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발광 인터뷰
소음발광이 돌아왔다. 한국에서 이 시대 가장 시끄러운 앨범 '불과 빛'과 함께 돌아왔다. 숱한 해산과 결집을 겪은 팀의 리더 강동수를 중심으로 새롭게 뭉친 네명의 부산 남자들은 가슴 속 응어리를 모조리 토해 불살라버리겠다는 듯 처절하고 굶주린 작품을 가져왔다. 자아의 추락, 거짓으로 이루어진 세상, 다 박살내야 하는 위선, 희망을 잃어버린 체념, 죽어가는 친구들, 그럼에도 아침의 빛을 간절히 바라는 자조 섞인 희망. 포스트 펑크 밴드 소음발광을 부산 민락역에 위치한 인디 음악의 발전소 민락 인디 트레이닝 센터에서 만났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성빈) 밴드 소음발광에서 베이스 치고 있는 김성빈이다.
(동수) 소음발광에서 노래하고 기타 치는 강동수다.
(성규) 소음발광에서 기타 치고 있는 박성규다.
(재현) 소음발광에서 드럼 치고 있는 마재현이다.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곳이 범상치 않다. 부산 지하철 2호선 민락역 내에 위치한 공간이다.
(동수) 부산시에서 지원하는 민락 인디트레이닝 센터다. 1년에 한 번씩 입주단체를 모집하여 다양한 문화 단체를 지원한다. 현재 부산에서 활동하는 절반 이상의 밴드가 이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민락 인디 트레이닝 센터에 입주한 밴드는 소음발광을 포함하여 칩앤스위트, 검은잎들, 밴드기린, 야자수, ddbb 등이 있다.
동수를 제외하고 소음발광은 멤버 교체가 잦았고, 2집 ‘기쁨, 꽃'의 멤버들은 모두 밴드에 남아있지 않다. 현재 3집을 만든 밴드 멤버들에 대해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소음발광에 합류하게 된 계기와 평소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해달라.
(성빈) 대학생 때 네이버 온스테이지 등 매체를 통해 부산 인디 신의 존재를 알았다. 이후 클럽 오방가르드에서 여러 밴드 공연을 관람했다. 소음발광의 ‘기쁨, 꽃'은 당시 들었던 앨범 중 크게 감격했던 작품이다. 당시 공연을 자주 다니던 시절 동수 형을 자주 마주쳤는데, 그때 내가 귀에 대고 ‘기쁨'이라는 노래의 마지막 가사를 읊었던 적이 있다. 그 인연으로 조금씩 친해졌는데, 밴드 베이스 모집을 하고 있었다. 6개월 동안 베이스를 쳤다고 거짓말하고 합류했다. 베이스 못 치는 걸 들키고 검은잎들의 기타리스트 김성민에게 레슨을 받아 녹음할 때까지 정말 열심히 연습해서 밴드의 일원이 되었다.
(동수) 베이스 실력은 많이 늘었다. 허세가 좀 생겨서… 빼야 할 것 같다 (웃음)
(성규) 오류라는 이름으로 싱어송라이터 활동을 했다.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리거나 다른 친구들에게 곡을 줬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음악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고 기타 한 대 빼고 모든 장비를 팔아버렸는데 나도 모르게 음악을 다시 하고 있더라. 혼자 끄적끄적하다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스트록스나 1975 같은 밴드를 좋아하고, 부산에서 음악 하는 친구나 밴드를 모집한다'는 글을 썼는데 연락이 하나도 없더라. 그래서 1년 동안 외국에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왔다. 귀국하고 1년이 더 지났는데, 얼마 안 돼서 동수형이 소음발광 멤버를 구한다는 연락을 해왔다.
