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 플레이리스트
스무 살이 되고 나서 20대 때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몇 개 정했다. 운이 좋아 몇 가지는 현실이 되었고, 이루어지지 못한 소원도 있다. 그중 하나를 지금 풀어놓으려 한다. 나의 20대를 정의한 노래들을 정리해 공유하는 작업이다.
나는 시작부터 끝을 상상하는 사람이다. 좋은 마무리까지는 못되더라도 안전한 종결을 바라보며 출발선으로부터 발을 뗀다. 열아홉 살 때 10대를 정의한 노래들을 간략히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렸는데 꽤 반응이 있었다. 20대 끝자락에도 비슷한 기획을 통해 나의 삶을 음악으로 소개하면 근사하겠다 싶었다.
매 해의 마지막 달마다 소소하게 정리해놓은 내용을 기반으로 한 플레이리스트다. 그중 가요 5곡, 팝 5곡을 추려 해마다 10곡, 총 100곡을 준비했다. 허황된 기획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의 10년을 어떻게 단 100곡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당시 순간의 기록을 들춰보며 진실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노래를 정리하고 나니 비로소 삶의 한 챕터가 마무리되는 기분이다. 여러분의 20대는 어떠셨는지.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애플 뮤직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음악을 들어볼 수 있다.
2013 / 20살
선우정아, 주인공의 노래
2012년 러시 라이프 공연에서 봤던 선우정아가 나의 스무 살을 가장 많이 위로해 주었다.
f(x), Goodbye Summer
위키피디아에 이름을 올려준 작품. 앨범 발표 기념 라이브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돈다.
조용필, Bounce
십대 시절 조용필 커리어 다 챙겨 듣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김예림, Goodbye 20
오디션 스타 시절에도 나는 김예림의 이런 까칠하고 혼란스러운 메시지에 마음이 갔다.
자우림, 이카루스
자우림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이 노래에는 마음이 움직였다. 시작과 동시에 마지막을 두려워했던 나날들.
James Blake, I Never Learnt To Share
나는 지독히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사람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Justin Timberlake, Mirrors
이즘에서 처음으로 쓴 앨범 수록곡이었다. 노래방 18번이 됐다.
Grimes, Oblivion
이즘 1년 차, 앞날 창창한 친구에게 'Visions' 별점 5점 줬다고 선생님께 혼났다. 그만큼 정신없이 좋았다.
Paramore, Last Hope
파란 머리의 헤일리 윌리엄스가 두 손을 치켜들고 노래의 시작을 알릴 때 여전히 전율한다.
Daft Punk, Fragments of Time
2013년 당시 이 노래가 이유 없이 그냥 와닿았다.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릴 시간을 두려워하던 시절이었다. 그 유약한 순간을 잊지 않으려 이런 기획을 한다.
2014 / 21살
서태지, 90's Icon
어린 나는 영웅의 휴전 제안이 매우 실망스러웠다. 지금은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간다.
넥스트, 해에게서 소년에게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불호령에도 나는 자꾸만 그가 살아 숨 쉬던 시간을 그리워했다.
에픽하이, Born Hater
YG 사옥에서 에픽하이를 처음 만났다. 매캐한 담배 연기도 두세 시간이고 계속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라이프 앤 타임, 호랑이
개띠는 이런 멋진 노래를 만들 수 없겠구나 싶어 침울했다.
f(x), 종이심장
무언가 잃어버린 기분이 들던 2014년. 모두가 바스러지는 종이 심장을 가냘프게 감싸고 지니던 시기였다.
Kristen Bell,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
아무 생각 없이 본 '겨울왕국'이 너무 재미있었다. 서른 번쯤 극장에 가서 봤다.
FKA Twigs, Papi Pacify
누군가에게 잡아먹히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게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나의 이상형이었다.
Charli XCX, Boom Clap
유치한 영화라도 아름다운 주제가가 있다면 낭만으로 기억된다.
Sky Ferriera, I Blame Myself
유명하지도 않은데 책임감만 가득해서 열심히 글 쓰고 열심히 욕을 먹었다.
The XX, VCR
깨끗한 종소리의 신스 연주가 들릴 때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마음이 아파서 자주 못 듣는다.
2015 / 22살
기린, 요즘세대 연애방식
클럽에 다니며 최신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섭렵하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당시 내겐 새벽에 집에 갈 택시비도 없었다.
이센스, Writer's Block
믹스테이프도 사고 라이브도 봤던 언더그라운드 영웅의 몰락, 그리고 화려한 비상. 공들여 쓴 리뷰가 잘됐는지는 모르겠다.
