이런 노래를 불렀다면 행정안전부의 반응이 어땠을까. ‘알바 가면 열정페이 학교 가면 선생님 상사들은 행패 언론에선 맨날 몇 포 세대’(‘뱁새'), ‘언론과 어른들은 의지가 없다며 우릴 싹 주식처럼 매도해’ (‘쩔어')... ‘늑대가 나타났다'를 경계한 그들에게는 상당히 불온하게 다가올 내용이다.
방탄소년단은 데뷔 초부터 꾸준히 10대 소년과 20대 청년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에 일침을 날리며 수많은 아미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중에서 2016년 두 번째 정규 앨범 ‘WINGS’에 수록된 ‘Am I Wrong’을 추천한다. ‘미친 세상에 안 미친 게 미친겨’라는 일갈에 절절히 공감한다.
묻지도 않고 멤버들의 팔을 잡고 번쩍 들어 올리고, 군 면제라는 미끼로 그룹과 팬들을 헷갈리게 하지만, 어쨌든 방탄소년단 없으면 국가 홍보에 큰 지장이 생길 것 같아 머리를 싸매는 그들에게 이런 노래들을 들려주고 싶다. 다음 콘서트 때도 지시하려나? 아, 어차피 돈 한 푼 안 쓰고 기획사에 전가할 거라 상관없으려나.
NET GALA ‘Dodomzit’ (2021)
DJ 넷 갈라는 이태원 케이크샵에서 활동하다 프로듀서로 데뷔하며 2019년 한국대중음악상 3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논바이너리 퀴어 뮤지션으로 음악을 통해 자기 뜻을 적극적으로 설파하는 그는 지난해 한국의 ‘신파극'을 재해석한 EP ‘신파’를 발표하며 또 한 번의 과감한 시도를 감행했다.
수록곡 ‘Dodomzit’은 2017년 2월 16일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으로 시간을 돌린다. 전 대통령,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문재인의 여성 공약 발표회에 항의 방문한 곽이경 활동가와 문 후보 지지자들의 음성을 샘플링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방문해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활동가 곽이경과 성소수자들이 항의하자, 문 후보 지지자들은 이렇게 외쳤다. ‘나중에!’. 그리고 5년 후인 지금,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못했고 현 국회의장은 ‘동성애 치유 운동'을 소개한다. ‘나중에.’
이랑 ‘환란의 세대’ (2020)
‘늑대가 나타났다’를 경계한 익명의 누군가가 ‘환란의 세대'를 들으면 거의 기절할지도 모른다. 가난한 친구들의 외침도 소름 끼치는데, ‘동시에 다 죽어버리자'라는 선동은 얼마나 과격하고 또 끔찍한가. ‘한꺼번에 싹 다 가버리는 멸망'을 부르게 하느니 차라리 기념식을 취소하고 검열을 인정하는 편이 빠를지도 모르겠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의 요청받아 기념식 총연출직을 제안받은 강상우 감독은 ‘항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를 주 관객층으로’ 설정하여 당시 노동자들이 느꼈던 다양한 감정의 층을 ‘늑대와 나타났다'와 함께 소개하는 기획을 세웠다.
다양한 시대가 담겨있는 노래, 2안이 없는 오늘날의 노래라는 이유에도 주최 측은 재단의 존립을 인질 삼아 노래를 검열했다. ‘환란의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이랑의 노래가 필요하다. 그들이 깨닫게 해주었다. ‘이 땅에는 충격이 필요하’다고. 그들이 우리를 이렇게 정의해 주었다. 마녀, 폭도, 이단, 늑대라고.
천용성 ‘거북이’ (2021)
‘분하고 더러운 팝'을 담은 천용성의 2021년 두 번째 정규 앨범 ‘수몰'의 수록곡이다. 노래 후반부에 등장하는 정립회관은 한국 최초의 장애인 이용시설로, 2004년 당시 정년을 맞은 관장이 규정을 어기고 연임한 데 반발하여 한국소아마비협회를 대상으로 중증 장애인들과 자원봉사자, 노조 조합원들이 시설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 투쟁한 장소다.
이 투쟁에 참여한 장애 운동가 고 우동민 열사가 ‘거북이'의 주인공이다. 그는 2010년 국가인권위원위 점거 중 응급차에 후송되어 2011년 1월 2일 세상을 떠났다. ‘우리가 오래전 말하던 미래, 혼자서는 마주할 자신이 없어’라 덤덤히 읊조릴 때의 느껴지는 거대한 상실과 공허함.
매일 아침 출근길 시위에 장애인들을 저주하고, 정부청사에서 장애인을 감금하는 오늘날 뉴스를 보다 보면, 도무지 이 노래를 혼자서 담담히 마주할 자신이 없어진다.
황푸하 ‘신세계’ (2022)
포크 싱어송라이터 황푸하가 11월 21일 공개한 싱글 ‘신세계'다. 불온 가수 이랑의 피처링이 눈에 들어온다. 베이시스트 정수민, 까데호의 기타리스트 이태훈, 드러머 민상용, 피아니스트 진수영 등 유명 세션들이 아름답고도 잔혹한 신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자유롭게 꿈을 꾸며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 여성에게 세상은 ‘조신하지 못하면서 기만 세다고 / 겸손하지 못하면서 겁도 없다고' 조롱하며 혐오를 가한다. 반항하는 여자라고, 건방진 여자라고, 성실하지 못한 여자라고 멸시한다. ‘신세계'는 빛나는 가능성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모든 소수자에게, ‘나는 펜을 빼앗긴 소설가'가 되었다 느끼는 모든 창작가에게 눈물 한 움큼 삼키고 힘찬 응원을 건넨다.
*2022년 12월 2일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