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이름의 장: TEMPTATION'
*이 글의 축약본이 위버스 매거진에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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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합시다. 어떤 인간도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이다.". 괴테의 '파우스트' 중, 세상의 모든 이치를 연구하였으나 지독한 권태에 빠진 박사에게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달콤한 유혹을 건넨다.
신비한 마법, 짜릿한 혼돈을 권하는 목소리에 마음을 빼앗긴 파우스트는 자신의 영혼을 걸고 위험한 내기에 응한다. "내가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 말하면, 자네는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네.". 황홀한 순간에 흠뻑 취해 머무르기를 선언하는 순간, 이 위대한 대학자는 이름을 잃고 영원한 지옥의 종이 된다.
제임스 배리 경의 동화 ‘피터 팬’의 부제는 ‘자라지 않는 아이'다. 런던의 평범한 소녀 웬디는 어느 날 밤 창가로 날아온 미지의 소년과 작은 요정을 따라 세 남매를 데리고 영원한 젊음의 섬 네버랜드로 날아간다. 새로운 모험과 순수의 세계로의 탈출이 이어진다. 그러나 현실은 동화와 다르다. 짜릿한 일탈은 곧 불안정한 삶에 대한 도피로 이어진다.
가야 할 길이 많은 아이라는 숙명을 깨닫고 잠자리에 든 투모로우바이투게더에도 악마가 찾아왔다. 이 악마는 '어느 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처럼 성장의 대혼란을 비유하는 개념도 아니고, 'Angel or Devil'에서 풋풋한 초급 마법사들의 연애 문법으로 쓰이던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다. 자정의 창가에서 만난 악마의 목소리는 설탕처럼 달고, 나른한 백일몽은 깨고 싶지 않은 꿈으로 출발해 가상 현실을 넘어 대체 현실로 각인된다.
침대 밑 괴물처럼 은밀히 접근하는 다크팝 'Devil by the Window'에서 악마는 '싸우지 마, 꿈꾸자, 잘자!'를 속삭인다. 비교적 밝은 주제로 진행됐던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지금까지 영어 가사 노래와는 반대다. 빌리 아일리시가 친구를 묻어버리고 싶다며(‘Bury A Friend’) Z세대의 불안을 칠흑 같은 어둠으로 잠식했다면,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그 감각을 기괴하고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확장한다.
네버랜드로 날아간 소년들 앞에는 영화 '주먹왕 랄프' 속 세상처럼 아찔한 디스코 펑크 팝 'Sugar Rush Ride'가 펼쳐진다. 'Anti-Romantic'의 서정성을 주조한 세일럼 일리스가 참여해 활기찬 코러스를 더하는 이 곡에서 멤버들은 'New Rules'와 'No Rules'를 잇는 업템포의 댄서블한 디스코 팝 비트 위를 질주한다. 그러다 이윽고 숲속 어둠의 공간에서 어두운 트랩 비트 위 눈빛을 바꾼다.
아름다운 도원경 가운데의 삐걱거리는 글리치는 이 모든 풍경이 가상현실일 수 있다는 경고다. 하지만 '거부할 수가 없는' 유혹에 빠진 청년들은 행복한 바보, 'Happy Fools'가 되어 업고 노는데 정신이 없다. 구름 위처럼 산뜻한 피아노 코드 진행은 '달콤한 순간에 꽉 갇힌' 순간이며 '기분 좋은 게으름의 맛'과 '꿈만 같은 guilty pleasure'를 제대로 선사한다.
쾌감에 흠뻑 젖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몽글몽글한 레게톤 리듬의 'Tinnitus'에 몸을 맡기고 머릿속 이명에 정신을 놓으려 한다. '0x1=Lovesong', 'LO$ER=LO♡ER', 'Good Boy Gone Bad'로 쌓아 올린 로큰롤 경력을 포기하고, 그냥 돌(Rock)이 되어 구르고 싶다는 포기선언이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한 장면처럼 소년들은 몇 번이나 환상 속으로 점프하며 이성을 놓는다. 잠깐, 이래도 괜찮은 걸까? 소년은 화려한 만화경을 벗고 자신을 잠시 돌아보기로 한다.
