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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Power Station : Review, Column, Interview, etc

유령들린 코첼라

코첼라는 한때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 페스티벌이었다. 지금은 인플루언서, 기술의 붕괴, 공허한 볼거리의 황무지가 되었다.

김도헌
김도헌
- 36분 걸림
Coachella Isn’t Dead—but It May Be Haunted
This used to be the most prominent music festival in America. Now it’s a wasteland for influencers, technical meltdowns, and hollow spectacle. But while you’re there, please make some noise for ‘The Simple Life.’

프린스의 귀환도, 비욘세의 베이첼라(Béychella)도, 블랙핑크의 헤드라이너 공연도 아니었다. 한국에서 가장 화제가 된 코첼라 페스티벌은 올해였다. 르세라핌의 무대가 '라이브 논란'을 부르며 코첼라 페스티벌의 역사와 위상, 무대를 조명하는 콘텐츠가 쏟아졌다. 매년 유튜브를 통해 모든 무대를 실황 중계하는 코첼라 채널 라이브에서 이만큼 많은 한국어 댓글을 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이제는 코첼라 페스티벌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음악 축제라 생각하는 한국 음악 팬들이 많아졌다.

현지 반응은 다르다. 지난해부터 음악 축제가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많이 등장했고, 음악 축제에 몰입하지 못하는 관객들과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축제 성격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2024년 코첼라에 대한 반응은 사실 최악이다. 해외 매체가 르세라핌의 무대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무대의 퀄리티를 따지기 이전에 케이팝 가수가 공연을 했다는 사실을 건조하게 받아들일 뿐이라서다. 반면 유명 밴드와 팝스타들의 실책과 아쉬움에 대해서는 날선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2024년의 코첼라는 페스티벌의 실책과 더불어 오늘날 대중음악의 황량한 풍경을 경고하는 일종의 조짐일지도 모른다. 웹진 POW를 운영하는 제프 와이즈는 더 링어(The Ringer)에 올해 코첼라의 3일을 리뷰하는 칼럼을 작성했다. '코첼라는 죽지 않았다 - 하지만 유령들렸을지도 모른다(Coachella Isn’t Dead—but It May Be Haunted)'는 제목이다. "코첼라는 한때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 페스티벌이었다. 지금은 인플루언서, 기술의 붕괴, 공허한 볼거리의 황무지가 되었다."는 소회와 함께 시작하는 칼럼을 번역하여 소개한다.

현실이 멈추고 환각이 시작되는 순간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나의 상상력이 부족한 탓일까, 아니면 뱀파이어 위켄드가 그레이트풀 데드의 ‘Cumberland Blues’를 커버하는 대신 패리스 힐튼을 출연시키며 옥수수밭(‘Cornhole’)의 친선 경기 한 판을 벌인걸까? 밴드의 리드 싱어 에즈라 코에닉은 시리즈 ‘건스모크(Gunsmoke)’의 대사 톤으로 43살이 된 인플루언서를 ‘코첼라의 여왕’이라 소개하며, ‘The Simple Life’를 위해 소리 질러 달라고 말한다. 패리스 힐튼은 검은 스텟슨 모자와 얇은 보석으로 장식된 투피스 옷을 입고 당황한 관객앞에 등장한 패리스 힐튼은 노츠 베리 팜(Knott’s Berry Farm)에 있는 VIP 전용 식당에서 밥을 먹는 우스꽝스러운 댄서처럼 보인다. 패리스 힐튼이 무대에 반칙을 좀 써도 되겠냐고 물을 때, 나는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토요일 밤 6시 15분이다. #제3차세계대전 이 트위터에 트렌드로 떠올랐다.

힐튼이 골드 러시의 황혼 속으로 사라진 후, 그의 자리는 통나무를 쪼개듯 정교하게 콘홀 게임을 하는 에이브러햄 링컨으로 순식간에 대체된다. (역자 주 : 통나무 쪼개는 사람 (Rail Splitter)은 켄터키 주 목수 제임스 링컨의 아들로 통나무집에서 태어난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별명으로, 링컨은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 별명을 선거에 활용했다.) 몇가지 의문이 생긴다.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레모네이드는 화이트 라이트닝이 들어있어서 무려 16달러 돈을 받는 걸까? (역자 주 : 화이트 라이트닝은 미국 밀주를 부르는 속어이며, ‘LSD의 왕’이라 불리는 오슬리 스탠리가 196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랑의 여름'을 예고한 행사 ‘휴먼 비인(Human Be-In)’에서 30만 정 이상 제조하여 배포한 LSD의 이름이다.)

