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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Power Station : Review, Column, Interview, etc

아파트와 핫투고

카타르시스와 유희의 차이는 분명하다.

김도헌
김도헌
- 6분 걸림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 애틀랜틱 레코드에서 한솥밥을 먹게 된 로제가 브루노 마스에게 컬래버를 먼저 제안했고,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3곡을 보냈는데 그 중 브루노 마스가 '아파트'가 무슨 뜻인지 물었고, '코리안 드링킹 게임'이라 대답하자 당장 하자고 결정하여 세상에 나온 노래라고 한다.

'Apt.'의 '아파트 아파트….'만 듣고 브루노 마스는 아마 채플 론의 'Hot To Go!'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2024년 미국 차트 역주행의 주인공이자 찰리 XCX, 사브리나 카펜터와 함께 팝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채플 론의 인기곡 중 하나다. 롤라팔루자 시카고에서 역사상 최다 관객과 함께 머리 위로 손을 흔드는 장면은 올해 대중음악의 상징적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Hot To Go!'와 'Apt'는 익숙한 구호로부터 만들어졌다. 핫 투 고는 미국 치어리더들의 단골 구호다. 아파트는 한국 대학생들이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술 게임이다. 채플 론은 유명해지기 전부터 'Hot To Go!'를 부르기 전에 관객들에게 손동작을 알려줬다. 로제와 브루노 마스는 손을 겹치는 술 게임과 더불어 뮤직비디오를 통해 단순하고 코믹한 안무를 반복한다. 블론디와 토니 배질에 대한 오마주 역시 느슨한 공통점이다. ‘Apt.’는 낵의 ‘My Sharona’도 한스푼 추가.

내용도 단순하다. 수위만 다를 뿐, 상대를 향한 열렬한 구애와 오늘 밤 미쳐보자는 쾌락의 송가다. 익스클레임(Exclaim)지의 카엘렌 벨은 'Hot To Go!'를 바보 같지만 천재적이'며 '팝 음악의 즐거움은 과잉과 쾌락에의 혈기 왕성한 항복'이라 평가했다. 팬데믹 시기 빌리 아일리시와 올리비아 로드리고, 라나 델 레이로 드리운 팝 음악의 엄숙주의가 걷히고 있다. 숙련된 고수의 뻔뻔한 파티 팝 찰리 XCX, 잔인한 핀업걸을 자처하는 사브리나 카펜터, 'Birds of a Feather'로 본인만의 찬가를 내놓은 빌리 아일리시와 낙천적인 컨트리 진영의 선전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천진난만한 해맑음의 아래 심연에는 캄캄한 어둠이 있다. 채플 론은 'Hot To Go!'에 '항상 꾸미고 춤추고 어리광 부리고 싶은 욕망'을 담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학창 시절 내내 치어리더를 꿈꿨지만 끝내 퀸카가 될 수 없었다. 17살에 처음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맺었지만, 레이블은 이렇다 할 가이드도 주지 않았고 제대로 된 홍보도 하지 않았다. 채플과 프로듀서 댄 니그로가 성공을 확신한 'Pink Pony Club'의 발매를 반대했고, 우여곡절 끝에 2020년 싱글을 내주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채플을 레이블에서 쫓아냈다.

고향 미주리로 돌아간 채플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마음을 다잡고 음악을 다시 시작한 그는 그간의 혼란과 울분을 담아 곡을 써 내려갔다. 퀴어 정체성을 확립하고 드랙퀸 문화로부터 영감을 받아 새로운 무대 미학을 만들어 나갔다. 그렇게 지난해 발표한 앨범이 2024년의 문제작 'The Rise and Fall of a Midwest Princess'다. 그 가운데 치어리더 문화와 빌리지 피플로부터 내려온 퀴어 정체성을 진솔한 욕구로 표출한 노래가 Z세대의 YMCA인 'Hot To Go!'다.

채플 론을 해고한 레이블이 재미있게도 애틀랜틱 레코드다. 'Apt.'를 듣고 곧바로 채플 론을 떠올렸던 이유기도 하다. 재미있는 곡이고 재치 있는 콜라보다.

그러나 어쩐지 건조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뉴웨이브와 신스의 비중이 높은 'Hot To Go!'에 비해 브루노 마스의 드럼 연주를 주축으로 삼는 구조적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Locked out of heaven'의 마이너 코드 진행과 도입부 신스 연주를 케이팝 스타에게 맞게 다듬어 낸 듯한 재활용 때문만도 아니다. 건조한 '아파트 아파트'의 후렴이 두 보컬의 열정적인 가창을 선보이는 절정부를 위한 챈트에 그치는 것이 가장 크다.

굳이 아파트일 필요가 없다. 바니바니였어도, 더 게임 오브 데스였어도, 경마장 게임이었어도 상관없었다. 낯선 한국의 문화와 그 나라에서 만들어진 케이팝의 세계적인 그룹 블랙핑크의 로제와의 협력이라는 곡의 의의가 곡보다 더욱 크게 다가온다.

채플 론이 긴 시간 쌓아온 서사에 로제와 브루노 마스는 그들의 명성과 브루노 마스의 베테랑 팝 작곡법으로 대응한다. 효과적인 전략이다. 하지만 카타르시스와 유희의 차이는 분명하다. 다시 흥미진진해지고 있는 팝의 새 물결에 동참하거나 응용하는 과정에서 결국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결과물은 진정성이라는 키워드를 확보한 작품이다. 재미와 유명함보다는 진심이 필요한 시대다.

+ 그렇다해도 YG 시절 블랙핑크의 답답한 음악보다는 현재 홀로서기가 훨씬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다. 제니가 Mantra로 사브리나 카펜터를, 리사가 New Woman으로 로살리아와 함께 방향을 잡아나가는 모습이 재미있다.

Opinion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김도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