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의 히트곡 ①
10년 동안 대중문화의 모든 나쁜 점을 내다본 노래다.
로빈 시크의 'Blurred Lines'라는 노래가 있다. 팝 음악에 큰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팝 음악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프로듀서 퍼렐 윌리엄스가 프로듀싱과 작곡을 맡았고, 인기 래퍼 티아이가 참여했다. 2013년 싱글 공개 후 빌보드 HOT 100 차트 10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당시 지구촌을 정복한 노래였다.
노래 못지않게 뮤직비디오도 유명했다. 여성 뮤직비디오 감독 다이안 마텔(Diane Martel)이 맡은 뮤직비디오는 새하얀 배경 위 여성 모델들과 로빈 시크, 퍼렐 윌리엄스, 티아이가 장난을 치는 장면으로 세계 대중문화 시장에 셀 수 없이 많은 레퍼런스를 제공했다. 2010년대 초 케이팝 시장에 섹시 광풍이 불었을 때를 돌아보면 감이 온다. 이 뮤직비디오는 현재 8.4억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Blurred Lines'는 이후 많은 이야기를 낳았다. 대부분 부정적인 이슈였다. 대중문화 역사상 가장 강렬한 시상식 퍼포먼스로 손꼽히는 마일리 사이러스와 로빈 시크의 협연은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흥겨운 그루브 아래 은밀히 숨겨진 노골적인 여성혐오의 시선과 젠더 권력, '성적 동의(Sexual Consent)'를 왜곡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았다. 마빈 게이의 유족들은 이 노래를 표절 혐의로 고소했다.
미 연예계의 대표 잉꼬부부였던 로빈 시크는 아내 폴라 패튼을 두고 외도하여 이혼당했고 가정 폭력 혐의로 양육권을 잃었다. 2021년에는 뮤직비디오에 참여한 모델이 촬영 현장에서의 성희롱을 고발했다. 로빈 시크가 2021년 NME와의 인터뷰에서 '다시는 이런 뮤직비디오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며 노래는 완전한 흑역사로 남게 됐다.
우리는 2004년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자넷 잭슨의 옷을 벗겨 맨가슴을 드러냈을 때, 우리는 보수적인 시민 단체들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탓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를 지배한 최고의 팝스타는 그렇게 전성기를 강제 종료 당했다. 로빈 시크와 퍼렐 윌리엄스, 티아이도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러나 그들의 해악은 잘못 알려지거나 과소평가되거나 무시되곤 했다.
나 역시 10년 전 이 노래가 히트할 때 리듬에 맞춰 고개를 끄덕거렸던 사람이었다. 이 노래는 엄청난 히트곡이었기에 어디서든 이 리듬과 멜로디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음악 매체에서 이 노래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콘텐츠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금은 몰락한 테리 리처드슨이 슈퍼스타 포토그래퍼로 군림하던 시대였다. 페미니즘적 시선을 갖추지 못한 시대였고 비판적 해석을 생각하는 이가 많지 않았다. 표절 의혹은 오히려 가해자를 양심 있는 창작가로 만들어주었다. 'Blurred Lines'는 '너도 원하잖아 (I Know You Want It)'라는 가사처럼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한 노래였다.
피치포크의 제이슨 그린(Jayson Greene)이 작성한 이 롱폼 아티클은 10년이 지난 지금의 시선으로 'Blurred Lines' 흥행을 돌아본다. 제목은 "파멸의 인도자 'Blurred Lines'(“Blurred Lines,” Harbinger of Doom)"다. '로빈 시크, 퍼렐 윌리엄스, 티아이는 어떻게 지난 10년 동안 대중문화의 모든 나쁜 점을 내다보았나?'라는 부제 아래, 히트곡 하나가 한 시대를 압축해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훌륭한 글이다. 휩쓸리지 않는 외로운 목소리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섬뜩한 경고이기도 하다.
깊게 읽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전문을 번역해 세 편에 나누어 공개하기로 했다.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읽을 수 있다.
