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노래하는 교훈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2025년의 여름, 이승과 저승 두 세계가 응원봉을 들고 리듬에 맞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만들고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가 날씨만큼이나 뜨겁다.

음악과 춤으로 대를 이어 악귀들과 맞서 싸워온 케이팝 걸그룹 헌트릭스와 이에 맞서 귀마족이 앞세우는 5인조 저승사자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의 대결, 그 이면에 숨겨진 비밀을 탐구하는 작품은 케이팝을 사랑하는 음악 팬과 직관적인 애니메이션에 매력을 느끼는 장르 팬을 모두 사로잡았다. 서울에서 태어난 캐나다 국적의 매기 강, 한국계 미국인 작가 모린 구의 남편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크리스 아펠한스가 치밀하게 묘사한 케이팝의 디테일과 서울의 풍경, 귀여운 호랑이 더피(Derpy) 등 ‘떡밥’도 끝이 없다.

예상치 못한 것은 음악의 성공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케이팝이 거뒀던 최고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울 기세다.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 곡 ‘Golden’의 역주행은 어떤 케이팝 걸그룹도 가져보지 못한 역사였다. 8월 넷째 주 싱글 차트에는 ‘Golden’과 더불어 ‘Your Idol’과 ‘Soda Pop’이 있다. 앨범 순위는 2등이다. 모두가 열광한다. 수많은 케이팝 그룹이 헌트릭스와 사자 보이즈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케이팝 하면 떠오르는 스테레오타입이 현실의 인간에서 매력적인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대체되는 순간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음악은 충실하다. 어디에 충실하냐면 K팝의 정석이다. 2025년 오늘날 우리가 K팝이라 하면 흔하게 떠올릴 수 있는 요소를 섬세한 작품 속 한국 묘사처럼 정확하게 구현하고 있다. 카리스마 있는 가창과 랩으로 자신만만한 걸 크러쉬 콘셉트를 소화하는 헌트릭스의 'How It’s Done’에선 블랙핑크에스파의 히트곡이 대번에 떠오른다.

그룹의 강인한 매력과 당당한 태도는 걸 크러쉬를 한 단계 발전시켜 거대한 스타디움 팝으로 발전한 케이팝 걸그룹의 오늘날 행보를 상징한다. 이 음악이 향하는 곳은 더 큰 무대다. 악귀를 물리치던 멤버들은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을 닮은 메인 스테이지로 자유 낙하한다. H.O.T.를 시작으로 동방신기, god, 방탄소년단, NCT 127과 드림 등 보이그룹의 역사는 있었던 반면 케이팝 걸그룹은 아직까지 서보지 못한 꿈의 경기장이다. 세계 최고의 비싼 경기장에서 수만 명의 관객을 몰고 다니는, 전세계로 생중계되는 음악 페스티벌 무대의 헤드라이너를 장식하는 케이팝 걸그룹의 오늘날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지점이다.

이 거대한 야심을 몇 년 전 뮤직비디오로 동일하게 구현한 팀이 있었다. 드넓은 활주로를 런웨이 삼아 수만 피트 상공에서 두려움 없이 몸을 내던지던 아이브의 ‘I AM’이다. ‘매일 내게 열리는 건 Big Big Stage’. 아이브는 남산 타워가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고층 빌딩 위에서 더 큰 상승의 꿈을 꾼다. 압축성장의 한국 현대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케이팝 산업의 숙명은 오직 진군이다. 커다란 무대 위 환호하는 관객들 앞에서 우상으로 기능할 때의 짜릿한 쾌감 앞에 지난하고 고통스러웠던 연습생 수련의 과정도, 수많은 가십과 오해도 사소한 것처럼 사라져간다. 정직한 셔플 리듬의 케이팝 행진곡은 마치 군가를 연상케 할 정도로 비장하다.

‘Golden’은 그 후속곡이다. 혼란스러운 정체성과 어두운 과거를 뒤로 한 채 무대 위에서 찬란히 빛나 보이겠다는 사명감으로 가득한 곡이다.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이라 할 수 있는 이 노래가 케이팝 걸그룹 최초의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그 충실한 복원에 있다.

케이팝은 거듭 위를 보며 걸었다. 포화 상태에 다다른 국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원초적인 감동 대신 어떻게 하면 다르게 들릴지, 어떤 극적인 콜라보레이션을 이룩할지, 어떤 식으로 해외 시장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지를 고민했다. 모국의 기억을 간직한 이민자들은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결코 동화될 수 없는 낯선 땅에서 서로를 단단하게 옭아매고 있는 그들의 뿌리를 찾아 파고 파고 들어갔다.