(동수) 오류라는 이름으로 곽태풍의 정규 앨범 1번 곡을 장식한 ‘나쁜 말’이라는 곡을 줬더라. 그 노래를 들어보니 이 정도 음악 센스가 있으면 뭐든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성규) 소음발광이라는 밴드는 존재만 알고 음악은 잘 몰랐는데, 이야기하고 나니 분위기도 다르고 장르도 많이 달라서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도전적인 마음이 있었다. 이제는 같이 잘하고 있어서 이 밴드이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재현) 사실 3집 작업은 작곡과 레코딩까지 전 드러머였던 최아연이 모두 담당했다. 식스아이즈(6eyes) 내한 공연 때 소음발광 공연을 처음 봤는데 너무 멋졌다. 이후 동아리 선배에게 소음발광 드러머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지원하기가 어려웠다. 다음날 동아리 선배가 격려해 주어 지원하게 되었다. 동수 형도 첫 프로 밴드로 활동하는 데 부담을 덜어주었다. ‘음악은 손가락 5순위 안에만 들면 된다. 내 정신 건강, 몸 건강,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 생계가 음악보다 위 순위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 부담을 덜어주었다. 소음발광 2집에 있는 ‘낙하' 한 번 맞춰보고 동수 형의 말대로 다시 한번 합주했는데, 8마디 치더니 그만하라고 하더라. ‘아, 이거는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대답이었다.
소음발광 멤버들을 모으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동수) 부산이 정말 좁고,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됐다. 직접 발로 뛰지 않으면 찾을 수 없었다. 즐거워지려면 결국 내가 뛸 수밖에 없구나 싶었다.
‘불과 빛’ 발매 전 사전 믹스를 먼저 들었다. 믹스를 들어봤는데, ‘기쁨, 꽃'과 비교하여 많은 면에서 달라졌다는 인상이다.
(동수) 3집에는 전 멤버들과 함께 작업한 곡 3곡이 수록되어 있다. 자연히 지난 멤버 교체 과정이 떠올랐다. 계속 혼자 남겨지는 순간이 힘들었다. 지금은 좋은 동료들이지만, 밴드가 뿔뿔이 흩어질 땐 정말 화가 났다. 그들은 왜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걸까, 나는 왜 이런 걸까. 그런 감정을 풀어내고 싶었다. 내 마음속 우울감 말이다. ‘나 이렇게 화났어, 너희들 다 죽어야 해'가 아니라, 이 우울감을 다 씻어내고 싶었다. 사실 작업할 때는 확신이 없었다. 노래곳간이 다 떨어졌다는 생각도 들었고… 주위 사람들이 많이 격려해 줬다. 단편선님은 데모를 받고 ‘다 좋아서 뭘 타이틀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 ‘쇠망치'의 마지막 노랫말이 ‘빛, 바라보지 못할, 망치로 깨부숴버릴 거짓'이다. 음습하고 뒤틀리고 시끄러운 노래들을 통해서 부정적인 감정, 그리고 거짓말 같다고 생각했던 이 세상과 모든 부조리를 부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불과 빛’이라는 이름이 그래서 적절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린 끝에 남는 어떤 일정한 순간. 거칠고 분풀이를 하는 듯한 소리임에도 희망적인 결론이 났다.
(성규) 소음발광식 희망이 결론지어진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재현) ‘기쁨, 꽃'의 소리와 3집의 소리가 꽤 이질감이 있었다. 내가 아는 소음발광의 느낌이 아니었다. 3집의 곡들은 처음 들었을 때 컬트적인 느낌이 있었다. 2집은 다 같이 뛰어놀 수 있는 분위기의 곡이 많았다면, ‘불과 빛'은 무대에서 밴드가 내는 소리에 취해서 우울하게, 축축 처지는 느낌을 들려준다. 3집 곡을 들으며 밴드를 안 보고 천장이나 땅바닥을 응시했던 것을 기억한다.
1집 ‘도화선’은 굉장히 날카로운 펑크 앨범이었고, 2집 ‘기쁨, 꽃'은 그 모든 것이 하나로 다 뒤섞여 팝의 문법도 접목된 작품이었다. ‘불과 빛'의 경우 처음 믹스를 들었을 땐 슬럿지 메탈, 그런지 시대에도 너바나, 앨리스 인 체인스, 사운드가든과 같은 사운드를 떠올렸다. 소음발광의 ‘불과 빛'을 구성하는 분노와 어두운 기운은 어떤 것인가.
