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예 웨스트와 타이 달라 사인의 ¥$ 리스닝 세션
카니예 웨스트와 타이 달라 사인의 ¥$ 리스닝 세션에 갈 생각이 없었다. 가야 할 이유보다 가지 말아야 이유가 더 많았다.
지난 몇 년간 칸예는 천재적으로 쌓아 올린 명성을 스스로 무너트렸다. 한국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인간 악기 밈이 되는 형벌을 받는데, 칸예의 수많은 사건 사고와 논란은 재미로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급하게 내놓은 앨범과 벌처스 프로젝트 음악은 최악이다. 더구나 리스닝 파티는 불성실하고 주최자는 툭하면 지각하거나 폭탄 발언을 일삼거나 공연을 취소한다. 정말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끝내 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금요일 밤 친구와 함께 3년 만에 마이크를 잡고 열정적인 라이브를 선보이는 카니예 웨스트의 라이브 생중계를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808 & Heartbreak 앨범에 감탄하며 ‘역시 안 간 사람이 승자’라 흡족해했는데, 극심한 후회로 바뀌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성공을 확신하며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남자, 창작의 정점에서 바벨탑을 쌓았던 남자의 빛났던 순간이 56곡의 히트곡 메들리로 펼쳐졌다.
정황상 칸예가 좋은 공연을 펼칠 가능성은 높았다. Vultures 2의 음악은 끔찍했지만, 비앙카 센소리와 노스 웨스트 가족은 유달리 화목하다. 여러 악영향을 끼치던 주위 간신과 마약 문제도 나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칸예는 왜 하필 지난 금요일의 공연을 자신의 부활 대축일로 결정한 걸까?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의 행보를 예측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짓이 없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들었다.
예는 약속의 땅 한국에서 예절 주입을 받고 칸예로 부활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예는 칸예고 칸예는 예다. 칸예가 오래된 히트곡을 기억의 저편에서 하나씩 꺼내 들 때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차마 호전적인 울트라스들의 ‘Carnival’과 희대의 조작으로 테일러 스위프트를 곤경에 빠트렸던 ‘Famous’를 합창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국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그의 열정은 뜨거웠다. 그러나 그가 ‘Fuck Adidas’를 선창할 때, 채팅창에서 남초 커뮤니티 언어가 쏟아질 때의 기분은 씁쓸했다.
21세기 대중문화의 수많은 맥락과 사연이 교차하는 지점에 카니예 웨스트가 있다. 그래서 그는 중요한 문제적 인물이다. 라이브를 시청하며 친구와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맥락이었다. 혐오 발언을 일삼고 엉망진창 정치 철학을 앞세우며 많은 이들을 실망케 하는 현재의 문제아지만, 수많은 이들을 음악에 뛰어들게 만든 과거의 영웅이기도 하다. 미국이었다면 문제가 되었을 여러 맥락으로부터 아시아권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여기에 최근 문화적으로 주목받고, 음악 및 패션 팬덤이 굳건한 데다, 익숙한 일본보다 덜 알려진 한국이라면. 전성기의 편린을 드러내기로 하기에는 충분한 무대 아니었을까.
칸예는 입체적이다. 더욱이 양극성 장애를 안고 있는 인물이다. 어떨 때는 예라는 하이드가 되었다가 성실한 지킬 박사 칸예가 돌아온다. 금요일 한국에서 칸예는 우리의 기억 속 자신감이 넘쳐 오만하다는 오해를 받던 시기의 열정적인 아티스트였다. 그러나 동시에 어두운 선동가와 극단적인 쾌락의 그림자도 드리우고 있었다.
한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하지만 점점 한쪽에서만 바라보고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려는 세상이 되어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오늘날을 만드는 데 일조한 사람이 칸예기도 하다. 위험한 시대정신을 대표하고 음모론을 퍼트렸다. 그러나 음악이 우선순위에 있었던 고양종합운동장 카니예 웨스트의 공연은 다 큰 아저씨들부터 대학생, 걸그룹까지 모두를 감탄케 했다.
서로 다른 말이 뒤섞이는 혼란의 시날 땅에서 칸예가 좋은 경험을 안고 앞으로 선한 영향력을 더 많이 끼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