암살당한 링컨은 이 소우코우스 기타 리듬을 패리스 힐튼 스타일로 끝내주게(Sliving) 즐겼을까? (역자 주 : Soukous, 1960년대 콩고민주공화국으로부터 만들어진 댄스 음악 장르다. 뱀파이어 위켄드의 ‘Cape Cod Kwassa Kwassa’에서 들을 수 있는 리듬이다.) 이 공간은 죽음이 지배하는 비극의 왕국인가? 아니면 코첼라 팔찌가 손목에 너무 꽉 끼어서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별이 쏟아지는 계곡의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된 것인가?


지난 25년 동안 이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음악 페스티벌은 죽음과 부활, 디플로의 카메오들과 함께 커다란 네온 관람차처럼 빙글빙글 돌아갔다. 하지만 지난 몇 달 동안 코첼라에 대한 추측이 실존적 우려로 뒤덮이고 있다. 지난 주말 라나 델 레이,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도자 캣을 헤드라이너로 세운 코첼라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매진에 실패했다. 빌보드에 의하면 4월 12일 기준 2주 간의 티켓 판매량은 지난해의 80% 수준에 그쳤다.

부진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페스티벌은 늘어나고 있으며 팬데믹 이후 콘서트가 엄청나게 많아졌는데 인플레이션으로 문화에 투자할 수 있는 비용은 줄어들었다. 라인업은 계속 부실해지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코첼라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것이 밀레니얼 세대의 통과 의례처럼 여겨지고 라인업 발표 한시간만에 모든 티켓이 팔려나가던 2010년 중후반 전성기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코첼라의 죽음"은 매혹적인 헤드라인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의 상황을 부정확하게 묘사하는 문장이다. 닥터 드레와 스눕독이 투팍을 홀로그램으로 소환한 지 십수 년이 지났다. 투팍의 디지털 유령은 꽃을 들고 있는 관객들에게 두 팔을 쭉 들어 ‘코첼라, 지금 어때?!’라 소리질렀다. 아직 살아있는 데스 로우 레코즈 관계자들 앞에서 조각난 홀로그램이 ‘Hail Mary’를 부르는 광경은 ‘달릴지 죽을지(Ride or die)’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역자 주 : ‘Hail Mary’의 후렴에 등장하는 ‘Ride or Die’를 이용한 표현이다.) 코첼라 공연 1년 후 투팍 홀로그램을 만든 회사는 파산 신청을 했다.

영원히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디지털 환생의 엉뚱한 비전은 예언적인 면모가 있었다. 문제는 빨라도 너무 빨랐다. 지난해 우리는 프랭크 오션의 코첼라 공연을 바라보며 AI 혁명의 임박을 느꼈다. 지금 우리는 사회 전반에 걸쳐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챗GPT 이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인공지능 창작 음악의 기이한 발전 덕에 프로그래머들은 시공의 제약을 받지 않는 프로그램의 구슬픈 델타 블루스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래퍼들은 유출된 디스곡을 ‘딥페이크 AI가 만든 싱글’이라 주장하며 공격성과 거리를 둔다. 구글 검색은 실제 사람이 작성한 기사 대신 알고리즘으로 파생된 전문 용어가 만들어낸 ‘AI 개요'를 내보낸다.

합성된 세계와 숏폼 스크롤이 불러일으키는 최면으로 인해 웹사이트 트래픽이 급감했다. 지난 10년을 정의한 문화 중심 매체 - 바이스(Vice), 피치포크(Pitchfork), 컴플렉스(Complex) - 등 음악 미디어가 대량 해고로 망각을 향해 나아가면서 파괴되었다. 한때 코첼라 포스터를 바라보며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 게이트키퍼의 취향을 감지할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팬데믹 이후 페스티벌 라인업은 알고리즘의 낮은 폭정이다. 틱톡의 바이럴 히트, 광고를 받는 인플루언서, 스트리밍 플랫폼과 플레이리스트 알고리즘이 독특한 개인의 취향을 완전히 대체했다.