여자친구, 오늘부터 우리는
데뷔 앨범에 혹평을 날린지 몇 달 후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깨끗한 패배였다.
모노톤즈, Into The Night
코리안 로큰롤 히어로가 등장했다는 기대감에 그 해 연말은 따뜻했다. 앞날도 모르고.
러블리즈, 그대에게
두 번째 입대일 저녁 6시에 발매된 노래다. 해 넘기고 몇 달 지나서야 싸지방에서 처음 들을 수 있었다.
Paul McCartney, Let Me Roll It
잠실 주 경기장이 정말 크구나, 그리고 사람들이 비틀즈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The Internet, Girl
당시 힙스터라면 인터넷의 음악을 들어야 했다. 오드 퓨처의 음악을 대부분 좋아했지만 인터넷은 더욱 정이 갔다.
Grimes, Realiti
진지하게 그라임스 내한 공연을 위해 군입대를 미룰 생각을 했다.
Kendrick Lamar, The Blacker The Berry
단 두 장의 앨범으로 전설이 된 뮤지션을 보며 우리 시대에도 위인은 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Jamie XX, Gosh
친한 이즘 후배 노트북 배경화면의 이 앨범 커버를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 소중해서 아껴 듣는다.
2016 / 23살
빈지노, Time Travel
이즘 멤버들이 빈지노를 인터뷰하는 동안 나는 푹푹 찌는 컨테이너 노래방에서 선임이 부르는 'Time Travel'을 듣고 있었다. 언젠가는 인생을 가볍게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나비, Hong Kong
잔나비의 온스테이지 무대는 나의 사이버지식정보방 엔딩곡이었다.
김태춘, 이태원의 밤
스무 살 때 부산에서 올라온 친구들과 열심히 이태원 밤거리를 쏘다녔다. 김태춘의 노래를 들으면 더 우울해져서 차라리 군대 온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이태원이 너무 가고 싶었다.
이랑, 신의 놀이
왜 이랑은 그토록 신을 찾아 헤맸을까. 삶의 의미를 일부 포기해야 하는 군에서 유일하게 존재의 의문을 품게 만든 노래였다. 군인 시절은 내가 살고 있던 세상에 의문을 가지고, 반성하며 더욱 공부하게 된 때기도 했다.
박효신, Home
바리 abandoned에서 목격한 정재일과 박효신의 조합이 아름다웠다. 세상도 박효신에 엄청나게 열광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David Bowie, Heroes
이즘에서 데이비드 보위 전집 리뷰를 쓰다가 입대했는데 하필 남은 앨범이 "Heroes"였다. 훈련소 때 행군을 마치고 무심코 집어든 잡지에서 보위의 죽음을 알았다. 후반기교육 면회장에서 어머니가 가져오신 노트북으로 마저 리뷰를 쓰고 업데이트했다.
Beyoncè, Hold Up
눈 내리는 초소, 옷소매 끝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던 비욘세의 'Lemonade'에 만감이 교차했다.
Blood Orange, Next to You
데브 헤인스, 블러드 오렌지, 어떤 이름으로도 울컥하게 만드는 이름. 휴가 나올 때 항상 챙겨 들었다.
The Stylistics, You Make Me Feel Brand New
입대 후 블랙 뮤직에 대한 지식이 턱없이 부족함을 느끼고 미국 대중음악 관련 서적을 사서 매일밤 연등 시간에 외우다시피 공부했다. 그 해 서울 소울 페스티벌에 많은 가수들이 등장했지만 스타일리스틱스만큼 감동적인 무대는 없었다.
Mura Masa, What If I Go?
'Love$ick'에 이어 이 노래까지 듣고 반드시 무라마사를 직접 보겠노라 다짐했다. 2년 후 꿈을 이뤘는데, 결과는 그저 그랬다.
2017 / 24살
브레이브걸스, Rollin
누군가 선창 하면 모두가 의자 위로 올라가 허리를 돌리기 바빴다. 몇 년 후 이 노래가 역주행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G-Dragon, 무제
어설픈 부분도 많았지만 처음으로 지드래곤을 가슴으로 이해하게 된 노래다.
데이식스, 예뻤어
지루한 TV 연등이 끝나갈 때쯤 언제나 데이식스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Sunrise' 앨범은 내게 벅찬 희망을 품게 했다.
방탄소년단, 고민보다 Go
제대와 동시에 글로벌 스타로 거듭나려 하는 방탄소년단의 앨범을 만났다. 재치 있는 포트나이트 춤을 몇 번 따라 춘 적이 있다.
종현, 하루의 끝
즐거운 생일날 그의 마지막 소식을 들었다.