노래의 감동이 여기에 있다. 긴 연습생 생활에도 끝내 데뷔의 꿈을 이루지 못한 이재(EJAE)와 타인에 의해 정해진 운명에 시달리며 자신을 억압하는 헌트릭스의 루미가 공명하는 것은 숙명이다. 개천에서 용 나고,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 케이팝 개미지옥 ‘프로듀스 101’의 중간순위 1위를 차지한 후 어머니에게 ‘앞으로 꽃길만 걸읍시다’라며 펑펑 눈물을 쏟던 김세정, ‘밤새 일했지 everyday, 니가 클럽에서 놀 때’라 소리치며 피, 땀, 눈물을 흘리던 BTS…. 화려한 성공 아래 우리가 잊고 있던 케이팝의 황금률을 ‘Golden’이 일깨웠다.

헌트릭스의 노래가 감정의 재현이라면 사자 보이즈는 기술적인 재현이다. 1세대 케이팝을 기억하는 감독 매기 강은 H.O.T.가 ‘행복’에서 ‘We Are The Future’로 넘어가던 시기를 참조했다고 밝혔다. 길거리 버스킹 공연을 펼치는 각양각색 매력의 저승 아이돌은 치명적인 매력으로 팬들을 빼앗아 오겠다는 사명에 충실하다. 다 아는 맛인데도 끊을 수 없다. 신인 보이 그룹의 청량함성숙한 매력이 결합한 ‘Soda Pop’이 달콤한 간식이라면 초자연적인 존재로 분해 세뇌에 가까운 무한한 사랑을 맹세하는 ‘Your Idol’은 매콤한 야식이다.

그래서 사자 보이즈는 헌트릭스를 결코 이길 수 없다. 보이 그룹의 문법은 케이팝 30년의 역사의 시작과 함께 산업을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음에도 너무도 뚜렷한 셀링 포인트 때문에 혁신하기가 어렵다. 건드려볼 만한 콘셉트는 이미 시장에 나왔다. '화양연화'로부터 '너 자신을 사랑하라'까지 완성한 BTS의 소년 신화 이후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한 시점인데, 아직 표류 중이다. 혹은 완벽히 순간의 유희에 복무하는 방법뿐이다. 최근 몇 년간 케이팝 시장에서 필승공식처럼 번지는 '이지 리스닝'의 경향이 이에 해당한다. 사자 보이즈의 유혹은 치명적이다. 하지만 깊이 가닿지 못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음악은 케이팝을 만드는 방식 그대로 제작됐다. 테디의 더블랙레이블이 주축을 맡아 소속 프로듀서 24, 아이디오, 도민석이 참여했다. 힙합 그룹 원타임으로 데뷔하여 YG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케이팝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독립 레이블 설립과 함께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고자 하는 테디는 케이팝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인물로 이 프로젝트의 적임자다.

검증된 글로벌 히트메이커들도 빠질 수 없다. BTS의 ‘버터(Butter)’,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를 만든 제나 앤드류스 & 스티븐 커크 듀오가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에 소재를 두고 있는 레이블과 글로벌 작곡가들의 합작은 오늘날 케이팝에서 가장 흔하게 목격할 수 있는 제작 방식이다.

덕분에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은 미국식 애니메이션 활극의 형식에 현지로부터 따끈따끈하게 수입해 온 최신의 케이팝 영혼을 주입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영화만이, 애니메이션만이 가능한 확장의 손길은 분명 케이팝이되 서구 사회가 제작한 케이팝으로도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됐다.

케이팝 시상식 무대에서 와이어를 달고 공연장을 활보하는 ‘Golden’은 명실상부한 하이라이트다. 3옥타브 라까지 올라가는 최고음을 소화하며 격렬한 안무와 함께 극과 같은 퍼포먼스를 해내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매료된 수많은 현실의 케이팝 그룹들이 앞다투어 노래를 커버하고 무대를 가져오고자 노력하고 있다.

만약 ‘Golden’이 기성 아이돌 그룹 곡이었다면 어땠을까. 중간 인터루드 부분에 랩 파트를 삽입하여 모든 멤버의 고른 참여를 독려하고, 안무의 난도를 낮췄을지 모른다. 애니메이션은 그럴 필요가 없다. ‘Soda Pop’과 ‘Your Idol’ 역시 마찬가지다. 극의 주요 서사를 담당하는 각 노래가 뮤직비디오를 겸하는 뮤지컬 영화로의 개성을 위해 확실한 기승전결을 갖추고 있다. 등장 그룹과 구성원의 내면을 투영하고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 공을 들인다. 변화무쌍한 등장인물들의 표정처럼 작품의 케이팝은 ‘극화된 케이팝’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음악의 성공은 케이팝 '종주국' 한국에 여러 가지 생각할 점을 던진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커다란 케이팝을 목격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케이팝을 바라보는 자국의 시선은 썩 곱지 않다. 영혼이 없다, 닥치는 대로 조립하고 도용한다, 자본을 앞세워 가요계를 짓밟는다는 혹독한 비판이 쏟아진다. 불거진 경영난과 이권 다툼 등 위기론이 횡행한다. 같은 시간과 역사를 공유하기에 맡을 수 있는 내부자의 감시 역할이다.