'Blurred Lines'는 의미 있는 곡이 아니었다. 이 노래는 의도적으로 사소하게 만들어졌다. 슈퍼스타 모드의 퍼렐 윌리엄스가 섹스광 백인 가수 로빈 시크와 가벼운 장난을 치는 와중 티아이가 적절한 타이밍에 입에 감기는 랩을 뱉으면 그만이었다. 퍼렐이 '난 정말 운이 좋아 / 네가 널 안아주고 싶어 하니까 / '안고 싶어'와 라임을 어떻게 맞추지?'라는 가사를 쓸 때, 이 곡에 참여한 그 누구도 한 시대를 정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Blurred Lines'는 독이 든 타임캡슐이다. 여러모로 안타까운 2010년대 노래다. 지난 10년간 실망스러운 대중문화 트렌드를 아무거나 골라도 'Blurred Lines'에 해당할 것이다. 초인적인 속도로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아래 인간의 논리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공허한 분노의 뉴스 보도도 그렇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약탈적 권력 역학 관계과 미국 사회가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상황도 그렇다. 'Blurred Lines'는 모든 팝송이 안전하게 표절(Xerox)되어 변호사와 음악 유통사들이 법정에서 다툼을 벌이는 오늘날 환경도 예고했다. 한 시대는 10년 단위로 그를 대변하고 정의하는 노래를 얻는 법이다.
'Blurred Lines'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 노래와 현상을 싫어하지 않았다. 사실 로빈 시크는 약자로 간주됐다. 그의 가수 커리어는 시트콤 스타였던 그의 아버지 앨런 시크가 재즈의 전설 알 자로에게 자금을 요청하여 녹음한 데모를 R&B 스타 브라이언 맥나이트에게 전달하면서 시작됐다. 2006년 릴 웨인이 'Oh Shooter'라는 곡을 리메이크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로빈 시크는 이윽고 퍼렐 윌리엄스의 스타트렉 레이블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다섯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각 작품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스타트렉 레코즈에서 발표한 첫 작품 'The Evolution of Robin Thicke'는 플래티넘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런 사람을 위한 성공의 길도 있었다. 로빈 시크는 라디오가 여전히 영형력이 있던 시대에 흑인 라디오 프로그램에 진출할 수 있었던 제2의 저스틴 팀버레이크였다.
2013년 3월 20일 다이안 마텔이 감독한 'Blurred Lines'의 뮤직비디오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보냈다. 스핀(SPIN) 지는 '영원히 과소평가된 신의 또 다른 재미있는 복고풍의 소울 곡'이라 노래를 평가하며 뮤직비디오에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많은 매체들이 마빈 게이의 'Got to Give It Up' 샘플링을 칭찬했다. 'Blurred Lines'에 대한 내러티브는 관련된 모든 이들의 '사랑의 노동'으로 구성되었다. 비록 찰나였지만, 이 노래는 기분 좋은 이야기였다.
'Blurred Lines'에 대한 첫 번째 논쟁은 전적으로 의도된 것이었다. 뮤직비디오 공개 일주일 후, 'Blurred Lines' 팀은 유튜브에 무등급(unrated) 버전 영상을 업로드했다. 원본과 마찬가지로 무등급 영상에는 퍼렐, T.I., 로빈 시크가 하얀 배경에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고, 지나가는 세 명의 슈퍼모델에게 얼굴을 징그리며 장난을 치는 모습이 담겨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 엘 에반스, 제시 음벵게가 상의를 입고 있지 않았다. 이는 명백히 유튜브 커뮤니티 기준을 위반한 행위였다. 'Blurred Lines' 팀은 이 영상이 유튜브에 의해 금지되기를 바랐고, 실제로 그렇게 되며 노래를 더욱 홍보했다.