새로운 세상의 탄생이 어려워진다면, 이는 전적으로 기업의 계산된 결정 탓이다. ‘이전 시대'에 대해 희미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복고풍의 상품, 스펙터클을 위해 미묘한 차이를 희생하는 사람들, 개인의 기억 대신 카메라로 기록한 순간, 무한하고 마찰 없는 엔터테인먼트의 유령 쇼핑몰 등에 의존하는 게 훨씬 안전하다. 예술은 길지만 인생은 짧다. 밴드는 사라지지만, 브랜드는 영원히 살아남는다.

토요일 저녁 6시가 조금 지난 시각, 메인 무대에서 이 아이디어가 실현됐다. 관객들은 밴드 서브라임(Sublime)의 세상을 떠난 보컬 브래들리 노웰의 아들 제이콥 노웰의 인터뷰 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많은 관객 앞에서 노래한 적이 없으셨죠. 아버지께서 28세에 세상을 떠나셨으니 지금 제 나이와 비슷합니다. 완벽한 타이밍이죠. 서브라임이라는 브랜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웰 부자는 닮았다. 모래처럼 부드러운 금발 머리에 천사같은 미소, 통짜 몸매까지 똑같다. 홀로그램이 아니다. 긴장을 풀고 무대에 올라선 젊은 노웰은 누구나 기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재현한다. 브래들리 사후 밴드 베이시스트 에릭 윌슨, 드러머 버드 고와 함께 15년 동안 서브라임 윗 롬(Sublime With Rome)으로 활동한 보컬 롬 라미레즈만큼 유능한 모습이다. 사실 버드 고는 서브라임 윗 롬 활동 26개월 만에 활동을 그만뒀다. “뭔가 잘못됐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냥 노래를 연주하는 게 아니라 브래드 없는 서브라임으로 노래를 연주하는 것 말이에요.”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제 과거 멤버들은 모두 법정 상속인인 노웰이 이끄는 원래의 기치 아래 다시 돌아왔다. 새로운 서브라임은 세련되고 활기차지만, 지루함을 참을 수 없다. 이 무법자 사춘기 소년의 예배는 주말을 기록하는 관객들에게 호소력을 갖고자 노력하고 있다. 서브라임은 도어즈와 마찬가지로 바이브를 지향하는 밴드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리드 싱어의 특이점을 믿어야 한다. 짐 모리슨과 브래들리 노웰이 가짜라고 생각하거나, 그들의 거룩한 천재성을 믿거나 둘 중 하나다. 그리고 이 둘은 홀로그램 혹은 원격으로 대체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이와 같은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은 소셜 미디어가 우리 모두를 하나의 거대하고 자의식 가득한 피로의 공연에 가두어버린 후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전함처럼 거대한 스크린에서 서브라임은 고대 영어로 적힌 밴드 이름이 적힌 해적 깃발을 흔들고 있다. 그들은 세상을 떠난 브래들리 노웰과 23년 전 세상을 떠난 달마시안 강아지 ‘루 독'이 지금은 사라진 스웨트박스 공연장의 무대를 활보하며 난동 부리는 장면을 VHS 클립으로 상영한다. 2024년에 이 노래가 나왔다면 네덜란드 헤이그의 홍등가에서 울려퍼질 성매매에 관한 노래 ‘Wrong Way’를 연주하는 동안 “코첼라에서 시간을 보내세요"라는 문구가 화면에 떠간다. ‘데킬라 마실 시간!(It's Tequila Time)’이라는 광고를 단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다닌다. 지금은 데킬라 마실 기분이 아닌데도 말이다. 마지막 곡 ‘Date Rape’를 연주할 땐 “좋은 선택을 하렴 - 엄마가 (make good choices - mom)”이라는 광고가 보인다. 확실히 좋은 조언이다.

