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2023년 1월 #3
2023년 1월 21일부터 2월 1일까지 이승윤, 홀리데이, 혼즈, XG, NCT 127, 팔칠댄스의 음악을 다뤘다.
이승윤, ‘꿈의 거처’
2022년 여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이승윤이 웃으며 관객들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네가 왜 나와'에서 '네'를 담당하고 있는 이승윤입니다.".
JTBC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으로 대중에 이름을 알리며 견고한 팬덤을 확보한 이승윤은 로커다. 10년 전 대학가요제 출전 때도 그랬고, 기나긴 무명의 시간과 알라리깡숑의 보컬로 활동하는 동안에도 그랬으며, 마음속 품었던 노래를 솔로 이름으로 내놓을 수 있는 지금도 그렇다. 각 노래마다 선명한 기승전결의 서사를 두고 대곡을 지향한 2021년의 야심 가득한 새 출발 '폐허가 된다 해도'로 호평받은 이승윤은 두 번째 정규 앨범 '꿈의 거처'로 훨씬 드세면서도 유연한 음악을 통해 제약 없는 자유로운 상상과 야심을 펼쳐 보인다. [더보기]
Holyday, ‘Holy’
오케이션, 오디, 오이글리 등 래퍼들과 함께 2010년대 한국 트랩 음악을 이끌었던 프로듀서 홀리데이(Holiday)의 첫 정규 앨범이다. 독특한 킥 사용과 거친 느낌의 소리로 공격적인 메시지와 쿨한 파티에 어울리는 비트를 제공해 온 그는 본인의 이름을 걸고 발표하는 작품에서 기대를 충족하며 넓은 창작의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 멤피스의 서늘한 분위기를 적재적소에 구분하여 훌륭한 완급조절을 들려주는 'Tag'과 둔탁하고 공격적인 곡 'Anti', 게스트에게 최적의 플레이그라운드를 선사하는 'Bluffin'과 'Guilty Pleasure'가 홀리데이의 개성을 상징하는 곡이다. 반대로 보이스 샘플 코러스 활용하여 성스러운 무드를 자아내는 'Spotlight'과 팔로알토가 참여한 'Wavin', 재지 한 기타 진행이 빛나는 로파이 곡 'HOW U FEEL'은 홀리데이가 해석한 '커먼의 'BE' 앨범' 스타일이다. 전체적으로 곡의 러닝타임이 짧아 화려한 참여진의 매력을 완전히 들려주지는 못하지만, 다재다능하고 능숙한 베테랑 프로듀서의 첫 청사진이라는 의미가 있다.
혼즈(Hon'z), ‘Romance’
2015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싱어송라이터 홍시은을 중심으로 결성된 대구 기반의 4인조 밴드 혼즈의 첫 정규 앨범이다. 'Romance'는 이리저리 부유하는 백일몽과 쉬이 와닿지 않는 공상의 세계가 아니다. 1990년대 가요 속 진솔한 감정의 표현과 2010년대 록 밴드들의 다듬어진 서정성을 담은 혼즈의 음악은 유연하며 강단 있고, 감각적이면서도 대중과의 거리를 멀리하지 않는다. 조원선을 떠올리게 만드는 단단한 시은의 목소리, 간결하고 굵은 선율을 연주하는 기타리스트 진석의 연주가 개별 곡의 감정선과 멜로디라인을 선명하게 붙들고 있다. 현실에 적을 두고 꿈꾸는 낭만이야말로 아름답다.
XG, 'Shooting Star'
XG의 과도한 노이즈 마케팅과 논란의 인터뷰는 케이팝 포맷의 글로벌 시장 이식 과정의 과도기를 상징한다. 전원 일본인으로 구성된 7인조 걸그룹 XG는 5년간의 케이팝 연습생 과정을 거쳐 데뷔하였으며, 케이팝 산업에 종사하는 스태프들과 에이벡스 회장 마츠우라 마사토가 제작 과정에 참여한 음악으로 한국 방송에서 활동한다.
제작자들은 형식의 참조를 인정한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차원에서는 X-POP이라는 변칙 작명과 민감한 한일관계, YG엔터테인먼트를 동원한 언론플레이까지 활용하며 완전히 다른 그룹임을 강조한다. 에이벡스는 케이팝 시스템을 순조롭게 이식하여 야심 차게 XG를 선보이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활동 단계에서의 경험과 교훈까지는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
여타 수식이나 홍보가 필요 없는 곡이었기에 기획사의 실책이 더욱 두드러진다. 하이퍼 팝 열풍 시기의 신비로운 벨소리와 레드벨벳 'Bad Boy'를 연상케 하는 알앤비 곡에 Z세대 싱어송라이터들의 드럼 앤 베이스 멜로디를 더한 'Shooting Star'는 인상적인 랩 퍼포먼스와 안정적인 보컬이 공존하는 웰메이드 팝이다. 챈슬러가 작사 작곡에 참여한 알앤비 트랩 'Left Right' 역시 부드러운 구성에 확실한 훅을 갖춘 매력적인 곡이다. 좋은 곡과 상당한 공을 들인 퍼포먼스가 브랜드 이미지와 직결되는 논란 앞에 힘을 잃는다.
NCT 127, 'Ay-Yo'
최고라는 자부심을 거듭 증명할 필요가 있을까. NCT 127의 정규 4집 리패키지 앨범 타이틀곡 'Ay-Yo'는 최근 SM 핵심 프로젝트의 실책을 반복한다. 자유로운 영혼의 후회 없는 오늘을 강조하는 노래에 의미심장한 단어와 비장한 문장, 신화 속 존재가 난무하고 갓 더 비트의 'Stamp On It' 앨범 수록곡 'Alter Ego'처럼 공감하기 어려운 신세계 패러다임이 등장한다. 서늘한 비트와 뿌연 신스 드랍, 템포를 확 떨어트리는 로파이 톤의 브리지도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자극적인 배기음처럼 말초적 자극을 가한 '질주'와 사이먼 페트렌이 참여하며 매력적인 레트로 퓨전재즈를 완성한 'DJ'와 비교하면 비대한 'Ay-Yo'는 더욱 초라해진다. 교조적인 태도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을 때, 무한 확장을 꿈꾸는 NCT 프로젝트가 더욱 빛날 수 있다.
팔칠댄스, 'Color Paper Hotel'
감각적인 그루브를 기반으로 칠(Chill), 로파이 테마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보이는 3인조 밴드 팔칠댄스의 첫 정규 앨범이다. 리버브와 코러스로 몽환적인 사운드를 만들고 보컬 비더블루의 이리저리 부유하는 보컬을 얹는 그들의 음악은 맥 드마르코(Mac DeMarco)와 홈셰이크(Homeshake)를 연상케 하지만 여유로운 템포 위 댄서블한 그루브를 가미하며 차별점을 가져간다. 형형색색의 색종이 호텔을 무대로 삼은 'Color Paper Hotel'는 밴드의 확실한 음악 지향을 확인할 수 있는 일관된 앨범이다. 이는 팔칠댄스의 강점이자 약점인데, 감각적인 기타 팝 위 소리로 풍경을 그리며 뿌연 무드를 조성하는 솜씨가 인상적이나 수많은 해외 로파이 팝 밴드의 작품과 구분할 수 있는 특색이 없다. 딥플로우가 참여한 '바텐더', 쿤디판다와 함께한 'Tommy Cooper'에 와서야 밋밋한 풍경화 속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낸다. 근사한 공간을 묘사하는 단계를 넘어 주체적인 호텔리어를 꿈꿀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