Carly Rae Jepsen, When I Needed You
칼리 레이 젭슨의 내한 공연에 맞춰 휴가를 썼을 때 국방부 시계도 어쨌든 가고는 있구나, 싶어 안도했다.
Panic! At The Disco, LA Devotee
거의 10년 만에 다시 열심히 듣게 된 패닉 앳 더 디스코였다.
Kendrick Lamar, DNA
자기 전 자주 들었던 앨범이 'To Pimp A Butterfly'였다. 새 앨범을 너무 듣고 싶어 좀이 쑤셨다.
Paramore, Fake Happy
마지막 휴가 때 파라모어의 앨범 리뷰를 썼다. 해맑고도 씁쓸한 노래가 제대 후 내 모습과 많이 닮아 보였다.
Rolling Stones,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
솔직히 제대가 두려웠다. 제대 후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갈 내 모습이 그려졌다. 최대한 준비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머리를 비워볼까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 복잡한 사회생활은 부고로부터 출발했다. 원하는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었다.
2018 / 25살
진(BTS), Epiphany
'Love Yourself' 주제가 단순하다고 생각했지만 이 노래를 듣고 나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Peggy Gou, It Makes You Forget (잊게하네)
회사 알바를 하며 돈을 모아 미국 여행을 떠났다. 슈퍼올가니즘 공연장에서 페기 구의 리듬이 들렸을 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아, 이것이 '국뽕'이구나...
박재범, 기린, 오늘밤엔
원 없이 이태원을 다니고 술 마시며 샤잠(Shazam)으로 지금 나오는 노래가 뭔지 검색하던 클럽 구석의 찌질이. 스물다섯 살 김도헌.
수민, Seoul Seoul Seoul
'Your Home'으로 수민과 인터뷰를 하게 됐다. 지금까지도 수민의 음악 여정을 응원하고 있다.
XXX, 수작
XXX의 프랭크가 GQ 매거진 인터뷰에서 나의 앨범 리뷰를 언급해 주었다. 어떤 이유로 추천했는지는 모른다. 그 한마디 때문에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표한다.
ARCA, Desafio
제대 직전에 아르카의 음악을 많이 들었고, 제대 후에는 열렬한 팬이 됐다. 위독하신 할아버지를 뵈러 요양병원에 갈 때, 이상하게 손이 자주 갔다.
Childish Gambino, This Is America
노래 해석 기사가 좋은 반응을 얻어 오마이뉴스에서 상금을 받았다. 막상 미국 여행 갔을 땐 생각도 안 났다. 아이러니한 인간.
Phoenix, Fior Di Latte
이태원 골목바이닐앤펍에서 멤버들과 사진을 찍으며 즐거웠던 시절. 'Te Amo' 앨범이 워낙 좋았다.
Superorganism, The Prawn Song
포틀랜드 클럽에서 봤던 슈퍼올가니즘. 내한 예정이라는 소식도 모르고 미국까지 가서 즐겁게 봤다. 이듬해 멤버들과 인터뷰를 가졌으니 다행이었다. 대마초는 나가서 하라던 가드의 말이 기억난다.
Japanese Breakfast, Dive Woman
가끔 이즘 사무실에 온 가장 유명한 사람을 댈 때 우스갯소리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를 꼽는다. 무모한 도전이 결실을 맺어 미셸 조너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더듬더듬 영어로 질문하던 상대가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듭날 줄이야...
2019 / 26살
이센스, 그XX아들같이
라이즈 호텔 옥상에서 만난 이센스의 해맑은 웃음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척박한 토양 위에 건물 한 대는 세우고 싶은 욕망을 품었다.
민수, 민수는 혼란스럽다
민수와 문선의 듀오 모아(moi)부터 매력적이었고, 이 노래로 팬이 됐다. 쓸쓸한 봄날의 예술의 전당을 거닐며 자주 들었다. 슬프게도 당시 내가 인생, 음악, 글 모두 패퇴하던 까닭은 우리의 문제보다는 내 문제가 좀 더 컸다.
김예림, Digital Khan
모두가 림킴 이야기를 했고 나도 빠질 수 없었다. 그때 일 관련해서 연락했던 사람들과 다시 만나게 됐다.
제이클레프, 지구 멸망 한 시간 전
제이클레프와의 인터뷰는 유익했다.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를 소개하며 묵시록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유, Love Poem
상실의 시대에 우리 세대를 음악으로 위로한 이는 아이유였다. 'Love Poem'을 통해 숭고한 사랑과 선의의 힘을 다짐한다. 아이유의 훌륭한 커리어 중에서도 나는 이 앨범과 이 노래를 최고로 놓는다.
