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Music Power Station : Review, Column, Interview, etc

뉴진스의 음악은 왜 매력적일까.

단 여섯 곡으로 케이팝 시장을 정복했다.

김도헌
김도헌
- 17분 걸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뉴진스. 2022년 7월 22일 'Attention'과 함께 데뷔한 이후 이 천진난만한 다섯 소녀들은 한국 대중음악 시장을 완전히 평정했다. 첫 EP 'NewJeans'에 수록된 네 곡이 굉장한 바이럴을 일으키더니, 인기가 한풀 꺾였다 싶을 즈음 발표된 겨울 싱글 'Ditto'와 'OMG'로 다시 한번 거대한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Ditto'는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의 톱 100 차트에서 70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신기록을 세웠고, 북미 홍보 없이 빌보드 핫 100 차트 100위권 진입은 물론 차근차근 순위를 끌어올리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뉴진스는 어도어(ADOR) 레이블 민희진 대표의 치밀한 지휘 아래 비주얼, 세계관, 가창, 퍼포먼스, 음악 제작 공정을 일원화하여 빈틈없이 등장한 신인이다. 이들의 흥행과 성공의 원인을 분석하려는 시도는 이미 숱하게 이뤄져 왔고, 민 대표가 거듭 상세하게 모든 제작 비화를 공개했기에 더는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 남아있다. 음악이다. 제작자, 프로덕션, 구성, 결과물 모두 그렇다.

뉴진스의 음악은 왜 매력적일까. 단 여섯 곡으로 케이팝 시장을 정복한 그들의 음악 세계를 파고들어본다.

BANA

"어도어의 음악은 단일 작곡가에 의존해 작업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언급했듯 내가 원하는 음악과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만든 회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의 구성이나 작업 방식 등이 다른 회사와 다르다. 음악을 내가 직접 수집하고 결정한다. 뉴진스의 1st EP의 경우엔 뉴진스라는 팀이 결성되기 전부터 무작위로 수집해 놓았던 나의 데모 라이브러리를 기반으로 직접 트랙 리스트를 구성했다. 따라서 작곡 당시 의도했다거나 하는 추정은 다 틀린 내용이다. 곡의 수집부터 완성, 디테일을 다듬는 과정에서 나는 작곡가들이 아닌 김기현 대표와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총괄인 내가 원하는 방향성대로 믹싱이나 마스터링, 보컬 디렉팅 등의 디테일을 다듬는다." - 민희진 대표, 씨네21 인터뷰 중 -

뉴진스의 음악 원본 데모를 제공하는 회사는 음악 레이블 비스츠앤네이티브스(Beasts And Natives Alike, 이하 BANA)다. BANA 소속 뮤지션 250과 힙합 듀오 XXX의 프랭크(FRNK)가 뉴진스의 모든 노래 제작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250은 'Attention', 'Hype Boy', 'Hurt', 'Ditto'의 기초를 만들었고, 프랭크는 'Cookie'와 'OMG'를 담당했다.

민희진 대표는 GQ와의 인터뷰에서 2019년 즈음 팀을 구상하던 시기부터 현재 뉴진스의 노래 데모를 수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일각에서는 'Cookie'와 'OMG'에 삽입된 브라스 신스 리프를 통해 이 노래가 최근의 작품이 아니며, 오래 보관하고 있던 데모를 다듬어 내놓았다는 사실을 유추하고 있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SM엔터테인먼트에서 인터내셔널 A&R로 근무하며 해외 프로듀서들과 교류하고 수많은 데모 트랙을 받아 옥석을 고르던 BANA 김기현 대표의 익숙한 제작 과정이다. SM엔터테인먼트로부터 투자를 받아 독자 제작사를 설립한 김기현 대표는 2015년 그들의 소속 아티스트 이센스의 2015년작 'The Anecdote'를 덴마크 프로듀서 다니엘 '오비' 클라인과 함께 작업한 바 있다.

beatstsandnatives.com

단독 음악가 - 단독 프로듀서 조합으로 장르 음악 신을 넘어 그 해 가장 큰 화제를 불러 모은 BANA는 이후 2016년 김심야와 프랭크로 이루어진 힙합 듀오 XXX를 데뷔시키고, 소속 아티스트 250의 '뽕' 앨범을 예고하며 자사 프로듀서들의 활약을 예고했고, 인상적인 결과물을 내놓는 동시에 자체 제작한 결과물을 거대 케이팝 기획사에 납품하며 아티스트의 창작 원동력을 확보하는 과정을 거쳤다.