가까운 과거를 재현하려는 이 열망은 새롭지 않다. 코첼라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은 큰 돈이 걸려있는 동창회였다. 2001년의 제인스 애딕션, 2004년의 픽시즈, 2007년의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 2014년의 아웃캐스트가 대표적이다. 올해는 서브라임의 전 투어 동료이자 스카 팝의 선구자 노 다웃(No Doubt)이 일회성 재결성을 통해 무대에 올랐다. 그웬 스테파니의 옛 밴드가 마지막으로 함께 공연한 지도 거의 10년이 지났다. 하지만 그들은 놀랍게도 LA 지역 라디오 방송국 KROQ의 위니 로스트(Weenie Roast) 페스티벌에 올랐던 신인 시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빌 클린턴의 첫 임기 동안 상업적으로 정점을 찍었던 크로스오버 히트곡을 찾는 이들에게 노 다웃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밴드다. 재능 있는 지역 록 밴드가 정신적으로 동질감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음악을 갈고 닦아 인터스코프라는 메이저 레이블이 그들을 언더그라운드에서 끌어낼 때까지 수백번 공연을 펼치며 성공한 노 다웃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구시대 음악 시장의 상징이다. 변덕스럽지만 광적으로 헌신적인 CEO 지미 아이오빈의 후원 아래 노 다웃은 펑키한 레게 파티 리프를 멀티 플래티넘 판매고, 6-CD 체인저, 이별과 재회의 송가로 바꿔놓을 수 있는 시간, 공간, 자원을 얻었다. 노 다웃의 노래는 침실에서 머리빗을 마이크 삼아 혼자 불러도, 캠프파이어를 둘러싸고 다같이 불러도 잘 어울린다. 앨범을 구매한 적이 없더라도 MTV와 얼터너티브 록 라디오를 지배했던 노 다웃의 음악은 삼투 현상처럼 우리의 기억에 파고들어 있다. 코첼라처럼 집중력이 분산되기 좋은 큰 무대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그웬 스테파니는 뾰족한 파인애플 머리를 하고 영화 ‘제5원소'에 등장하는 사이버펑크 킬트 옷을 입고 등장한다. 노 다웃의 전성기를 보기엔 너무 어렸던 20대 소녀가 ‘너무 멋져요!’라 외친다.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스테파니는 나이를 잊은 듯 야성적인 에너지로 돌진하며 캘리포니아 남부의 정석으로 자리잡은 ‘Don’t Speak’, ‘Spiderwebs’, ‘Sunday Morning’ 히트곡을 통해 흠잡을 데 없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노 다웃은 여전히 엑스레이 스펙스와 스페셜스, 엑스, 더 스미스, 마돈나, 블론디의 어딘가를 겨냥하며, 프린스 버스터의 ‘One Step Beyond’를 커버하며 경의를 표하기도 한다. 이들은 밴드의 1호 팬을 자처하는 올리비아 로드리고와 함께 ‘Bathwater’ 무대를 펼치며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장식한다. 애너하임의 전설은 디즈니 스타에서 팝 펑크의 거물에게 공식적으로 성화를 넘긴다.

하지만 명백히 과거에 대한 숙취와 감성이 지배적이다. 스테파니 역시 공연 초반에 좌측 스테이지 관중에게 ‘향수가 느껴진다(So Nostalgic)’이라 이야기하며 인정했다. 노 다웃은 타임 머신에 몸을 기대고 1990년대 밴드의 거친 홈메이드 비디오를 투사하며 무적의 전사로 거듭났다. 세계를 정복할 준비가 되어 있다. 영원한 젊음을 갈구하는 도리언 그레이가 마치맨 빅 테크에 힘입어 망상을 실재로 옮겨 영원히 살 수 있는 가상 시뮬레이션을 만드는 느낌이다. 재활용되고 찢겨질, 사라진 시대를 상기하는 불필요한 모습이다.

노 다웃은 최근 틱톡에서 유행한 1995년작 ‘Just a Girl’을 충실하고 역동적인 버전으로 선보이며 무대를 마무리한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미래로 가고 있어요.”는 스테파니의 설명은 부분적으로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월의 주름을 무시할 수는 없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은 잊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역사의 반복을 피할 수 있었던 세상에선 나쁜 기억도 자산으로 삼을 수 있었다. 이제 디지털 늪에 빠진 세상은 거의 모든 것을 소비자가 원하는 즉시 제공하며, 대중음악의 설 자리는 점차 좁아지고 있다. 빌보드에 의하면 지난해 카탈로그 음악 (발매된 지 18개월 이상 된 음악)의 앨범 소비 비중은 72.6%였으며, 이 추세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향수는 항상 존재했지만, 이제는 참신함에서 문화의 생동감 넘치는 힘으로 진화했다. ‘나는 1990년대를 사랑해', 혹은 ‘나는 Y2K를 사랑해'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아티스트조차 집단적 미토콘드리아처럼 유전적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라나 델 레이가 매력적인 이유는 단순히 노래가 위트 있는 서정성과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어서가 아니다. 존재하지 않았던 미국에 대한 그의 굴절적 자각 때문이다.

