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Music Power Station : Review, Column, Interview, etc

피프티피프티, 빌보드 싱글 차트를 겨누다

성공하기 위해 기술과 전략에 통달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김도헌
김도헌
- 6분 걸림
ATTRAKT

걸그룹 피프티피프티의 노래 Cupid가 빌보드 Hot 100 차트 100위로 진입했다. 발매 당시에는 2010년대 말 디스코 팝 유행과 도자 캣의 트렌드를 잘 조합한 노래로 무난하게 들었던 곡이었는데, 틱톡 바이럴에 탑승하며 전 세계 바이럴 히트 차트를 싹쓸이함과 동시에 데뷔 4개월만에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하는 성과를 거뒀다. 대형기획사 소속이 아닌 케이팝 아티스트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한 것은 최초의 기록이다.

틱톡에서 케이팝은 인기 장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음악 시장의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틱톡이 곡을 바이럴시키는 과정과 비교하면 케이팝의 틱톡 활용은 '챌린지' 유발에 목적을 둘 뿐 타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도 공개하는 의무적인 홍보 영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Cupid의 유행은 좀 다르다.

bae on TikTok
best pre-chorus of 2023. #fiftyfifty #sio #siofiftyfifty #kpop #kpopfyp #fyp #foryou #c5won #fypシ

첫 번째로 스페드업의 힘이다. Cupid는 원곡보다 스페드업 버전의 동영상 조회수가 세 배 이상 높다. 익명의 틱토커가 '2023년 최고의 프리 코러스'라 BPM을 높여 노래를 소개한 영상이 바이럴을 타며 원곡 유행이 시작됐다.

요즘 틱톡에서는 스페드업(Sped-Up)이라는 장르가 한창이다. 스피드 업(Speed Up)의 줄임말로, 원래 노래의 100%, 혹은 150% 이상의 속도로 빠르기를 조정한 음원을 뜻한다. 당연히 보컬은 앨빈과 슈퍼밴드의 다람쥐 목소리처럼 가늘어지고 세련된 비트는 납작한 형태로 가공된다. 이 특징이 빠르게 콘텐츠를 소비하는 숏폼 동영상의 특성과 자극적이고 재치 있는 음원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아떨어졌고, 틱톡에서만 적게는 수백만, 많게는 수십억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지금은 웬만한 가수들이 스페드업 버전의 노래를 공식 발매할 정도다.
베트남 스타가 틱톡을 정복하기까지
‘띵띵땅땅’ 리듬 아래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있다.

심지어 원곡자는 프리 코러스를 소개하며 후렴은 시작과 동시에 끊어버렸는데 그게 똑같이 유행하고 있다. 문제는 원작자 표기가 난무한다는 점인데, 사용자 마음대로 자기 음악이라 '오리지널 사운드'로 등록할 수 있는 틱톡의 시스템 때문에 확실한 집계가 어렵다. 스페드업 버전만 듣고 노래 제목을 물어보는 댓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음악 회사들이 스페드업 공식 음원을 출시하는 이유다.

pakyan on TikTok
Was filming my coffee routine and caught this gem 😳

두 번째는 노래와 전혀 관련 없는 영상이 유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피프티피프티 멤버들이 올린 안무 영상 조회수가 490만 회나 되는데 '큐피트챌린지'를 클릭해보면 대부분 노래 가사에 공감하거나 감상평을 공유하고 웃긴 상황을 만드는 영상이 인기 있다.

많게는 수백만, 적게는 몇만 단위의 틱톡 크리에이터들이 노래를 가지고 놀고 있다. 노래의 평탄함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된다. 모두가 케이팝 아이돌처럼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지고 놀기 좋은 노래'가 바이럴을 탄다.

세 번째로 틱톡뿐 아니라 음악에 관심 있는 한국 Z세대들의 외국곡 선호를 짐작할 수 있다. 틱톡에서는 해외 크리에이터들의 활용으로 한국어 가사의 원곡보다 영어 가사를 쓴 Twin 버전의 인기가 높고, 한국인들은 이 노래가 팝인 줄 알았다는 댓글을 단다. 지올팍의 'Christian'도, 최근 무섭게 인기를 올리고 있는 제이팝도 한국어가 아니라 반응이 있다고 본다.

음악 스타일로도 그렇다. 때잉, 기몽초, 직키 등 팝 트렌드에 민감한 가사 해석 유튜버들을 통해 신곡을 추천받는 이들은 대중 중에서도 음악을 많이 소비하는 집단이다. 피프티피프티의 음악도 이 유튜버들이 많이 소개한 클레어 로신크랜츠, 세일럼 일리스, 미나 오카베 등 틱톡을 주로 활용하는 2000년대생 이후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과 많이 닮았다. Cupid가 곧 국내 스트리밍 차트에 등장해 역주행해도 놀랍지 않을 것 같다.


독특한 유행이다. 무난하게 잘 만든 팝이지만 굉장히 특별한 곡도 아니고, 피프티피프티와 기획사가 어떤 대단한 전략을 활용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틱톡 바이럴을 통해 상상도 하지 못했던 거대한 성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준비된 자에게는 분명 기회가 오지만, 성공하기 위해 기술과 전략에 통달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FeaturesKPOP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김도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