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역사의 한 챕터를 장식한 제프 벡

위대한 기타리스트 제프 벡이 현지시간 2023년 1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하나의 장르로 정의할 수 없는 광대한 음악 세계를 개척한 세기의 연주자였으며, 최근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후배들에게 귀감이 된 대중음악계의 큰 별이었다. 제프 벡의 음악 세계와 그의 삶을 입문하는 데 있어 뉴욕타임스의 부고 기사만큼 효과적인 글은 없을 것이다. 부고 기사를 번역하여 소개한다. 그의 명복을 빈다.

록 역사의 한 챕터를 장식한 기타리스트 제프 벡, 78세로 세상을 떠나다 (Jeff Beck, Guitarist With a Chapter in Rock History, Dies at 78)

록 역사상 가장 전문적이고 존경받으며 영향력 있는 기타리스트로 손꼽히는 제프 벡이 화요일 영국 남부 시골 사유지 리버홀에 있는 자택 근처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8세. 제프 벡의 홍보 담당자 멜리사 드라기치는 세균성 수막염을 사인으로 밝혔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제프 벡은 모험심 넘치는 연주로 야드버즈 혹은 그의 밴드를 통해 획기적인 결과물을 내놓았다.

1965년 그가 에릭 클랩튼의 후임 기타리스트로 야드버즈에 합류했을 때 이미 밴드는 영국 일렉트릭 블루스 무브먼트의 핵심 밴드로 평가받고 있었지만, 'Shape of things'나 'Over Under Sideways Down'에서 선보인 제프 벡의 통렬한 연주 패턴과 기민한 리드는 야드버즈의 음악에 사이키델릭 록 혁명의 부흥을 예고하는 확장의 면모를 심었다.

3년 후, 제프 벡은 그 당시 무명 가수였던 로드 스튜어트와 론 우드와 함께 제프 벡 그룹을 결성하며 헤비메탈의 초기 형태를 완성했다. 특히 제프 벡 그룹의 데뷔작 'Truth'는 야드버즈의 또 다른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가 몇 달 후 결성하게 되는 밴드 레드 제플린의 청사진을 제공했다.

The Jeff Beck Group in 1967, including, from left, Ron Wood, Mr. Beck, Mickey Waller and Rod Stewart.Credit...Ivan Keeman/Redferns, via Getty Images

1975년 제프 벡이 'Blow By Blow' 앨범을 내놓으며 솔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 그는 재즈, 록, 펑크(Funk)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 균형을 맞추며 당대 퓨전 무브먼트의 공식을 재구성했고 그 결과는 놀랍도록 새롭고 성공적인 사운드였다. 'Blow By Blow'는 빌보드 톱 파이브에 진입했고, 백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올리며 플래티넘 히트를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 제프 벡은 기타 연주의 중요한 기술 면에서 혁신과 개척, 확대를 실현했다. 제프 벡은 일찍이 더 후의 피트 타운센트가 일찍이 탐구한 디스토션과 피드백 이펙트 사용법을 정교하게 설명했고, 벤딩 기술을 강화하였으며 와미 바(트레몰로 암) 같은 기타 부착 장치를 통해 소리 표현의 폭을 넓혔다. 이와 같은 기술을 통해 제프 벡은 자기 기타 현을 스턴 건처럼 퉁기면서도 키스처럼 부드러운 어루만짐의 소리를 만들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음악은 재잘거리는 릭(Lick)과 장난스러운 리드를 통해 유머 감각도 가지고 있었다.

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의 마이크 캠벨은 롤링 스톤 매거진에 제프 벡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5위로 선정하며 다음과 같은 평을 덧붙였다. "야드버즈에서도 그의 기타 연주는 멜로디컬했지만, 직접 그의 연주를 들었을 때의 느낌은 - 해맑고, 급격하고, 또한 엣지했습니다. 그가 기타를 통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봐, 난 제프 벡이야. 나를 잘 봐. 그냥 지나칠 수 없을걸?'"

