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리 음악의 유행과 문화 전쟁
컨트리의 미국 내 인기는 굳건하다. 대중음악에 어떤 변화가 닥쳐와도, 거대한 슈퍼스타가 등장해도 컨트리 시장은 굳건히 백인 수요층을 지켜왔다. 심심치 않게 차트에 이름을 올리고, 연말 그래미 시상식과 컨트리 뮤직 어워드에서 전통과 역사를 과시한다.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2023년 컨트리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컨트리 슈퍼스타 모건 월렌의 'Last Night'은 14주 동안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하며 2023년 미국 최고의 인기곡을 예약했다. 루크 콤스가 트레이시 채프먼의 'Fast Car'를 다시 부른 곡은 모건 월렌의 12주차 넘버원과 더불어 빌보드 2위까지 올랐다. 컨트리 음악이 빌보드 싱글 차트 1, 2위에 오른 건 1981년 이후 최초의 기록이다.
이후 올리비아 로드리고와 정국이 잠시 모건 월렌의 독주를 저지했다. 그러자 이번 주에는 베테랑 컨트리 싱어송라이터 제이슨 알딘이 'Try That in a Small Town'으로 새로운 1위 자리를 차지했다. 모건 월렌, 루크 콤스와 함께 1, 2, 3위를 독식했다. 컨트리 곡이 빌보드 HOT 100 1, 2, 3위를 차지한 것은 빌보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해 컨트리 스트리밍은 전체 음악 스트리밍 증가세인 48.5%를 넘어서는 58% 성장세를 보였다. 2023년 미국 내 컨트리 음악 소비는 전년 동기 대비 20.3%나 증가했다. 이에 힘입어 모건 월렌의 앨범은 발매 첫 주에 4억 8,300만 건 이상의 스트리밍을 기록하며 스포티파이 역대 5위 기록을 세웠다. 바이럴도 되고 있다. 현재 미국 스포티파이 바이럴 차트 1위에 오른 곡은 싱어송라이터 제이크 힐이 창조한 가상의 컨트리 가수 딕슨 댈러스의 'Good Lookin''이다.
컨트리는 전통적으로 지역 중심 라디오 에어플레이와 앨범 판매에서 강세를 보인 장르였다. 스트리밍과는 거리가 멀었다. 얼마나 컨트리 팬들이 스트리밍과 거리가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2015년 데뷔한 루크 콤스의 매니저 크리스 카피(Chris Kappy)는 공연장에서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루크 콤스 구독을 인증한 팬들에게 티셔츠 할인 쿠폰을 뿌려야 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며 컨트리 레이블과 음악가들의 전략도 달라졌다. 모건 월렌, 루크 콤스, 잭 브라이언 등 젊은 세대 가수들이 등장했다. 디플로 등 인기 디제이들과 협업하고 틱톡 및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를 잘 다루는 이들은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격리된 중장년층 컨트리 팬들이 스트리밍을 배워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컨트리 팬들은 스트리밍으로 연간 1,270시간 음악을 듣는데, 이는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지 않는 컨트리 팬들의 1.6배 이상이라고 한다.
대중음악계에 대한 미국 백인층의 백래시 심리도 컨트리 열풍에 불을 붙였다. 2010년대 중후반은 힙합의 시대였다. 대중음악계 슈퍼스타들은 위켄드, 아리아나 그란데, 드레이크, 트래비스 스콧이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 유색인종, 성소수자 인권 운동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미국 백인들의 새로운 가치관의 상징이다. 백인들만 도맡던 보이그룹 역할은 아시아의 BTS에게 빼앗겼다. 당시 컨트리 계에서 주목받은 이들이 성소수자 지지를 표명한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 흑인 여성 컨트리 가수 미키 가이튼이었다.
컨트리는 여성과 음주가무, 파티와 자동차를 찬양하는 브로-컨트리(Bro-Country)에 힘을 실었다. 더 보이스 예선에서 어수룩하게 등장한 모건 월렌은 머리를 밀고 위스키를 걸치는 백인 마초 컨트리맨으로 콘셉트를 바꾸고 나서 성공 가도를 걸었다. 한술 더 떠 팬데믹 시기 문란한 삶을 즐기고 흑인 비하 발언을 내뱉으며 문화계에서 매장당할 뻔했다. 그 문제아같은 행동에 백인들이 열광했다. 모건 월렌은 공화당 성향의 정치적 구호가 등장하는 공연장 만원 관객들과 함께 슈퍼스타가 되었다.
제이슨 알딘의 'Try That in a Small Town'은 더 노골적이다. 할아버지께 물려받은 총기와 함께 올바르게 교육받고 자란 이들이 가득한 백인 소규모 커뮤니티와 함께 '경찰을 욕하고 국기를 불태우는' 불순분자들을 용서치 않을 것이라는 경고의 노래다. 심지어 제이슨 알딘은 2017년 10월 1일 61명의 사망자와 867명의 부상자를 낳은 라스베가스 총기 난사 당시 공연 중 황급히 대피한 충격을 경험한 가수라는 점에서 충격이 크다.
노래도 노래지만 뮤직비디오가 더 논란이다. 내슈빌 미국 내 혼란상과 BLM 시위 장면을 어지럽게 보여주며 1927년 흑인을 린치한 테네시주 법원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제이슨 알딘의 모습이 담겨있다. 거대한 논란에 BLM 영상 부분을 삭제했지만, 그를 향한 시선은 호의적이지 않다.
물론 변화의 움직임도 있다. 음악가 타일러 차일더스는 노래 'In Your Love' 뮤직비디오에 게이 커플을 등장시켰다. 마고 프라이스, 제이슨 이스벨 등 싱어송라이터들이 타일러 차일더스의 용기 있는 결과물에 응원을 보냈다. 바이럴 히트를 기록 중인 딕슨 댈러스의 'Good Lookin''은 게이 컨트리 송이며 이전에 발표한 노래 'Like Whiskey'도 게이의 관점을 담고 있다. 딕슨 댈러스를 연기하는 가수 제이크 힐도 성소수자라는 이야기가 돈다.
컨트리 음악의 인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복합적이다. 스트리밍에 적응한 강력한 내수 소비 음악이 어디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그 바탕에 트럼프를 지지하고 그를 당선시킨 미국 백인 커뮤니티가 있고, 슈퍼스타들은 그들의 입맛에 맞는 노래를 불러 인기를 누린다. 진보적인 성향의 언론과 유색인종 커뮤니티에서 모건 월렌과 제이슨 알딘에 대한 비판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다만 이 문화 전쟁에도 희망이 있다. 대중 친화적인 멜로디와 간결한 곡 구조, 일상과 감정을 노래하는 컨트리가 새로운 시대를 향한 메시지를 담아 노래했을때 충성스러운 백인 커뮤니티에게도 변화가 시작된다. 1990년대 케이디 랭, 오늘날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와 타일러 차일더스가 그런 인물들이다.
뉴욕타임즈에 글을 기고한 그래미 수상 음악가 케치 시코는 '컨트리 음악이 미국을 총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는 칼럼으로 컨트리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장했다. 컨트리 가수들이 보수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대신 인권 운동을 노래하고 총기 규제를 주장하여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의 말처럼 내슈빌은 끔찍한 폭력과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 그래야만 한다. 컨트리는 미국인의 음악이고, 미국인은 컨트리 없는 음악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