그렇게 케이팝은 30여 년이라는 시간의 탑을 쌓았다. 그 속에서의 추억을 되새기며 힘차게 오늘을 살아 나가는 사람들과 그들을 동경하는 팬들의 수도 상당해졌다. 우려의 목소리와 별개로 지금 케이팝은 온 세계 대중에 새로운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프린세스와 마블의 슈퍼히어로들을 동경하던 아이들은 케이팝 아이돌을 새로운 우상으로 삼아 헌트릭스와 사자 보이즈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케이팝의 가능성을 현실로 발현한 주인공은 해외 진출 및 현지화 전략을 세우던 국내 레이블이 아니었다. 일련의 흐름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글로벌 제작사와 배급사였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하여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다. 할리우드는 한국의 케이팝 인력에 제작을 위탁하지 않았다. 대신 한국인, 혹은 한국계 이민자들을 채용했다. 케이팝 기획사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맡거나 특정 그룹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으지 않았다.

영리한 결정이었다. 틱톡 시대와 팬데믹을 거쳐 '남들이 모르는 새로운 무언가', '낯선 문화로부터 발견하는 가능성'의 가치가 높아진 가운데 케이팝은 어떤 형태로든 미디어 믹스로 등장할 운명이었다. 이미 픽사의 2022년 작 '메이의 새빨간 비밀'을 포함하여 케이팝의 영향을 숨기지 않는 작품이 등장하고 있었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필두로 각국의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왔던 새 시대의 만화영화가 새로운 제작사의 손에 케이팝이라는 새로운 소재로 세상에 등장한 것이다.

누구보다 케이팝을 사랑하고, 한국 문화에 능통한 경력자들이 문화 전유 및 왜곡의 논란을 의식하며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그 결과가 정교한 재현과 애정어린 시선, 빠른 학습을 통해 세계 시장을 정복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다. 과연 '대를 이어 춤과 노래로 악령을 퇴마하는 3인조 여성들이 케이팝 아이돌로 활동한다'는 설정을 한국에서 쉽게 내놓을 수 있었을까. 극에 등장하는 무속의 전통과 남산 타워, 탄수화물 폭탄 음식과 민화, 너무 익숙해서 지나치기 쉽지만, 해외에는 흥미로운 소재다. 외부자만이 만들 수 있었던 작품이다.

종주국의 마음은 복잡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은 분명히 호재다. 케이팝 문화의 가치를 인정받고 세계적인 공감을 받아 보편화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고민은 '종주국화'에 있다.

레이블들이 현지 시장에 진출하기도 전에 우후죽순 케이팝의 형식을 적용하여 등장한 전 세계 각국의 수많은 그룹을 ‘한류 열풍’이라며 흐뭇하게 바라보던 지난날을 떠올려보자. 소니 애니메이션 픽처스가 더블랙레이블의 프로듀서들과 함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노래를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3년이었다. 작품의 성공은 대규모 글로벌 자본이 ‘4대 기획사’를 거칠 필요 없이 유명 그룹과 레이블의 비결을 학습하여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당장은 기술과 영혼을 갖춘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간문제일 뿐이다.

가무에 능한 저승사자 진우가 헌트릭스를 본따 손쉽게 사자 보이즈를 제작하듯, 글로벌 자본은 케이팝의 작동 방식을 신속히 배워 한국 레이블과의 관계를 의존에서 협업으로 빠르게 대체해 나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정체불명의 혼종 음악조차 즐겁다. 케이팝이 원래 그 광범위한 범용성과 재빠른 적용 및 속도의 매력으로 오히려 사랑받는 음악인 덕이다.

현실의 헌트릭스를 길러내는 것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수많은 사자 보이즈를 양산할 수 있다면 관계자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한국인이 제작한 글로벌 케이팝 그룹보다 글로벌 음악 공룡들이 더 '진짜' 같은 케이팝 그룹을 만든다면 국내의 반응은 어떨까. 제작 과정부터 홍보까지 모든 과정에서 구인난과 구직난에 시달리며, 박봉과 과로에 메말라가는 이 업계가 인재 유출까지 가속화된다면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네게 마음을 줬으니, 이젠 영혼도 가져갈게.’.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음악 가운데 미국에서 가장 먼저 인기를 끌었던 곡은 아이러니하게도 ‘Your Idol’이었다. 음악보다 음악을 포장하고 음악을 알리는 방식이 중요해진다는 비판이 속속 등장하는 오늘날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케이팝의 무국적 보편성을 증명하며 가장 빛나는 순간의 가치를 되묻고 있다.

‘나는 유령이었고, 외톨이였어. 더는 숨지 않아, 난 빛나고 있어, 우리는 찬란히 빛나’. ‘Golden’을 열창하며 지난 경력이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는 이재의 사연이 헌트릭스를 살아 숨 쉬게 한다. 출생의 비밀과 무거운 사명감을 극복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용기 있게 받아들이는 서사가 잠들어있던 영혼을 깨운다.

‘상처는 우리의 일부, 어둠과 조화, 거짓 없는 내 목소리, 이게 바로 그 소리야’. 해원(解寃)하며 되새기는 고진감래(苦盡甘來).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본 케이팝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