Billie Eilish, Wish You Were Gay
'Bellyache'의 어린아이가 세계를 지배했다. 거대한 EDM과 파티 튠, 스타디움 록의 시대가 가고 미니멀리즘이 대세가 됐다. 그래도 나는 우울한 이야기보다는 유치한 투정이 더 와닿았다. 언제나 그렇다. 단순한 게 좋다.
Lana Del Rey, Mariners Apartment Complex
사춘기 시절 광란의 20년대 시기를 다루는 문학 작품과 영화를 많이 접했다. 크게 와닿지 않았던 라나 델 레이의 음악을 잘 뜯어보고 싶었다. 훗날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좋았다고 말해줬을 때 감사했다.
My Chemical Romance, Welcome To The Black Parade
홍콩에서 이 노래가 저항의 송가로 자리 잡았을 때의 희열이란. 아직 세계의 질서와 평화, 정의를 신뢰하던 때였다.
U2,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장엄한 조슈아 트리가 4K 거대 스크린에 펼쳐지며 보노가 이 노래를 선창 할 때, 나는 윤영훈 교수님이 말씀해주신 기독교적 세계관 바탕의 유투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ROSALÍA, Con Altura
일찍 죽어 묘지로 가겠다는 천재의 선언에 몇 번이나 무너졌는지.
2020 / 27살
태연, 내게 들려주고 싶은 말
서른일곱의 내가 스물일곱의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 사실 지금도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딥플로우, 대중문화예술기획업
이즘 편집장이 되었고, 어떻게든 더 나은 집단을 만들고 싶었다. 사장님 딥플로우의 현실 악전고투를 반영한 '대중문화예술기획업' 속 등장하는 많은 일들을 비슷하게 했다. 나 혼자 애쓰는 게 능사가 아니었는데도 말이지.
저드(jerd), 문제아
빌보드 코리아 2020년 상반기 결산에서 이 노래를 추천했다. 시기와 주제 모두 맞지 않았지만 나는 방황하는 이방인의 정서를 담은 노래가 마음에 들었다. 그때의 내가 상처를 준 모든 이들에게 이 노래의 가사를 빌려 변명하고 싶다. '늘 완벽하려고 했기에 점점 날이 선 듯'했다고.
태민, 2 Kids
끝을 짐작하고서라도 몸을 내던지는 젊음의 무모함이 아름답다. 누군가는 나를 그리 생각해주길 바랄 뿐이다.
정밀아, 환난일기
서울에서 나는 영원한 이방인이구나 싶어 우울했던 때 '청파소나타' 앨범이 많은 위로를 건네주었다. 언젠가는 그처럼 정성껏 살아갈 수 있는 여유를 찾고 싶다.
Lauv, Modern Loneliness
앨범 소개글을 썼다. 가장 와닿는 노래였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류의 콘텐츠가 무조건 평가절하당해야 하나 싶었다. 사고의 폭을 넓혀준 곡이다.
Mac Miller, Good News
2020년만큼은 모두가 맥 밀러의 죽음을 추모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온기 어려 더욱 우울했던 유작과 함께 전대미문의 바이러스가 지구촌을 뒤덮었다.
Tame Impala, One More Year
'2020년대 복고를 좇는 모든 마니아들에게 당위를 부여했다...'라는 문장을 썼다. 사실 이때쯤부터는 레트로라는 단어가 썩 와닿지는 않았다. 훌륭한 복각과 레퍼런스 범벅은 다르다. 어쨌든 테임 임팔라를 사랑한다.
Bad Bunny, Si Veo Tu Mamá
잘 나가는 스타 배드 버니의 천재성을 확인한 노래. 'The Girl From Ipanema'의 재치 있는 샘플링을 들었을 때 기절하는 줄 알았다. 지금도 배드 버니를 소개할 때 이 노래를 권한다.
Avenue Beat, f2020
코로나19와의 싸움은 이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름 무언가를 일구려 노력했고 때에 맞지 않는 전략임에도 관철시키려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했다. 분주히 연말을 준비할 때쯤 틱톡에서 바이럴을 타던 이 노래가 와닿기 시작했다. 맥이 풀렸다.
2021 / 28살
아이유, Celebrity
싱글 리뷰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대를 마무리하는 아이유의 모습에서 나도 뭔가 소소하게 하나쯤 준비하고 싶었다.
김현철, City Breeze And Love Song
회사에 들어가 땀 뻘뻘 흘리며 의자를 나르고 공연을 세팅할 때 리허설 무대가 시작됐다. 몸과 마음이 고달픈데도 아름다운 음악에 취해있는 나를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역시 어떻게든 음악으로 먹고살겠구나 싶어 안쓰러웠다.