금요일 밤 헤드라이너 무대에서 라나 델 레이는 “컴퓨터, 라나 델 레이 코첼라 헤드라이너 무대를 설명해줘”라고 검색창에 입력하면 등장할 정도로 전형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그렇다고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라나 델 레이가 세번째 곡으로 서브라임의 ‘Doin’ Time’을 커버한 데는 이유가 있다. 브래들리 노웰과는 정반대지만 묘하게 닮은 점이 있는 라나 델 레이는 미국 해변가의 ‘싫어하거나 증오하는' 원형을 그리는 인물이다. 그가 코첼라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불꽃놀이만큼 화려한 기대로 가득한 공연을 펼친다면 이는 가수의 브랜드를 훼손하는 것이다. 관객은 라나 델 레이와 함께 해변가 거리 아래 터널로 들어가거나, 춥고 바람이 부는 야외에 남겨진다.

샴페인과 장미 꽃잎, 으깨진 신경안정제로 가득 채워진 곡선의 욕조에서 흐느끼며 부르는 우아한 발라드를 얼마나 좋아하느냐에 따라 라나 델 레이의 무대를 얼마나 즐길 수 있는지가 달라진다. 이 노래가 ‘Summertime Sadness’라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반짝이는 파란 드레스를 입고 모든 음을 정확히 맞추는 그는 존 F. 케네디의 유령에게 ‘해피 버스데이 투 유'를 부를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거대한 스크린은 가수, 댄서, 밴드와 함께 라나 델 레이가 서부 사막을 배경으로 타이어 그네를 타고, 지옥의 천사가 운전하는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성조기 앞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에이셉 로키와의 과거 장면을 재생한다. 여기서 ‘어렸을 때'의 좋았던 기억을 되짚는 아쉬움이 흐릿한 꿈과 충돌한다.

공연이 끝날 무렵, 라나 델 레이는 코첼라 헤드라이너 무대의 공식이 된 ‘저 문 뒤에 기다리고 있는 깜짝 게스트'를 묵인한다. 그는 ‘당신(관객) 세대의 목소리'라 소개하는 빌리 아일리시와 함께 ‘Video Games’를 합창한다. 빌리 아일리시는 라나 델 레이에게 ‘당신들이 존재하는 이유의 절반'이라 화답한다. 5만여명 관객들이 아이폰으로 만든 인공의 불빛을 받으며 둘은 ‘Video Games’의 ‘Swingin’ with the old stars’ 구절을 합창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나 델 레이는 고풍스러운 음악에 맞춰 무대를 빠져나간다. 알츠하이머 병이 진행되는 듯 쪼개진 샘플이 유령으로 가득한 무도회장의 팝 음악처럼 들린다.

코첼라 2022년 헤드라이너였던 빌리 아일리시는 토요일 밤 Do Lab 스테이지에서 깜짝 DJ 세트를 펼쳤다. 그의 오빠이자 공동 작곡가인 피니어스, 유명 틱톡 인플루언서들과 ‘슬럿(Slut:The Play)’이라 불리는 취소된 넷플릭스 쇼 출연진들 등 30여명이 무대를 꾸렸다. 추최 측 추산에 따르면, 2만 5천 명의 관객들이 이 DJ 댄스 파티를 즐겼다. 고티에의 ‘Somebody That I Used To Know’를 틀고 있다. 키드 커디가 MGMT와 함께한 ‘Pursuit of Happiness’를 블로그에 깜짝 공개했던 시절을 기억하는가? 물론 그렇겠지. 오바마 시대의 향수를 다시 한 번 불러일으키기 위해, 갑자기 래퍼 타이가가 등장해 ‘Rack City’를 부르고 있다.