(성빈) 사회의 냉소나 위선을 많이 느낀다. 소음발광 이전에는 거기서 헤어 나올 수 없는 무기력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3집 작업을 하고 나서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공연장에서 ‘속이 시원하다.', ‘마음이 차분해졌다'는 이야기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 아까 성규형이 이야기했듯 장기적 우울 상태에 빠져있는 2, 30대들이 동수형의 개인적 분노에 공명하며 분노하겠지만, 소음발광의 음악은 그 분노의 과정에서 미처 찾지 못한 삶에 대한 의지와 서정을 꼭 담고 있다는 점이 정말 아름답다. 삶의 의지를 표현하는, 멋진 음악이다.
(재현) 나는 지금이 재미있고 행복하다. 소음발광 들어오면서 이런 음악을 하더라도 나는 언제나 건강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소음발광의 음악은 우울과 분노를 담고 있지만, 그 음악처럼 되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더 빠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 곡을 연주하는 내가 밝아야 그 에너지를 제대로 전달하고, 응어리진 감정을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규) 20대 내내 들었던 감정은 무력감에 대한 절규였다. ‘기쁨'을 연주하다 보면 마지막 부분에 있는 ‘이렇다 뭘 해본 적도 없고, 살아보려 애쓴 적도 없어요'에 맞춰 다 같이 슬램을 하고 춤을 추는 관객들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비명을 지르는 이들이 어느 순간 화를 내는 것이다.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우리에게 힘이 없는 건가. 그런 분노와 의지를 3집에 힘 있게 잘 실어 놓았다.
앨범의 중요한 변화는 동수의 보컬이 중심이 되는 프로듀싱이다. 제작자 단편선도 언급한 부분이었고, 쾅프로그램의 프로듀서 최태현 역시 동수의 목소리를 강조하고자 했다는 후기를 들려줬다.
(동수) 지금까지는 내 목소리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어 보컬을 묻어왔다. 나의 목소리가 일반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고, 일반적이지 않은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최태현 님이 영화 ‘노후대책 없다'에서 나온 대사를 이야기해 주셨다. “시끄러워도 더 시끄러워야 하고, 빨라도 더 빨라야 하고…’ 그러면서 펑크 록의 중심은 항상 목소리라고 강조하셨다. 그러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 펑크가 펑크일 수 있는 건 메시지, 장르가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음악, 나의 태도가 펑크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펑크는 결국 저항이다. 장르에 대한 저항, 사상에 대한 저항. 나는 기존에 펑크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해 저항하고자 한다. 그래서 목소리를 더욱 내세워보고 싶었다. 보컬 녹음은 최태현의 집에서 같이 진행했고, 뉘앙스 하나하나 섬세하게 작업하며 음악으로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라 감정에 치중하는, 날카롭고 뒤틀린 소리를 내보고자 했다.
(재현) 확실히 1집, 2집에 비해서는 동수형 목소리가 많이 부각되어있다. 특히’ 망치’ 같은 경우는 마지막에 그냥 아예 음악 없이 소리를 지르면서 끝난다.
실제로 소음발광의 보컬을 듣다 보면 포스트 펑크 밴드들의 보컬에서 얼핏 느껴지는 교조적인 느낌 대신 감정에 충실한, 후련한 외침이 가장 와닿는다. 특히 ‘불과 빛'에서 그 강점이 두드러진다. 너바나의 ‘In Utero’를 스티브 알비니가 벼려냈듯, ‘불과 빛'을 피워낸 쾅프로그램 최태현의 공을 보다 자세히 소개해달라.
(동수) 소음발광 공연을 처음 본 태현 씨의 감상이 기억난다. ‘소음발광, 음원으로 들었을 땐 잘 몰랐는데, 라이브를 보니까 ‘쿵치빡치'가 되게 매력적이네요.’. 그리고 술자리를 가졌는데, 조금 취한 태현 씨가 “동수 씨, 디어헌터 좋아하시죠? 페레 우부터좋아하시죠" 하며 좋아하는 밴드가 다 드러난다고, 소음발광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나는 소음발광의 3집을 최대한 이 시대에 나온 앨범 중 가장 시끄러운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화가 났으니까. 최태현 씨와 함께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음반을 영화적으로 만들자는 연출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평소 꽉 채워 넣던 데모도 비워놓고 기승전결을 확실하게 가져가고자 노력했다.