큰일이다. 하늘 꼭대기에 지어진 그들의 집에서 소년들은 자꾸만 꿈만 꾸며 잠이 든 자세 그대로 침대 위에서 굳어가고 있다. 설상가상이다. 집은 무너지고 있다. 이대로는 돌멩이가 되고 만다. '너 정말 아름답구나!' 를 마지막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하 하 하' 웃음소리도 건조한 자막으로만 내보내야 하는 돌멩이.
다행히도 악마는 순순히 청춘의 영혼을 빼앗아 갈 수 없다. 씁쓸한 집시 기타 연주로 잊고 있던 성장과 도전의 가치를 일깨우는 '네버랜드를 떠나며'가 나타난 덕이다. 목요일의 아이들은 비로소 그들의 운명을 곱씹어본다. 그리고 쓸쓸히 다짐한다. 이 멋진 비행은 나의 삶이 될 수 없으며, 붕괴 일보 직전의 집에서 뛰어내려 지상으로 추락해 두 발을 딛고서야 한다는 것을. 노래는 모든 유혹을 떨치고 끝내 나아가야 하는, 그렇기에 구원받을 수 있는 소년의 운명을 상징하며 비장하게 앨범의 문을 닫는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새로운 세계에 진입했다. 이곳은 기적과 상상의 세상 '마법의 장'보다 더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동시에 모든 것이 얼어붙었던 '혼돈의 장'보다 더욱 냉정하고 교묘한 장소다. 앨범은 신비의 무릉도원과 위태로운 현재를 유기적으로 엮어내며 유혹과 쾌락에 탐닉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삶을 포기하고 마는 오늘날 청춘의 권태를 바라본다.
탈출의 동기는 어느 곳에나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속 어머니 에블린에게 인정받지 못한 외동딸 조이는 세상을 어두운 망각 속으로 빠트린다. 반대로 ‘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의 주인공 슬레타 머큐리는 어머니 프로스페라의 다정한 세뇌를 거쳐 순수함을 잔혹함과 교환한다. 창작물보다 현실이 더 잔혹하다. 소셜 미디어 이전의 세계를 모르는 Z세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우울한 10대를 보내고 있다. 마약, 자살, 유해 콘텐츠에 노출된 10대들은 너무도 쉽게 삶의 의미를 잃고 눈부신 증오와 절망에 몸을 맡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환상을 만끽하며 방황하는 광경은 아름답고도 위태롭다. 장르 선택부터 노랫말까지 작은 부분에도 의미를 담아 유기적인 음악과 탄탄한 서사를 완성한 작품이다. ‘네버랜드를 떠나며'가 선언하는 운명은 자명하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성장과 모험, 그리고 우리의 앞날은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서, 타인에게 지배되지 않는 단독자로 우뚝 서기 위해서, 묵묵히 걸어 나가야 한다. 악마와 계약한 파우스트 박사는 비록 욕망의 힘을 빌렸으나 열정과 자기실현을 잃지 않았기에 끝내 마지막 순간에 신으로부터 구원받았다.
이렇듯 '이름의 장: TEMPTATION'은 서사가 유독 빛나는 작품이다. 명확한 장점이지만, 앨범의 단점도 서사에 있다. 미니앨범 다섯 곡으로 유혹에 빠진 소년들의 모험과 각성 과정을 모두 설명하려 한 시도가 불완전하게 다가온다. 다음 단계만 바라보기에는 흥미로운 주제를 너무 빠르게 소모해버린 감이 있다. 타이틀곡 ‘Sugar Rush Ride’를 비롯한 수록곡의 싱글 파워가 전작에 비해 강하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혼돈의 장 : FREEZE’ 같은 정규 앨범 편성을 곱씹게 만든다.
다만 멤버 전원이 참여한 ‘Happy Fools’는 성과다. 연준이 탑라인 작곡에 참여하며 창작의 욕심을 숨기지 않았고, 다른 멤버들도 자신의 침체기를 돌아보며 쓴 가사를 더해 방탕한 젊음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좋은 기획을 받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체화하는 모습이 긍정적이다. 특히 진실한 이야기가 요구되는 ‘이름의 장'에서는 꼭 필요한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