최신 유행마저 과거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 르네 랩(Renae Rapp)과 빌리 아일리시의 공통점은 9/11 테러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뿐이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인터스코프 레코드의 치열한 마케팅 덕분에 그는 암묵적인 제2의 빌리 아일리시로 활동하고 있다. 르네 랩은 그가 4살 때 개봉한 ‘퀸카로 살아남는 법(Mean Girls)’의 브로드웨이 각색 무대에 레지나 조지 역으로 캐스팅되어 명성을 얻었다. 그의 코첼라 데뷔 무대는 15년 전 여섯번째 시즌으로 끝난 TV 드라마 ‘엘 워드(The L Word)’ 출연진들의 소개로 시작된다.

무대 중간 르네 랩은 2009년 발매 당시 여성 아티스트의 1주일 총 디지털 다운로드 최고 기록을 세운 히트곡 ‘Tik Tok’ 리믹스로 케샤를 소환한다. 케샤의 공연에서 빠진 것은 그 시절 밝은 색상 배경에서 실루엣이 춤을 추는 아이팟 광고 뿐이다. 르네 랩의 파워 발라드는 허름한 라이트 에이드(Rite-Aid; 미국의 약국 체인)에서 점원이 굳게 잠겨 있는 치약 상자를 열어주길 기다리는 답답한 시간에 안정제처럼 들린다. 공연이 끝나고 텅 빈 무대를 배경으로 셀카봉으로 추억을 남기는 주머(Zoomers)들에게 어울리는 음악이다. 르네 랩의 무대를 콘텐츠로 찍고 있는 크리에이터는 어반 아우피터스의 가이 피에리 티셔츠를 입고 있다. 다른 한 명은 스티브 부세미 밈 같은 옷을 입고 있다. 그들은 카메라에 대고 “르네첼라다!!!(It’s RENECHELLA!)’”라고 세번이나 소리친다. 그리고 팔로워들에게 말한다. “이제 아이스크림 먹으러 갑시다!”

미래주의자들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사하라 텐트에서 무대를 펼친 테크노 유토피아 드루이드 그라임스는 로봇이 난동을 부리고 인류를 살해하는 내용의 DJ 셋을 선보인다. 물론 이는 장비가 잘 작동할 때 완성되는 무대다. 저예산 인공지능이 제작한 ‘반지의 제왕'처럼 보이는 영상을 바탕으로 강렬한 인더스트리얼 비트를 쏟아내는 가운데, 갑자기 그라임스가 공연을 중단한다. 그리고 기계가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라임스에 의하면 모든 트랙이 두배속으로 나오고 있는 ‘중대한 기술적 오류'가 있다고 한다. 자녀들의 이름을 엑스 애쉬 에이 트웰브(X Æ A-Xii), 엑사 다크 시드라엘(Exa Dark Sideræl), 테크노 메카니쿠스(Techno Mecanicus)라 지은 가수가 기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모양이다. 그라임스가 할 일은 디제이 셋을 라이브 셋으로 바꾸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는 “설명하기 어려워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그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DJ 셋 준비를 아웃소싱했다고 주장하며, 기술적 문제를 관계자들의 탓으로 돌린다. 좌절감에 휩싸인 그라임스가 “다 망했다”고 외친다. (역자 주 : 그리고 그라임스는 실패한 무대를 자학하는 두번째 주 무대 오프닝 영상을 선보였다.)

기믹, 진부한 표현, 시대에 역행하는 관습에도 불구하고 몇몇 아티스트는 여전히 번영을 꿈꾼다. 블러는 코첼라 밸리에 거주하는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합창단의 지원 아래 독특한 브릿팝을 선보인다. 하지만 1994년 히트곡 ‘Girls & Boys’를 모르는 관객들이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데이먼 알반은 “우리를 다시 볼 수 없을 거다"라며 그들을 비웃는다.

제이미 엑스엑스, 플로팅 포인츠, 다프니의 4시간 짜리 B2B 세트는 완벽한 큐레이션, 기술이 선사하는 마법, 영감을 주는 일의 기쁨이 시대를 초월한 개념임을 상기한다. 티나셰는 자신이 아리아나 그란데만큼 인기 있어야 함을 증명한다. 허드슨 모호크와 니키 네어는 베이스가 강조된 강렬한 클럽 뱅어를 선보인다. 에콰도르 출신의 스위스 듀오 헤르마노스 구티에레즈(Hermanos Guiérrez)는 소노란 사막 황무지 변두리에 사는 노년의 기타 주술사로부터 연금술을 훔쳐온 듯 미묘하고 사이키델릭한 웨스턴 튠을 풀어놓는다.

