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혁 [EROS] (2025)

“왜 이런 특이한 동작을 좋아하세요?”. 안무 연습에 열중하는 악뮤(AKMU) 이찬혁에게 카메라맨이 묻는다. 엉덩이를 넣었다가 빼고, 갈지자로 발을 밟고, 유령처럼 손을 내미는 동작 시안을 쭉 지켜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하다. 이찬혁은 짧게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절 오해하는 게 제가 막 웃긴 걸 좋아하는 줄 알아요. 웃기려고 한 적 없어요.”

기행, 파격, 행위예술... 이찬혁의 솔로 경력에 따라붙는 수식이다. 평범한 일상을 비디오 아트로 가공하고, 독특한 패션 감각을 뽐내며 범상치 않은 홀로서기의 욕구를 내비쳤던 이찬혁은 2022년 첫 단독 정규 앨범 ‘에러(ERROR)’를 통해 본격적으로 동생 수현과의 악뮤 활동과 단독의 이찬혁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구분이라는 표현으로는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절, 더 나아가 자기 파괴였다. 인터뷰어의 질문에 침묵하고, 뒤로 돌아선 채 노래를 불렀다. 무대 위에서의 삭발 퍼포먼스는 지금까지도 ‘찬혁이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유행어와 함께 기억된다.

음악을 들어본 이들의 감상은 사뭇 달랐다. 콘셉트 앨범 ‘에러’에서 이찬혁은 자신을 살해했다. ‘장애물 없이, 제한 없이 나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을 때의 나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그릇된 것이자 오류가 되어 세상을 떠날 정도의 거대한 결핍을 새로운 욕망으로 채워나가는 동기부여의 서사가 필요했다. ‘목격담’의 교통사고로부터 숨이 끊어지기까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기억과 감정을 담아낸 작품은 마지막 ‘장례희망’의 의식까지 일관된 서사를 유기적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이찬혁에게 죽음은 역설적으로 불사의 가치를 찾아 나서기 위한 창작에의 몰두와 한계 없는 도전에 지체하지 않겠다는, 삶의 의지를 드러내는 장치다.

난해한 퍼포먼스와 시각적 충격, 낯선 활동과 이를 두고 벌어진 소모적인 논쟁에 산만했던 음악 팬들은 지난해 11월 제45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축하공연에서 ‘파노라마’와 ‘장례희망’을 연이어 부르는 이찬혁의 무대를 보고 나서야 아티스트의 비범한 열망을 비로소 제대로 응시할 수 있었다. ‘지금이 내가 하고 싶은 걸 온전히 다 하는 시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던 이찬혁의 이야기가 음악을 넘어 정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무대였다. 손에 든 잔에 가득 찬 샴페인이 흘러넘치든 말든 흥겹게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던 이찬혁이 미련 없이 노래를 부르며 자유를 만끽하다 꽃으로 수놓아진 ‘에러’ 관에 누워 세상을 떠난다.

이찬혁은 예술로 극복하려 한다. 사회가 반대하고 때로는 억압하기까지 하는 정신적 속박을 벗어던져야 한다. 쉽게 사라져 버릴 이야깃거리 대신, 공들여 만들어 오래 남을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창작을 원한다.

7월 14일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 ‘에로스(EROS)’에서 이찬혁의 확고한 의지와 새로운 확신의 증명 욕구를 확인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앨범의 주제도 죽음이다. 육신에서 영혼을 떼어냈던 ‘에러’의 목소리가 자기 죽음을 노래하며 밖에서 안으로 돈다면, ‘에로스’는 타인의 죽음을 마주한 내부로부터 세상을 향해 뻗어나가는 소리의 모음이다.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로부터 잉태되는 감정, 결핍이다. 그건 사람일 수도, 동물일 수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일 수도 있다. ‘결핍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자유’라는 이찬혁의 설명대로다.

전작의 이름과 유사한 단어로 지은 제목에도 단서를 숨겨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랑과 연애의 뜻을 넘어, 철학자 플라톤의 ‘향연’에 따르면 ‘에로스’는 자신이 불완전자임을 자각하고 완전을 향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여 나가려는 인간의 정신, 아름다운 미의 세계를 동경하는 순수애를 뜻한다.

이찬혁은 수없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 악뮤 활동 및 1집과 마찬가지로 ‘에로스’의 모든 노래 작사 작곡은 물론 제작까지 도맡았다. 한 편의 콘셉트 앨범이었던 전작과 비교하면 이번 앨범은 옴니버스식이다. 타인의 죽음이라는 사건은 앨범을 시작하는 ‘시니 시니(Sinny Sinny)’에서 짧게 등장하고, 이후의 곡은 다양한 형태의 결핍을 언급하며 사라져가는 것들을 추모하고 남겨진 이들을 북돋고 있다. 다만 매력적인 서사로 묶여 있던 ‘에러’만큼 일관적이지 못해 산만한 점은 흠이다. 깊은 고찰을 담았다기에는 너무 간결하고, 직설적으로 와닿기에는 은유가 가득한 메시지가 전작만큼의 힘을 갖추지는 못했다.

