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2023년 2월 #1
2023년 2월 1일부터 2월 15일까지 파란노을, 오션프롬더블루, 매미, 에픽하이, 부석순, 언오피셜보이+에디, 림킴, 수비, 정우, 박재범의 음악을 다뤘다.
파란노을, 'After The Magic'
오션프롬더블루, Oceanfromtheblue
오션프롬더블루는 1월 30일 앨범 발표 전 음악 감상회에서 '요즘 유행하는 리듬과 코드 진행, 10대 20대 사이 유행하는 소비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듣고 좋아했던 과거의 음악은 화려한 코드 진행, 서정적이고 문학적인 가사 표현이 담겨 있었다'는 내용으로 그의 첫 정규 앨범을 소개했다. 팬데믹 시기에 열 명의 프로듀서를 송캠프 형태로 초청해 제작된 앨범은 다채로운 장르 팔레트를 바탕으로 유연하고 유기적인 흐름을 들려준다. 각 노래의 분위기와 가사에 맞춰 가창을 섬세하게 조절하는 오션프롬더블루의 능력은 특히 강점으로, 'Close to You'의 두근거리는 고음역과 차분하게 가라앉은 '향'의 짙은 저음역대가 확실한 대비를 이룬다. 모든 곡에서 사운드 뒤에 보컬이 한 발짝 물러나있는 듯한 인상을 남기는 조절을 거쳤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청취가 가능하나 개별 싱글 단위 흡인력을 상실한 점이 흠으로 남는다. 1993년생 아티스트가 보고 듣고 느꼈던 현실의 고민이 섬세한 언어를 통해 차분하게 전개되며, 사랑의 다양한 면모를 묘사하는 전반부와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토로한 후반부가 이질 감 없이 섞여 들어 아티스트의 세계를 소개하는 청사진 기능을 십분 수행한다.
매미, Guitar Pick
24아워즈와 서울문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던 매미는 틱톡, 인스타그램 숏폼 콘텐츠를 통해 커리어의 새로운 전기를 확보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커버 영상과 트렌드를 빠르게 흡수하는 능력으로 Z세대 소셜 미디어 로커들의 우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그는 솔로 싱글 발표를 통해 단독 뮤지션으로의 커리어를 개척하고자 한다. 전작 'I don't give a'처럼 선 굵은 기타 리프 위 랩과 챈트를 얹는 그의 송라이팅은 최근 모네스킨을 위시한 신진 록스타의 문법을 따른다. 기타 플레이어의 면모는 부각되지만 싱어송라이터로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솔로 뮤지션으로의 커리어 하이라이트를 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에픽하이, Strawberry
월드투어 'ALL TIME HIGH TOUR' 발표와 함께 공개한 에픽하이의 첫 글로벌 앨범이다. 어두운 무드의 'EPIK HIGH IS HERE' 갈무리를 지나 산뜻한 연주곡 'Strawberry'로 분위기를 전환하는 작품은 까칠하고 연약하지만 대중성만큼은 확실히 담보하는 에픽하이의 정수에 최신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에 어울리는 현대적 프로듀싱을 더했다. 88라이징의 핵심 스타 잭슨과 함께 처연한 목소리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감성을 노래하는 로파이 기타 리프의 'On My Way', 부드러운 비트 위 '한때 날 지지했대 그래, thank u very much and fuck you'라는 날 선 감성과 자신감을 숨기지 않는 'Catch'에서 이질감은 전혀 없다. 톤다운된 'Born Hater'의 맛보기 'Down Bad Freestyle'과 차분한 마무리 소품 'God's Latte'까지 유기적인 흐름으로 마무리되는 작품은 완연하게 에픽하이의 오늘날을 요약한다. 한결같음이 미덕인 팀이다.
부석순, SECOND WIND
'아주 NICE'에서 첫 데이트에 두근거려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던 소년들은 주식 그래프에 일희일비하며 야근에 시달리는 사회 초년생이 되었다. 뮤지컬을 방불케 하는 스토리라인 위 꽉꽉 활기찬 퍼포먼스를 채워 넣은 '파이팅 해야지'는 깊이 설명할 필요 없는 치어리딩 송이다. 투박하고 노골적인 메시지가 이들을 숱한 케이팝 그룹의 개그 콘셉트 유닛으로 오해하게 만들 위험이 있는데, 전설 속 유닛 부석순의 무모할 정도로 호탕한 활력은 멤버들이 걸어온 순탄치 않았던 서사를 곡에 부여하며 팬덤에 벅찬 감동을 안김과 동시에 그들을 몰랐던 이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출근-점심-퇴근 시간대에 맞춰 배치한 세곡 역시 섬세한 설정으로 스페셜 유닛의 기능에 충실하다. '파이팅 해야지' 모닝콜을 듣고 일어나 음식 배달을 기다리며 재치 있는 'Lunch'를 틀어놓고, 붐비는 대중교통 속 차분히 하루를 마무리하는 '7시에 들어줘' 재생을 누르면 금세 하루가 지나간다. 판타지를 쫓아가는 보이그룹 유행 속 오랜만에 등장한 현실밀착형 노래.