지미 페이지도 2018년 제프 벡 다큐멘터리 '스틸 온 더 런: 제프 벡 스토리(Still on the Run: Jeff Beck Story'에서 제프 벡에 대해 논했다. "모두가 제프 벡을 존경합니다. 그는 비범한 음악가입니다. 그는 기타 연주로 당신에게 대화를 건네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찬사에도 제프 벡은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그리고 그가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 지미 헨드릭스를 포함하여 그의 동료 기타리스트들만큼의 판매고와 인기를 얻지 못했다. 제프 벡이 발표한 앨범 중 플래티넘 판매고를 기록한 작품은 'Blow By Blow'와 이듬해 발표된 'Wired'를 포함해 두 장밖에 되지 않는다.

제프 벡은 엘스웨어(Elsewhere)와의 2009년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밝혔다. "제가 유명하지 않았던 이유는 주류 팝, 록, 헤비메탈 또는 그와 유사한 장르에 접근하려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길을 걷지 않는다는 건 대중에 침투할 공간이 제한된다는 뜻이기도 하죠."

활달한 활동을 펼친 제프 벡이 메인 보컬 없이 활동하고, 그가 몸담았던 그룹이 오래 지속되지 못했던 것도 제프 벡의 상업적 부진 원인이었다. 로드 스튜어트, 론 우드와 함께한 제프 벡 그룹은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 무대에 초청받으며 스타덤의 정점에 섰지만, 제프 벡은 그 제안을 거절하고 얼마 가지 않아 그룹을 해산했다.

그가 이끌었던 또 다른 밴드 벡, 보거트 & 어피스(Beck, Bogert & Appice)는 1973년 발표한 동명의 앨범으로 골드 판매고를 기록했지만 그 그룹도 2년 만에 해체됐다. 제프 벡은 그가 음악 '산업'에 몸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2018년 제프 벡이 롤링 스톤과 가진 인터뷰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저는 대성공하지 못했죠. 다행히도요. 주위를 둘러봤을 때 누군가 거대한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장소라면, 그곳은 분명 썩어있을 겁니다."

Mr. Beck performing in London in 1976, where he was opening for Alvin Lee. “I’ve never made the big time, mercifully,” he told a reporter.Credit...Watal Asanuma/Shinko Music, via Getty Images

그래미와 골드

그런데도 제프 벡은 60년 이상의 시간 동안 8장의 골드 판매고 앨범을 내놓았다. 또한 제프 벡은 7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중 6개는 최고의 록 인스트루멘틀 퍼 퍼포먼스에서, 나머지 하나는 베스트 팝 보컬 콜라보레이션 부문에서 수상했다. 그뿐만 아니라 제프 벡은 1992년에는 야드버즈로, 2009년에는 솔로 뮤지션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두 번 헌액되었다.

"제프 벡은 언제나 다른 행성에 있었습니다." 로드 스튜어트의 추모사다. "제프는 1960년대 후반 저와 로니 우드를 미국에 데려갔죠. 그리고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어요. 제프 벡은 저의 노래에 즉각 반응하여 연주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기타리스트였습니다. 제프, 당신은 최고였어요."

제프리 아놀드 벡은 1944년 6월 24일 런던 남부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사탕 제조업자였고, 아버지는 회계사였다. 제프 벡은 1968년 기타 플레이어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소년 시절 그의 어머니가 하루에 두 시간씩 피아노를 치도록 강제했다고 말했습니다. "좋았어요. 제가 음악에 재능이 있다고 깨닫게 되었거든요. 다른 음악 훈련도 많이 했는데, 그중 하나는 담배 캔에 고무줄을 걸어놓고 끔찍한 기타 연주를 하는 거였죠."

제프 벡은 레스 폴의 음악을 듣고 일렉트릭 기타에 매료되었다. 이후 진 빈센트 밴드의 리드 기타리스트 클리프 갤럽과 미국 출신 연주자 로니 맥의 작품에 푹 빠졌다. 제프는 기타의 소리뿐 아니라 그 기계의 특징에도 관심이 많았다. 2016년 자서전 'Beck01: Hot Rods and Rock & Roll'에서 제프 벡은 "13살 때 기타를 한두 개 정도 만들어보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냥 그 기타를 들고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거든요.".

이후 윔블던 예술 대학에 합격했지만 제프 벡은 밴드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다 중퇴를 선택했다. 학교를 떠난 후 스튜디오에서 일을 하던 그는 1965년 십대 시절부터 친구였던 지미 페이지의 추천을 받아 야드버즈에 합류하게 된다.