SM과 BANA의 인연은 2014년 레드벨벳의 'Ice Cream Cake'에 래퍼 김심야가 랩 가사를 쓰고 이듬해 250이 f(X)의 '4 Walls' 팝업 행사장에 등장하는 등 오래전부터 구체적 결과물을 내놓고 있었다. 이후 250은 보아의 'Christmas Paradise', NCT 127의 'Chain', '내 Van' 등을 작곡한 바 있다. 민희진 대표와 김기현 대표의 관계가 친밀했음은 물론이다.

2019년 민희진 대표가 SM 총괄이사직을 그만두고 하이브로 이직하고 나서도 BANA와의 교류는 계속됐다. 하이브 CBO(Chief Brand Officer)로 임명된 민희진 대표가 처음 맡은 업무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를 하이브로 리브랜딩 하는 것이었는데, 2021년 3월 19일 공개한 '하이브: 뉴 브랜드 프레젠테이션'의 배경음악을 담당한 이가 250이었다. 이 시기가 바로 민희진 대표가 현재 뉴진스의 노래가 될 데모를 먼저 수급한 시기다.

프로덕션

3년 전 스케치를 기반으로 세상에 나온 뉴진스의 노래는 어떤 매력으로 현재를 사로잡았을까. 자문을 구한 음악가들은 뉴진스의 곡이 대단히 독특한 구성으로 인기를 끌었다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의도된 공백 가운데 팝을 연상케 하는 프로덕션과 믹싱을 통해 정교하고 세련된 소리를 만든다는 평가다.

뉴진스의 'Cookie' 커버 버전을 내놓은 수민(SUMIN)은 뉴진스의 노래에서 '루프(Loop)'를 강조했다. 그는 방탄소년단, 아이유, 레드벨벳, 보아 등 케이팝 아티스트들의 음악에 참여한 이력을 갖추고 있으며 작사, 작곡, 프로듀싱, 연주를 홀로 도맡아 하는 멀티 아티스트다. 그는 뉴진스의 음악에서 가장 처음으로 흥미로운 지점이 인트로라고 말한다.

"처음 노래를 처음 들으면 언뜻 듣기에 힘이 없다고 느낄 수 있는데, 인트로 부분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요. 모타운(Motown) 시기의 루프(Loop)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입장에서 뉴진스의 루프는 한 번 듣고도 기억에 오래 남아요. 기초가 단단하게 서있는 곡이죠."

생각해 보면 뉴진스의 음악은 시작부터 곡의 핵심이 되는 코드 진행과 루프를 처음부터 모두 알려주고 출발한다. 박수 소리와 목소리 샘플로 떠들썩한 분위기를 만들다 몽환적인 신시사이저 루프 다음 신세계로 들어서는 듯 황홀한 'Attention', 마찬가지로 신비로운 보컬 샘플과 신스의 혼합을 들려주다 마법 같은 '1,2,3,4, ' 구호와 함께 뭄바톤 리듬의 드럼 비트를 전개하는 'Hype Boy'가 대표적이다. 'Ditto'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소리는 아련한 혜인의 허밍이다. 대신 그 소리는 결코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일상 속 백색소음이나 무심코 주위에서 들을 수 있는 누군가의 속삭임처럼 자연스럽다.