대부분 음악가는 규모를 선택했다. 충격 가치, 싸구려, 웅장함이 장악한 문화 가운데 서사를 향한 열망은 지쳐간다. 그렇다고 지루하다는 뜻은 아니다. 제이 발빈은 외계인을 테마로 한 세련된 레게톤 세트에 윌 스미스를 등장 시켜 1997년작 ‘맨 인 블랙'을 선보인다. 매혹적인 도자 캣은 아쉬운 일요일 밤의 헤드라이너 무대에서 남아공 합창단, 21 새비지, 에이셉 로키, 로드 워리어 코스튬을 입은 티조 터치다운, 창을 휘두르는 악마 군단 크램푸스(Krampuses)를 대동한다. 굉장한 프로덕션 밸류와 시상식 스타일의 카메라 워크가 돋보이는 이 무대는 사실 관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방송을 위해 설계된 것만 같다. 하지만 도자 캣만 이 사실을 모르는 듯 하다. 무대를 떠나기 전 도자 캣은 티라노사우루스 화석과 함께 진흙탕 위에서 ‘Wet Vagina’를 부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랩을 하고 있다.

퇴행적인 코첼라에서 지난 40년 동안 가장 혁신적이었던 음악 장르 힙합의 부재가 눈에 띈다. 퓨처, 메트로 부민, 릭 로스, 그리고 랩 삼대장 - 켄드릭 라마, 드레이크, 제이콜 - 중 누구도 코첼라에 나타나지 않았다. 한 명이라도 출연했다면 역사상 가장 기대되는 공연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퓨처와 메트로 부민은 힙합 팬들을 코첼라에서 멀어지게 만든 랩 카니발 롤링 라우드(Rolling Loud) LA 헤드라이너로 출연했다. 롤링 라우드와 더불어 웬 위 워 영(When We Were Young), 러버스 앤 프렌즈(Lovers & Friends), 저스트 라이크 헤븐(Just Like Heaven) 등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페스티벌이 틈새 시장을 공략하며 코첼라의 시장 점유율과 인재 풀을 잠식하고 있다.

https://www.billboard.com/lists/coachella-2024-tyler-the-creator-performance-recap/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는 토요일 자정 무렵 코첼라를 구원하려 나타났다. 앞서 언급한 3대장에서 타일러가 간과되는 상황이 그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낙점된 이유다. 타일러는 텀블러(tumblr) 플랫폼에 등장한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열광적인 팬층으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큰 무대로 향하는 비전을 넓혀왔다. 그는 2011년 크루 오드 퓨처(Odd Future)와 함께 처음으로 코첼라에 출연했던 경험을 “끔찍했지만, 굉장했다"고 묘사한다. 당시 오드 퓨처는 물총을 쏴대는 VIP 존 관객들과 함께 백스테이지를 촬영하려다 페스티벌에서 쫓겨났던, 엉뚱하고 무모한 아이들이었다. 그들이 ‘Pretty Bitch’를 릴 비(Lil B)와 함께 부르는 영상은 프린스와 비욘세가 만들 수 없는 코첼라의 하이라이트였다.

2024년 타일러는 3만 1천 달러짜리 골프백이 포함된 루이비통 라인을 출시하는 거물이 되었다. 케이블 TV 쇼를 진행하고, 골프(Golf)와 르 플레르(Le Fleur)라는 브랜드를 론칭하며 한 세대의 사고방식을 보다 파괴적인 아이디어로 크게 실현했다. 타일러는 현대적인 브랜드 산업에 구심력과 창의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음악가다. 코첼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세워진 광고판에 그가 써놓은 문구는 정중했다. “휴대폰 불빛이 아니라, 여러분의 얼굴이 보고 싶어요 (I WOULD LOVE TO SEE Y’ALL FACES AND NOT YOUR PHONE LIGHTS)”.

어쩌면 쉽고 다소 진부한 감성이지만, 이는 현재 표준이라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반항이기도 하다. 반항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진화된 반항이 필요하다. 타일러의 메시지는 퍼렐 윌리엄스와 헨리 데이비드 소로, 영화 ‘잭애스'와 감독 웨스 앤더슨을 연결하는, 이전에 발견되지 않았던 어떤 자기중심적 연결고리에 존재한다. 휴대폰 좀 그만 보고,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놀면서, 끝내주는 걸 만드는 거다. 매사 복잡할 필요는 없다.