간극을 채우는 요소는 멜로디와 노랫말 이외의 것들이다. 우선 풍성한 코러스다. ‘장례희망’으로부터 앨범 전반에 화음을 더하는 과감한 코러스 기용으로 확장됐다. 앨범을 여는 ‘시니 시니’와 ‘비비드라라러브’, ‘멸종위기사랑’과 같은 곡은 이찬혁의 가창 없이도 충분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 유튜브에 공개한 비하인드 영상에서 네 명으로 보이는 코러스는 MBC ‘별이 빛나는 밤에’ 콘서트에서는 최대 7명까지 늘어난다.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이찬혁에게는 너무도 익숙할 가스펠이다. 한국 합창단은 힘찬 합창과 춤동작을 통해 곡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이찬혁 혼자만의 목소리로는 불가능했을 성과다.

코러스를 인도하는 음악은 완연한 1980년대 팝을 향한 아티스트의 사랑이다. ‘멸종위기사랑’이 어디선가 들어본 것처럼 익숙하다면, 그것은 마돈나의 ‘Like A Prayer’프린스의 ‘I Wanna Be Your Lover’의 존재 탓이다. ‘1999’의 의상을 입고 ‘Batdance’의 뮤직비디오처럼 무너진 사원 위에서 춤을 추는 ‘비비드라라러브’는 또다른 프린스 재현이다. 세간에는 마이클 잭슨과 퀸시 존스의 음악이 많이 언급되고 있으나, 밴드 구성을 기본으로 하며 그 가운데 여성 멤버들의 목소리가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에서 ‘에로스’는 프린스에 가깝다.

이찬혁의 1980년대 사랑은 프린스에 국한되지 않는다. 스팬다우 발레의 잔향감과 필 콜린스의 넓은 공간감을 담은 ‘돌아버렸어’, 듀란 듀란휴먼 리그의 신스팝을 연상케 하는 ‘비비드라라러브’와 ‘TV Show’, 토토티나 터너가 겹쳐가는 ‘Eve’ 등 모든 곡에 참조를 제시할 수 있다. 영국 뉴 로맨틱의 흐름도 선명하다. ‘목격담’과 ‘파노라마’에서 확인하였듯 밴드 편성에 충실한 신스 팝 혹은 뉴웨이브로 출발한 이찬혁은 규모를 키워 음악 영웅들의 당대 최첨단 대중음악과 무대를 교본으로 삼는다. 자칫 난해하고 지극히 사적일 수 있는 주제를 친근한 음악으로 중화하는 셈이다. 단, 짙은 참조의 흔적은 피할 수 없다. 이찬혁의 솔로 음악에 대해 지옥과 연옥, 천국의 3부작을 펼치며 신스 웨이브 장르의 대유행을 이끈 팝스타 더 위켄드가 따라붙는 이유다.

이 지점에서 ‘에로스’의 완성은 음악 바깥으로 나아간다. 이번 앨범에서 이찬혁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세상에 내놓는 모든 요소에 관여했다. ‘에로스’의 비주얼 디렉팅과 뮤직비디오, 무대 연출 및 안무 창작, 밴드 의상 등 음악을 넘어 모든 결과물에 이찬혁의 선택과 시선이 있다.

뮤지컬 배우들과 함께 펼치는 '비비드라라러브''멸종위기사랑'의 열정적인 무대가 앨범 제작 과정에서 밝혔듯 ‘웃겨 보일 수 있지만,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진지해서 멋진’ 창작가들의 아우성으로 인정받는다. 단독으로 활동했던 ‘에러’에서의 독특한 단독 퍼포먼스가 집단으로 넓어지는 과정에서, 황폐한 세계 속 삶의 소중함과 서로를 구원하는 인간관계의 가치를 다 함께 아우르는 이찬혁의 의도가 완전해진다. 창작이라는 행위 자체로 에로스를 추구하는 이찬혁은 어떠한 대상에 고착되지도 않고 어떠한 범주에도 포함되지 않는, 매혹적인 아토포스(Atopos)로 진화한다.

‘에로스’는 필멸자의 불멸을 향한 갈망, 열망, 투쟁이다. 만족을 모르는 예술가의 도전은 겉보기에 우스워 보여도 실로는 치열하다. '숨을 조이는 내 결핍이 나를 빛나게 해'라는 노랫말이 귀에 들어온다. 겉보기에는 매우 슬픈 주제와 비관적인 세계관을 가졌음에도 앨범은 비정하거나 절망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개인의 만족을 위해, 영원한 행복을 위해, 제약받지 않는 삶을 위해 있는 힘을 다 쏟는 음악가의 디스토피아가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안아 구원하고 있다.

'빛나는 세상은 오지 않겠지만 그런 걸 바라는 우린 빛이 날 거야'. 천사의 날개를 단 이찬혁은 날지 못하는 공작새를 품에 안고 동병상련을 나눈다. 천재성에 대한 상찬이나 창의력에 대한 경의, 우스꽝스러운 반응은 창작가를 슬프게 만들 뿐이다. 대신 이런 단어는 어떨까. 자유, 해방, 노력, 고독, 창작, 그리고... 비상(飛上).

7/10

*이 글의 축약본이 국방일보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