비록 제프 벡은 야드버즈에서 단 20개월만 활동했지만, 그는 빌보드 톱 텐 히트곡이자 영국 싱글 차트 2위까지 오른 'Heart Full of Soul'을 시작으로 야드버즈의 성공적인 노래 대부분을 연주했다. 'Heart Full of Soul'은 인도 음악의 영향을 받은 제프 벡의 강렬한 기타 리프로 각인된다. 1966년 빌보드 싱글 차트 11위 (영국에서는 3위)에 오른 야드버즈의 싱글 'Shape of Things'에서 제프 벡은 야드버즈의 커리어에서 하이라이트로 손꼽히는 광기의 더블 타임 솔로를 선보였다.

Mr. Beck at a rehearsal in 2010. He released a new album that year, “Emotion & Commotion,” which won a Grammy.Credit...Andrew Testa for The New York Times

매니저의 제안으로 제프 벡은 1966년 5월 'Beck's Bolero'라는 제목의 연주곡을 녹음했는데 이는 그의 향후 솔로 활동을 암시하는 작품이었다. 리듬 기타에 지미 페이지, 드럼에 더 후의 키스 문, 훗날 레드 제플린의 베이스를 맡게 되는 존 폴 존스와 세션 피아니스트 니키 홉킨스가 참여했다. 복잡한 전개 가운데 모습을 드러내는 구조의 이 노래는 당시 발매되지 않았고, 제프 벡은 이 라인업으로 밴드를 운영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졌다. 대신 제프 벡은 계속 야드버즈와 함께했고 1966년에 지미 페이지를 밴드에 끌어들인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영화 '욕망'에 잠시 등장한 이때의 야드버즈 라인업은 불멸의 기록으로 남았고, 밴드는 1965년 작 'Train Kept A-Rollin'을 재녹음한 노래 'Stroll On'을 영화에 제공했다.

미국 투어 동안 심각하게 야드버즈 멤버들과 갈등을 빚던 제프 벡은 결국 밴드를 떠났다. 제프 벡은 훗날 그 시기를 자기 경력 중 침체기로 회상했다. "갑자기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 거예요. 지미 페이지가 있으니 밴드는 계속될 수 있었죠. 완전히 정리된 기분이었어요.".

절망감에도 불구하고 1967년 제프 벡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Hi-Ho Silver Lining'이라는 솔로곡을 발표했는데, 제프 벡 스스로가 그토록 혐오하는 자신의 보컬이 들어간 노래다. 2021년 인터뷰에서 제프 벡은 "내 목소리는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다"고 말했지만, 이 노래는 당시 영국 차트 15위까지 올랐고 그 싱글 B면에는 'Beck's Bolero'가 수록되어 있었다.

제프 벡은 드러머 미키 월러, 로드 스튜어트, 론 우드와 함께 제프 벡 그룹을 결성하여 1968년 컬럼비아 레코드를 통해 데뷔작 'Truth'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야드버즈의 'Shapes of Things'를 새롭고 헤비하게 다듬어 낸 작품이었다. 'Truth'는 빌보드 앨범 차트 15위까지 올랐고, 록 음악과 감정적인 소울 음악의 신선한 혼합을 선보였다. 미키 월러 대신 토니 뉴먼을 새 드러머로 맞이하여 발표한 차기작 'Beck-Ola' 역시 데뷔작의 성공을 이어갔다. 하지만 밴드는 얼마 가지 않아 폭파됐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요. 소재도 부족했고요. 로드 스튜어트가 제 이름 대신 자신의 이름을 밴드에 내걸고 싶기도 했어요.".

Mr. Beck performing at Madison Square Garden in 2010 on a tour with Eric Clapton, the guitarist he had replaced in the Yardbirds.Credit...Chad Batka for The New York Times

원 밴드, 그다음 어나더(One Band, Then Another)

1969년 가을, 제프 벡은 바닐라 퍼지(Vanilla Fudge)의 베이시스트 팀 보거트와 드러머 카마인 어피스를 모아 새 그룹 활동을 계획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도 제프 벡이 교통사고로 두개골이 골절되는 바람에 오래가지 못했다. 보거트와 어피스는 캑터스(Cactus)라는 블루스 밴드를 결성해 활동을 시작한다.