250의 작품은 안정성으로 승부한다. 일렉트로 팝('Hype Boy'), R&B('Hurt'), 볼티모어 클럽 혹은 저지 클럽('Ditto') 등 장르의 색채가 강한 곡을 만들고 인트로부터 훅까지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두는 가운데 노련한 프로듀싱으로 하이라이트 지점을 지정한다. 총천연색 폭죽을 터트리는듯한 'Hype Boy'의 훅과 'Ditto'의 몽환적인 흐름을 대비하면 이해가 쉽다. 프랭크의 음악은 재치 있다. 채도 낮은 소리를 사용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통통 튀는 베이스를 강조한 'Cookie'와 잘게 쪼개진 비트 변화를 통해 롤러코스터를 탄 듯 역동적인 흐름을 만드는 'OMG'에서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멜로디와 가창

여기에 수민은 '레코딩은 물론 라이브 무대까지 생각한 멜로디 메이킹'을 언급했다. 케이팝은 레코딩의 싸움이다. 그룹을 이루는 멤버들의 고유한 목소리를 짧은 시간 내 조화롭게 배분하여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도로 끌어내야 한다. 비트를 먼저 수급하고 톱 라인(멜로디)를 짜는 경우 둘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호흡이 맞는 선율을 만들었다 해도 녹음실에서 멤버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와 현실에서 손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결과는 다르다.

뉴진스의 노래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위력적인 멜로디 덕이다. 메인 루프 아래 변주되는 가짓수를 두세 가지 정도로 압축하여 쉽게 기억할 수 있고 따라 부르기 쉬운 선율을 지향한다. 250과 프랭크의 데모 위 팝적인 프로덕션이 더해졌다고 가정하면 김기현 대표와 민희진 대표는 이 지점에 상당히 공을 들인 것이 분명하다. 민희진 대표가 씨네21에서 제거하고자 했던 '고음의 필수 파트나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어색한 랩'이 없고, 안전한 지점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있으나 그 맛을 제대로 살리기는 어려운 변주가 일어난다.

그 미묘한 지점을 완성하는 요소가 뉴진스 멤버들의 가창이다. 다섯 멤버들 모두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음 하나하나, 그루브와 리듬 등 사소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단조롭게 들릴 수 있는 선율을 근사하게 소화한다. 특별한 기교 없이도 'Attention'의 후렴 부분은 아주 화사하고, 'OMG'의 복잡다단한 리듬에서도 빈틈이 들리지 않는다. 근간이 잘 잡혀있기에 여타 케이팝 곡에서 겹겹이 싸여 있는 코러스도 과하게 필요하지 않다. 실제로 뉴진스의 노래를 듣다 보면 코러스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필요한 만큼만 들어가 곡을 꾸며준다.

핵심은 하니와 다니엘이다. 맑은 음색에 힘을 실어 전달하는 하니는 'Ditto'와 'OMG'에서 팀 보컬 운용의 중심임을 증명한다. 다니엘은 넓은 음역대를 아름답게 소화하며 뉴진스의 스토리텔링과 하이라이트 모두를 무리 없이 소화한다. 두 멤버 외에도 모두가 고른 능력치를 자랑한다. 모든 곡에서 후렴을 맡고 있는 해린은 귀에 곧장 꽂히는 독특한 음색을 가지고 있으며, 혜인은 허스키한 음색과 더불어 리듬감 있는 파트에서 빛을 발하는 모습에서 현재는 물론 추후 발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민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의 목소리는 뉴진스의 가속 페달이자 브레이크다. 민지는 온 국민이 따라 부르게 된 'Hype Boy'의 후렴 전 주문을 넣었고, 세대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한 'Ditto'의 마무리를 장식했다. 기운 없고 연약하게 출발하는 'OMG'가 상냥한 친구의 등장으로 들썩일 때, 종잡을 수 없이 기뻐해도 된다고 허락하는 듯 담백하고 확신에 찬 '이게 말이 되니 난 물어봐'를 선언하는 이도 민지다. 동시에 그는 신나는 파티의 장을 'He’s right there for me 24 / 난 행운아야 정말로' 와 함께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뉴진스 세상을 완성하는 마지막 장치가 노랫말이다. 뉴진스는 멋진 신세계나 화려한 미래, 근사한 유토피아에 대한 비전을 그리는 그룹이 아니다. 그보다는 과거와 현재를 중요하게 여긴다. 감각적이고 화려한 오늘날의 감각으로 꾸며진 가상의 노스탤지어 체험 공간에서 소녀들은 마음껏 사랑하고 상상하며 해맑게 웃는다.