노래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무등급 영상이 클립으로 인터넷에 돌았다. 바이스(VICE)의 버티 브랜즈(Bertie Brandes)는 이 영상을 '여성혐오자의 개소리(Misogynist Bullshit)'라 주장하며 검은 수트를 입고 수염을 기른 로빈 시크가 누드 여성을 미행하는 포식자처럼 행동하는 영상을 비판했다. 그러나 2013년 6월부터 이 노래가 빌보드 차트에서 선전하며 다른 주류 매체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사라져 버렸다. 벌처(Vulture)는 "처음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로빈 시크에게 축하를 보내며, 올여름 잠재적 히트곡을 고른 미국인들의 뛰어난 취향에 박수를 보낸다"며 나팔을 불었다. "모두 티아이처럼 춤을 추세요!"
어떤 종류의 편재성은 성공이 만들어낸 모든 선의를 부식시키는 저주와도 같다. 만약 몇 주 후 'Blurred Lines'가 다른 '올해의 여름 노래'에 밀려 빌보드 차트에서 내려갔다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레트로 취향을 불러일으키는 노래처럼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평행 우주에서는 마빈 게이에게 소송을 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Blurred Lines'는 지루한 12주 연속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유지했다.
객관적으로 3개월이라는 시간은 팝 차트를 장악하고도 남을 정도로 터무니없이 긴 시간이다. 대중의 상상력을 억누르는 노래는 대부분 환영받지 못한다. 그런데 경쾌하고 통통 튀는 노래에는 특별한 중독성이 있다. 커피를 사러 줄을 서고 있는데 2005년 14주 연속 1위를 차지한 머라이어 캐리의 'We Belong Together'가 흘러나올 때와 플로 라이다의 'Low' (2008년 10주), 블랙 아이드 피스의 'I Gotta Feeling'(2009년 14주)가 들릴 때를 상상해 보자. 오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면 많은 것이 굳어지게 된다.
'Blurred Lines'가 1위를 차지하고 한 달 후, 데일리 비스트(Daily Beast)는 '로빈 시크의 노래는 일종의 강간이다(Robin Thicke's Song of the Summer Is Kind of Rapey)'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글을 쓴 트리샤 로마노는 옷을 완전히 입은 남성 출연자가 말없이 앞에서 행진하는 나체 여성을 훔쳐보는 영상과 더불어 '네가 원한다는 걸 알아(I Know You want It)'라는 노랫말이 성행위에 대한 어두운 동의를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로마노의 취재원 중 한 명인 음악 평론가 마우라 존스턴은 로빈 시크가 배우 폴라 패튼과 수년간 결혼 생활을 이어왔고 대중에게 여성 혐오자로 알려지지 않은 씩씩하고 깨끗한 이미지 덕에 노래의 불미스러운 요소를 일부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간'이라는 단어의 칼날 같은 소리가 담론을 관통했다. 일단 이 단어가 나온 다음에는 'Blurred Lines'를 듣거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이 과거와 같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해 로빈 시크는 위험한 방식으로 여러 매체를 찾아다니며 논란의 불씨를 잡으려 했다. 그는 GQ와의 인터뷰에서 냉소적으로 비꼬듯 말했다. "여성을 비하하게 되어 참 기쁘네요. 저는 살면서 여성을 비하한 적이 없습니다." (로빈 시크는 추후 기자가 자신의 비꼬는 말투를 담았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나중에 로빈 시크는 노래의 뮤직비디오에 대해 '다이안 마텔의 아이디어고, 그는 여성이다. 모델들은 모두 옷을 벗은 대가를 충분히 받았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그는 이제 매력적이지만 멍청하고 무해한 힘보(Himbo)가 아니었다. 술집 구석에서 옷깃이 뜯어진 멍청이였다. 'Blurred Lines'는 결국 좋은 곡이 될 수 없었다.
마일리 사이러스가 로빈 시크의 궤도에 진입하지 않았더라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을 테다. 하지만 'Blurred Lines'의 성공을 본 이 디즈니 채널 팝스타는 자신만의 변신을 꾀하고 있었다.
'파멸의 히트곡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