Glen Check, Dive Baby, Dive
글렌체크도 사실 추억의 이름이었다. 트렌드를 영민하게 포착하여 발표한 이 슬래커 록 싱글은 위저의 초기 커리어에 환장하던 중학교 시절 내 모습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이랑, 늑대가 나타났다
나는 '환란의 세대'만큼 누군가를 부둥켜안고 울어본 적도 없고 다 같이 죽어버리자는 생각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어렴풋이 약한 자들, 가난한 이들, 음악이 너무 먼 사람들을 위해 일하자는 생각은 품고 있었다. 곧 사회가 혼란스러워질 때 이 노래의 힘이 더욱 커질 거라 생각했다. 사실이었다.
김뜻돌, 비오는 거리에서 춤을 추자
너무 스매싱 펌킨스, 너무 홀, 너무 가비지... 그래도 페스티벌 무대에서 이 노래를 다 같이 따라 부르며 슬램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2022년 펜타포트 흙바닥에서 몸을 부딪치고 나뒹굴며 소원을 이뤘다.
Arlo Parks, Caroline
'비정한 겨울의 깊은 곳에 불어온 따뜻한 바람'. 팬데믹 시기 몇 안되었던 위로의 노래.
John Mayer, Last Train Home
추억 속 잠들어있던 존 메이어가 근사한 노래로 돌아왔을 때 아는 척 좀 할 수 있어서 좋았다.
HAIM, The Steps
폴 토머스 앤더슨과 하임 자매의 아름다운 합작. 2022년 '리코리시 피자'로 다시 한번 검증된 조합이다. 무엇이든 차근차근 쌓아가는 습관을 가진 내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다양한 이들에게 나의 가치관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렇게 2013년부터 함께했던 이즘을 나왔다.
Olivia Rodrigo, good 4 u
올리비아 로드리고만큼 2021년 주목해서 깊게 보고 해석한 아티스트가 없다. 프롬 파티를 콘셉트 삼아 무대를 누비는 월드 투어를 직접 보지 못해 아쉽다.
WILLOW, t r a n s p a r e n t s o u l
이모코어 팝펑크 리바이벌을 마주하는 기분이 묘했다. 어떤 음악이든 일단 듣고 기억해두면 쓸모가 있다.
2022 / 29살
윤하, 사건의 지평선
2021년까지 윤하의 열렬한 팬이라고 요란하게 말하지 않는 편이었다. 평론가 타이틀에 팬심이 들어가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사건의 지평선'은 그 무거운 책임감에서 나를 해방한 곡이다.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의 감동, 윤하와의 인터뷰, 역주행... 모든 순간이 기적 같다.
NewJeans, Attention
극한 상황까지 나를 밀어붙여 골골대고 있을 때 이 노래의 후렴이 하늘에서 아름답게 수놓아져 내려왔다. 뉴진스를 통해 나의 세대가 품는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또 다른 세대와 부딪칠 수 있어 좋았다.
박소은, 반복되는 모든 게 날 괴롭게 해요
노래 제목 그대로였고 회사를 나왔다. 나에게 맞는 쳇바퀴가 있는 법이다.
검정치마, 99%
20대 괜찮았니? 너무 들뜨지 마. 별로 대단치 않은 시기에 의미 부여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잘 가라.
레드벨벳, Psycho
'다시 안 볼 듯 싸우다가도 붙어 다니니 말야'
Carly Rae Jepsen, The Loneliest Time
그토록 고독하고 슬프고 어려운 시간을 지나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된 거야.
ROSALÍA, HENTAI
이토록 황홀한 불온이란! 'Papi Pacify'에 감탄했던 나의 취향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Deafheaven, Dream House
2022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이 노래가 나올 때만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친구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천지를 찢는 듯한 굉음에 몸을 맡기던 추억은 지금도 강렬한 감각으로 내게 남아있다.
Utada Hikaru, Beautiful World
오랜만에 기타를 잡고 친구들과 합을 맞췄다. 합주의 재미를 깨달았다. 에반게리온을 다시 마주하는 데도 많은 다짐이 필요했다.
Ewan McGregor, Better Tomorrows
일본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를 봤다. 주로 나는 최대한 많은 일을 대비하고 그 결과로 안정적인 상황을 누리는 타인에게서 만족감을 느껴왔다. 이제는 내일보다 오늘, 그리고 지금 바로 이 순간을 즐겨봐도 괜찮지 않을까. 20대로 살 날도 늘어났으니, 불확실함에 몸을 맡겨봐도 좋지 않을까.
욕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