타일러의 무대는 스케치로 시작된다. 타일러는 계란을 정말 좋아하는 방랑자로 RV에 살고 있다. 그가 가스를 켜자마자 캠핑카가 폭발한다. 무대 조명이 켜지고, 그랜드 캐니언의 노두(露頭)처럼 보이는 무대 위 공원 관리원 복장을 한 타일러가 나타난다. ‘Igor’s Theme’과 함께 고블린과 같은 복잡한 춤을 추며 타일러가 소리친다. “코첼라, 기다렸냐!”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가 코첼라 헤드라이너로 서고 싶다고 말한 2011년의 트윗이 최근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Wolf Gang’을 노래하던 시절부터 오늘날 그가 메인 무대에 서기까지는 재능이나 독창성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타일러는 예술의 모든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그의 초기 음악 세계는 N.E.R.D.에 지나치게 빚을 지고 있었는데, 곧 스티비 원더, 영국 뉴웨이브, 모던 펑크, 1990년대 알앤비 등으로 스펙트럼을 넓혀나갔다. 동시에 굉장히 현대적으로 들린다. 타일러의 랩은 초기의 거친 면모를 잃지 않으면서도 더욱 절제된 형태로 서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며 풍부한 상상력으로 무장하고 있다. 너무 방종하지 않으면서 아름다운 후렴을 짜는 능력은 덤이다.

타일러는 섬세하게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갭 밴드(The Gap Band) 멤버 찰리 윌슨에게 ‘Earfquake’ 후렴을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그 다음 그는 보컬이 포함된 곡을 쓸 때마다 찰리 윌슨을 따라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타일러의 음악 세계는 상상 속의 과거를 재현하려는 헛된 욕망이 없다. 타일러의 렌즈를 통해 철저하게 합성되고 걸러진다. 타일러가 부른 두 명의 카메오가 무대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지켜보자. 차일디시 감비노가 ‘Running Out of Time’을 부르고, 에이셉 로키가 ‘Who Dat’에서 랩을 한다. 무대가 끝나자마자 타일러는 즉시 관중들에게 두 사람을 싫어했노라 고백한다.

타일러는 능숙한 쇼맨으로 한시간 넘는 공연을 진행했다. 천식을 앓고 있음에도 그의 호흡 조절은 훌륭하다. 대부분 래퍼들과 달리 그는 배킹 트랙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는 2019년 감옥에서 자살한 제프리 앱스타인이 사망하던 시간에 공연을 하게 되었노라 불평하고, 관객이 코첼라 관계자들에게 야유해야 한다며 농담을 건네며, 에이치타운(H-Town) 샘플에 침을 뱉는다.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 속 도시처럼 보이는 배경 앞에서 초록 랜턴을 들고 등장하는 페스티벌 무대가 대체 어디 있겠는가? 완전히 독창적이다. 만화경을 들여다보는듯 하다.

초현실적이고 목가적이며, 몽환적인 풍경이다. 코첼라 페스티벌의 반짝이는 절망과 완전히 상반되는 무대다. 공연이 끝나기 전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는 폭풍우가 몰아치기 전에 마지막 곡을 소개한다. 그리고 오컬트 펑크(Funk) 곡 ‘New Magic Wand’가 스피커에서 쿵쾅거리며 흘러나온다. 악마에 홀린 듯 으르렁거리는 타일러가 코첼라 페스티벌 전체를 휩쓸며 집어삼킨다. 그런데 무대 반대편에서는 강력한 허리케인이 불어오고 있다. ‘새로운 마법(New Magic)’이라는 가사가 계속 반복된다. 타일러는 무대 위 절벽에 매달려보지만, 거대한 폭풍의 힘에 결국 세트장 밖으로 날아가버린다. 그리고 다시 일어선 다음, 발걸음을 옮긴다. 코첼라 페스티벌과 멀리 떨어진, 밝고 탁 트인 공간으로 말이다.

제프 와이스는 POW(http://passionweiss.com/) 웹진을 운영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GQ 등 매체에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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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김도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