'Hype Boy'의 노랫말처럼 뉴진스의 이야기는 '내 지난날들은 눈 뜨면 잊는 꿈'이다. 동시에 이들은 강력한 구호, 화려한 나르시시즘 대신 'Ditto'와 'OMG'처럼 약간의 방황과 불안을 첨가해 이들이 발 딛고 있는 시간이 현실임을 자각하게 만드는 것도 잊지 않는다. 뉴진스는 케이팝의 '세계관'과 거리를 둔다. 그때그때 트렌드에 맞춰 지금 이 순간 즐겁고 행복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뉴진스와 기획자들의 목표다. 가끔 그 환상이 과도한 제작자의 목소리에 일그러질 때도 있지만 말이다.

뉴진스의 OMG, ‘가자’에 대한 우려.
OMG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장면 같은 태도는 위험하다.

리믹스 대란

뉴진스의 노래는 여지를 많이 남기는 만큼 침투하기도 쉽다. 그 결과가 2023년의 뉴진스 리믹스 대란이다. 많은 케이팝 히트곡이 있지만 뉴진스의 노래처럼 다양하게 변주되는 경우는 드물다. 2022년 'NewJeans' EP 발매 이후부터 인기 가수들부터 장르 뮤지션들까지 음악 업계의 많은 이들이 뉴진스의 음악을 자신의 스타일로 해석하여 세상에 내놓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타 케이팝 그룹과의 매시업부터 재즈 피아노, 시티팝과 복고적인 펑크(Funk)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 결합은 만능의 열쇠처럼 작용하는 뉴진스 음악의 유연함을 증명한다. 'Cookie'를 재해석한 수민은 '자신의 음악의 스타일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곡'이자 '재치 있는 가사'에 끌렸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Ditto'에 드레이크(Drake)와 위켄드(The Weeknd)를 방불케 하는 소리를 더한 프로듀서 조디악(Zodiac)은 "밝은 그룹의 이미지와 반대로 아련한 멜로디가 매력적이었다. 겉으로는 해맑지만 속으로는 썩어가는 느낌을 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사운드클라우드와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라 셀 수 없이 많은 창작가들의 자유로운 재해석을 듣다 보면 발매 1년도 되지 않은 이들의 노래가 장르 음악가들에게 케이팝에서 레퍼런스로 삼을 수 있는 일종의 기준곡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음악 없이 뉴진스 현상은 불가능했다.

민희진 대표는 헤겔의 변증법을 도식화한 정반합 개념을 케이팝에 적용하여 현재 케이팝 산업의 허를 찔렀다. 씨네21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민 대표는 "기존의 K팝이 지향해 온 다소 전형적인 멜로디 전개 방식이나 가창 스타일 등에 심한 거부감이 있었다."는 신념을 기반으로 음악 레이블 BANA 김기현 대표와 손을 잡았고, 과거부터 수집해 두었던 데모 샘플을 기반으로 독립 음반을 구성한 후 자신의 취향에 맞게 앨범을 다듬어 뉴진스라는 아이돌에게 선사했다.

​뉴진스 현상은 음악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음악 없이 뉴진스 현상은 불가능했다. 뉴진스의 위력은 케이팝 아이돌이라는 높은 진입 장벽을 허물어트린, 십대부터 중장년층까지 열광하게 만든 음악에서 나온다. 달콤쌉싸름한 안티-케이팝으로 케이팝의 출발을 소환하는 뉴진스의 음악 세계는 깡총깡총 뛰어다니는 토끼처럼 귀엽지만 잽싸고 날래다. 쉽사리 잡히지 않는 연구대상이다.

KPOPFeatures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김도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