언오피셜보이, 에디, 애브륄레어드바이져리
2022년 프로듀서 재지 문(Jazzy Moon)과 함께 '철한자구'를, 서저리(Surgery)와 'Proceeding(Doin')'을 발표한 언오피셜보이가 올해는 신예 프로듀서 에디(EDDY)의 손을 잡고 '애브륄레어드바이져리'를 공개했다. 에디는 Inof(본명 황인호)의 동생으로 비아이의 첫 정규 앨범 'Waterfall' 수록곡 '비 온 뒤 흐림' 작곡에 참여한 바 있는 신예 프로듀서다. 날 선 샘플을 쌓아나가며 긴장감을 쌓아나가다 부드러운 신스 연주로 완급을 조절하고 매력적인 훅을 전개하는 '말도 안 돼', 감미로운 이수린의 보컬로 출발해 두 가지 드럼 박자를 교차하며 무드를 완전히 바꿔 놓는 '니가 깨기 전에'로 재능을 입증한다. 탄탄한 랩 스킬과 진일보한 가창을 들려주는 언오피셜보이의 퍼포먼스도 흥미롭다.
림킴 (김예림), Damn Cold
'Veil'부터 이번곡 'Damn Cold'까지 최근 림킴이 발표한 싱글에서 캐롤라인 폴라첵의 인상을 많이 받는다. 정확히는 'Pang'보다 'Bunny is a rider', 'Billions' 등 싱글부터 곧 발매될 새 앨범으로의 변화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디플로 등과 함께한 프로듀서 아레이(ARYAY)가 참여한 'Damn Cold'는 전작의 자욱한 앰비언트 사운드를 가져와 차분한 무드로 김예림의 목소리를 담는다. '더 나아지기를 바랐으나 이제 상관하지 않는다'로부터 운을 떼며 혼란과 냉소,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를 노래하는 가사는 데이비드 카르발(David Karbal), 카메론 헤일(Cameron Hale), 모건 세인트(Morgan Saint)의 작품이다. 김예림의 욕망과 캐롤라인 폴라첵의 미감을 잘 버무렸으나 아티스트의 다음 스텝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Soovi, a Tempo
131 레이블과 프로듀서 크루 화이트 노이즈 클럽은 202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창작가들이다. 트렌드에 민감한 가운데 장르를 넘나들며 고유의 색을 확보하고, 아티스트 개성을 극대화하는 프로듀싱에 캐치한 멜로디 메이킹 능력까지 발군이다. 비아이의 YG 독립 이후 커리어와 AKMU 이찬혁의 데뷔 앨범을 성황리에 함께한 이들은 신인 아티스트의 작품을 프로듀싱하는 '화이트 노이즈 뉴 보이스 프로젝트'의 첫 주인공으로 하이라이트 레코드 출신 수비를 낙점했다. 투명하고 맑은 수비의 목소리는 찬란한 해 질 녘 바닷가를 회상하는 찬란한 노스탤지어 'Ooh La La'와 쾌활한 이별 노래 'Missing You', 드럼 앤 베이스 스타일의 아기자기한 'Hey' 어디에나 잘 어울리며 다양한 감상을 전한다. 비아이, 밀레니엄, 김창훈, 패디, 윤시황의 다섯 프로듀서들이 고르게 참여한 앨범으로 수비는 본격적인 단독 커리어의 시작을 힘차게 내딛는다.
정우, 옛날이야기 해주세요
비극을 피하고자 하는 교훈과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간절한 염원이 천진한 낭만과 해학의 언어를 통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구전은 화자의 심경에 따라, 그가 속한 사회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따라, 주인공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에 따라 그 성격을 달리한다. 싱어송라이터 정우가 2022년부터 미공개곡으로 라이브 무대에서 불러왔던 싱글 '옛날이야기 해주세요'는 현대의 전래동화다. 나에게 일어난 재해와 돌이킬 수 없는 불행, 숨 가쁜 질주 끝 힘겹게 몸을 누이며 잠을 청하는 우리의 이야기가 초롱초롱한 아이의 목소리를 가진 정우의 입을 통해 노래로 기록된다. 피아노 & 신디사이저, 미디 프로그래밍에 카코포니가 참여하여 신비로운 경험을 강화했다.
박재범, Yesterday
저스틴 비버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박재범. 리버브 가득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중심에 두고 단출하게 전개한 알앤비 곡 'Yesterday'는 비버의 'Lonley'와 'Off My Face'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날 선 '쇼미더머니11' 경연곡의 스타일리시한 면모를 잠시 내려놓고, 새로운 회사 모어비전(More Vision)의 시작을 알렸던 설렘의 'GANADARA'와도 다른 결의 사랑 노래다. 새로운 점은 없으나 안전한 카드를 하나 더 추가했다는 의미가 있다. 잔잔한 사랑을 노래하는 전자와 달리 미묘한 사랑의 관계를 잘 포착한 화사와의 커플송 'Love Is Ugly'로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 것도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