오랜 회복기를 거쳐 1971년 소울 가수 바비 텐치(Bobby Tench), 드러머 코지 파웰(Cozy Powell), 키보디스트 맥스 미들턴(Max Middleton)과 함께 제프 벡은 새로운 제프 벡 그룹의 출현을 알리며 재즈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 그들의 데뷔작 'Rough and Ready'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제프 벡의 자작곡을 수록하고 있었지만, 상업적으로는 빌보드 앨범 차트 50위에 간신히 턱걸이하며 만족스럽지 못한 성과를 거뒀다. 그래도 소울풀한 면모를 강조한 후속작 'Jeff Beck Group'이 톱 20위에 들며 골드 판매고를 기록하긴 했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제프 벡은 새로운 음악을 갈망했다. 캑터스의 해체 소식을 들은 그는 보거트와 어피스를 모아 벡, 보거트 & 어피스 트리오를 결성하고 1973년 동명의 정규 앨범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는 원래 제프 벡의 노래로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스티비 원더에게 돌아가 불멸의 명곡으로 남은 'Superstition'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제프 벡은 이 노래뿐 아니라 밴드 자체에 불만을 품고 있었고, 지미 밀러(Jimmy Miller)가 프로듀싱하던 두 번째 정규작을 엎은 후 트리오를 해체했다. 이후 제프 벡은 1975년 라이브 앨범 'Beck, Bogert & Appice Live in Japan'를 발표했는데, 흥미롭게도 이 1975년이 제프 벡에게 결정적인 한 해가 된다.

대담하게도 제프 벡은 1974년부터 준비한 'Blow By Blow' 앨범을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Mahavishnu Orchestra)의 창의적인 음악을 담당하는 기타리스트 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으로부터 받은 영감으로 꽉 채웠다. 존 맥러플린의 스타일을 포착하기 위해 제프 벡은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의 앨범 'Apocalypse'를 프로듀싱한 조지 마틴(George Martin)을 고용했다. 제프 벡의 2016년 인터뷰처럼 그 결정은 '거대한 날개 한 쌍'을 달아주었다.

"(조지 마틴처럼) 예민한 귀를 가진 누군가가 작업에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제프 벡의 차기작 'Wired'는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에 몸담고 있던 두 명의 아티스트가 합류하며 퓨전의 요소를 더욱 강화한 작품이다. 그들은 드러머 나라다 마이클 월든(Narada Michael Walden)과 키보디스트 얀 해머(Jan Hammer)였다. 제프 벡은 얀 해머의 밴드와 함께 투어를 진행하고 그 실황을 1977년 'Jeff Beck with the Jan Hammer Group Live' 앨범으로 발표했는데, 이 앨범도 골드 판매량을 기록하며 성공을 거뒀다.

얀 해머는 또한 1980년 제프 벡의 앨범 'There & Back'에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이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21위까지 올랐다. 1985년 제프 벡은 'Flash' 작업을 위해 다양한 보컬리스트들을 불렀는데, 그중에는 그의 오래된 동료 로드 스튜어트도 있었다. 로드 스튜어트는 커티스 메이필드의 'People Get Ready'를 불러 MTV를 장악했다. 1989년 발표한 인스트루멘틀 앨범 'Jeff Beck's Guitar Shop'이 그의 마지막 골드 판매고 앨범이다.

1990년대부터 제프 벡은 존 본 조비, 로저 워터스, 케이트 부시, 티나 터너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앨범에 참여하며 세션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스타일을 확장했는데, 2010년 'Emotion & Commotion' 앨범에서는 'Over The Rainbow'와 'Nessun Dorma' 등 클래식을 독특한 방향으로 재해석하며 그래미 어워드와 빌보드 차트에서의 성과를 동시에 획득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온 제프 벡은 지난해 배우 조니 뎁과 함께 '18'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제프 벡 그 자신과 오랜 팬들은 그의 기타, 특히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와 제프 벡이 너무도 깊이 연관되어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제 스트랫은 또 다른 팔입니다. 아마 스트랫을 팔에 용접했는지도 모릅니다. 기타는 거대한 영감과 끔찍한 고문을 동시에 제공하는 도구입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당신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를 독려합니다. 언제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진실히 탐구할 때만 답을 들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