(성규) 쾅프로그램의 음악을 들으며 우리가 이렇게 멋진 노이즈를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대가 컸다. 노이즈의 개념은 결국 방해 아닌가. 사회에서 우리가 느끼는 분노와 같은 감정은 방해를 받았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감정이다. 태현 씨와 소음발광이 잘 만났다고 생각한다.
(성빈) 태현 씨가 ‘영화처럼 해보자'는 말을 처음에는 잘 몰랐다. 나중에 마스터를 듣고 나니 크게 체감이 되었다. 특히 앨범 중간 비디오와 비디오 사이 대기 화면처럼 느껴지는 5번 곡 ‘쉼과 숨', 크레딧처럼 느껴지는 ‘새벽', 그 자체로 너무도 극적인 ‘검은물'과 ‘방' 등 모두 감탄했다.
‘불과 빛'은 A사이드, B사이드를 나눈 듯 다섯 곡이 정확하게 상하로 배치되어 있다. 두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장편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하다. 앨범의 시놉시스를 간략하게 요약해 본다면.
(동수) ‘한낮'에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광장에 서 있는 청년이 노랗게 질린 채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이 세상은 거짓으로 이루어졌다. ‘쇠망치'로 모든 걸 깨부숴버리고 싶지만, 세상이 어떻고 간에 내가 지금 죽을 맛이다. ‘쉼과 숨'에서 나를 구원할 누군가를 간절히 찾다가, ‘발소리'에서 깨끗한 척하는 이 세상이 다시금 더럽게 느껴지고 파괴의 욕구가 끓어오른다. 그렇게 분노하다 결국 지쳐 희망을 잃어버린 광경이 ‘눈동자'에 담겨있다. 이제 방에서 죽어가는 나의 친구들, 그리고 그들을 따라갈 수 없는 내가 무력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내일 다가오는 아침의 빛이 비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지막 ‘새벽'에서 내 비록 이 오물 덩어리들을 손에 가득 쥐고 있는 처지지만, 나는 ‘오늘을 향한 기도와 내일을 향한 질주'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불과 빛'의 이야기다.
강한 앨범에 맞게 밴드 프로필도 느와르 영화를 방불케 하는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동수) 소음발광 공연을 보면 ‘찐따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펑크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음악을 할 때 찐따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불과 빛’ 은 결국 멤버들의 진솔한 감정을 담고 있는 작품인 만큼,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멤버들이 즐겨 듣는 록 음악에 대한 헌사와 표현도 많이 발견할 수 있는 앨범이다. ‘불과 빛'과 함께 들어볼 음악을 추천해 준다면.
(동수) 일본의 닉 핏(Nic Fit)이라는 포스트 펑크 노이즈 밴드가 멋지다. 소닉 유스의 동명의 곡에서 밴드 이름을 지었다. 기타 한 대 베이스 하나, 드럼 하나, 보컬 하나로 굉장히 단순하면서도 멋진 리프를 쓴다. 한국 밴드 플러그드 클래식의 너바나스러운 지글거리는 그런지 음악도 인상 깊었다. 쾅프로그램의 정규 1집 ‘나 아니면 너’에서 나오는 포스트 펑크, 노이즈, 그리고 실험도 가져오고 싶었다.
멤버들이 꼽는 ‘불과 빛'의 최고 노래는.
(성빈) ‘새벽'이다. ‘바라는’에서 사실상 앨범은 끝났고, 진짜 앨범의 크레딧을 올리는 노래다. ‘오늘을 위한 기도와 내일을 향한 질주'가 마음에 들어왔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성규) ‘바라는’이 가장 마음에 든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우울하고 분노에 휩싸여 있었던 과거가 있었다. 많은 이들이 또 그렇게 휘청거리고 있을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감정의 근원에는 다 잘 살아가고 싶은 희망이 있지 않겠나. ‘바라는'이 나오는 지점에서 뭉클한 감정이 많이 느껴진다. 이후 곡의 진행과 더불어 노이즈가 쌓이고, 현실적인 ‘새벽'이라는 곡이 나오는 구성까지 정말 좋다. 아이러니한 상황과 우리의 바람이 교차하는 지점이 ‘바라는'이다. 3집의 전반적인 분위기와는 가장 대척점에 있는 곡이라 생각한다.
(재현) 요즘은 ‘한낮’이 제일 좋다. 곡 전반에 자잘하게 쫙 깔린 노이즈를 좋아하고, 그 소리를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다. 노이즈 위 드럼 라이드 벨로 시작하는 무드가 공연장에서도, 앨범에서도 사람들을 끓게 만든다.
그렇다면 연주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웠던 곡은 무엇인가.
(재현) 소음발광의 곡은 ‘강약조절'이 아니라 ‘강과 초강의 조절'이다. 모든 곡이 어렵다. 그러나 가장 신경 쓰는 곡은 ‘검은물'이다. 연주 난도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곡의 축축 처지는 분위기를 뒤에서 드럼으로 최대한 살리려 노력해야 한다. 전임 드러머 아연의 라이너 노트를 살펴보니 바다와 파도치는 형태에서 영감을 받아 드럼 라인을 짜셨더라. 일렁이는 물결처럼 ‘검은물'은 내가 조금만 어중간하게 속도를 높여버리면 처절한 느낌이 죽어버린다.
(성규) 나도 ‘검은물’이다. 소음발광의 다른 곡들하고 템포가 다른 곡이라 가장 앞에서 들릴 수밖에 없는 기타의 완급 조절이 상당히 중요하다. 하나 더 꼽자면 ‘새벽녘’이다. 내가 가진 재규어 기타의 제일 마지막 프렛 제일 밑의 줄, 그러니까 칠 수 있는 가장 높은 음을 연주해야 한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지금은 기똥차게 잘 치고 있다.
(동수) ‘쇠망치'. 마지막에 모든 걸 내려놓고 보컬만 지르는 부분에서 숨이 찬다. 아주 힘들다.
(성빈) ‘방’에서 많이 꼬인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어떤 연극의 클라이맥스에 깔리는 음악처럼 느껴진다. 터치를 하나하나 신경 쓰게 된다. ‘검은물'도 섬세한 연주를 요구한다. 기술적으로는 ‘발소리'가 어렵다. 특유의 그루브가 까다롭다.
끝으로 소음발광이 생각하는 ‘불과 빛'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동수) ‘폐암'이다. 이 앨범은 그냥 다 불태우고 싶은… 그런 앨범이다. 담배도 결국 타들어 가지 않나. 담배를 피우다 보면 ‘그래, 다 불태우고 나면 썩겠구나' 싶다. 안 좋은 것들을 다 썩게 하고 새로 시작하자는 마음이다..(성빈) 계속 앨범 얘기를 하면서 태운다, 오물을 태워 없앤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불로 태우면 재만 남는 게 아니다. 불의 부산물은 빛이다. 무언가를 태웠을 때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는 에너지는 열과 빛이다. 정말 더러운 것들을 태워버리고 싶다는 강한 마음으로 만든 앨범이지만, 그 끝에는 따사로운 아침햇살이 있다. ‘빛'이다.
(성규) ‘바라는'이다. ‘불과 빛’은 우리들의 태움에 대한 작업물이고, ‘바라는'이라는 재가 남은 것이다..(재현) ‘한 줄기 빛'이다. 분노와 우울감에 차 있지만, 마지막 한 줄기 빛과 희망은 분명히 앨범에 있다. 또한 나에게도, 멤버들에게도, 밴드 전체에게도 이번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이 한 줄기 빛을 따라가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동수) 담뱃갑을 계속 쳐다봤는데… ‘폐암’이자 ‘담배’이지 않을까. 요즘 세상에 앨범을 통으로 듣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분명히 몇 곡 듣고 ‘우울하네?’ 생각할 거다. 이 우울함에 빠지면 더 우울해진다. 너무 자주 듣지 마시고, 담배처럼 너무 많이 피지 마시길 바란다. 적당하게 필요할 때 섭취하면 ‘삐가리'가 탁, 오면서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