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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 없는 롤링 스톤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100대 명곡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한다.

김도헌
김도헌
- 8분 걸림


매거진 롤링 스톤이 7월 20일 공개한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100대 명곡 (The 100 Greatest Songs in the History of Korean Pop Music) 순위 기사는 매우 문제가 많다. 케이팝과 한국 대중음악을 구분하지 않은 시작부터, 글을 읽다 보면 기획자들이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취재 과정, 해외가 바라보는 한국 음악에 대한 새로운 시선에 대한 자각을 갖췄는지 의문이 든다.

기사는 ‘한국 대중음악의 더 넓은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 케이팝을 히트메이킹 산업으로 엄격하게 정의하는 것을 넘어선 목록을 선정했다’는 목적을 밝힌다. 설명과 달리 결과를 보면 케이팝을 중심에 놓고 바라본 한국 대중음악의 체리 피킹 리스트다. 역사를 논하기에 케이팝 외 선정된 노래 34곡은 너무 적다. 윤심덕, 한명숙, 이미자, 펄 시스터즈, 신중현, 양희은, 사랑과 평화, 유재하, 신해철, 조용필이 케이팝 재생 목록에 산발적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의아한 순위다. 기사에 따르면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곡은 소녀시대의 ‘Gee’, H.O.T.의 ‘캔디’, 아이유의 ‘좋은 날'이다. 5위에 오른 곡은 조용필의 ‘단발머리'다. 이정현의 ‘와'가 신중현의 ‘미인’과 이난영 ‘목포의 눈물', 윤심덕 ‘사의 찬미'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 빅뱅, 투애니원, 레드벨벳, 지난해 데뷔한 뉴진스가 상위권에 위치한 가운데 듀스, 나미, 산울림, 들국화, 장필순이 등장한다.

케이팝 곡이 다수를 차지하고 높은 순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합당한 근거와 설명으로 희망하는 의의를 제대로 전했다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기사에서 한국 대중음악을 가장 잘 소개하는 부분은 선정의 변이 아니라 순위를 소개하는 도입부다. 100가지 노래와 100개의 글 중 이 노래가 어떻게 한국 대중음악의 더 넓은 역사를 이야기하고 역사 속에서 의의를 지니는지 제대로 알리는 내용이 거의 없다.

1위의 영예를 안긴 소녀시대의 ‘Gee’에서 기사는 노래가 얼마나 히트했으며 어떤 구성으로 열광을 표현하는지,  그리고 2000년대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대결 구도를 설명하는 데 그친다. 그다음 H.O.T.의 ‘캔디'는 ‘여름철 귀에 쏙쏙 들어오는 달콤한 노래의 기준'을 세웠다는 것이 선정 이유다. 빅뱅의 ‘하루하루'는 다이시 댄스의 참여로 음악 정체성을 확립했다는 이유로 7위에 올랐다.

델리스파이스의 ‘챠우챠우' (20위)를 소개하며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고백'을 언급한다거나, 김완선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선정하며 그의 커리어를 설명하다 노래에 대해선 한 줄로 마무리하는 부분은 이 리스트의 허술함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일 뿐이다.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이 ‘화려한 보컬과 멜로드라마틱한 무대 연출, 고난과 천진난만함에도 꿈을 향해 노래한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엄정화는 졸지에 ‘테크노 트로트' 대표곡을 부른 가수가 됐다.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은 전무한 수준이다. 방탄소년단의 ‘봄날'이 2017년 당시 한국 사회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 어떤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는지에 대한 해설이 없다. 조용필의 ‘단발머리'가 1980년대 해방 정신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영화 ‘택시운전사'를 소개하는 데 5.18 민주 항쟁을 언급하지 않는다. 신중현, 패티김, 한명숙 문단에 미8군 이야기가 없다. 유재하, 장필순에 동아기획이 없다. 1990년대 한국 언더그라운드와 인디 신 결과물은 선정도 적고 설명도 부실하다. 틀린 정보도 있다. ‘작곡가(songwriter)’ 양희은이 ‘가수(singer)’ 김민기를 만났다고 한다.

‘한류 스타들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수많은 국내 아티스트들이 케이팝의 인기와 다양성을 위한 길을 닦았다.’는 기획 의도에는 얼마나 부합하고 있을까. 12위 슈퍼주니어의 ‘Sorry, Sorry’가 대만에서 121주 1위를 차지하는 등 한류 열풍을 이끌었다는 사실에 대한 언급은 없고 곡에 대한 기계적인 설명만 있다. 우리가 유튜브와 빌보드로 기억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한국 가수 최초 빌보드 싱글 차트 톱 텐 진입 곡이라는 내용도 없다. 클론의 ‘꿍따리 샤바라'를 선정하고 나서 노래에 대한 설명도, 김창환 작곡가도, 대만에서의 인기도 설명하지 않는 부분은 참 이해하기 어렵다.


케이팝이 세계에서 주목받는 상황에서 제대로 준비된 기사를 내놓았다면 훌륭한 지침서로 기능했을 것이다. 차라리 제목을 ‘케이팝 100대 명곡’으로 삼았다면 그럭저럭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리스트는 실패다. 접근법, 전문성, 선정의 변, 순위 모두 엉망이다. 짚어야 할 내용을 모두 빼고 인상 비평만이 난무한다.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한다. 선정 가수와 노래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 노력했는가. 한국 전문가들에게 자문하거나 취재를 진행하는 방법을 검토해 보았을까.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100대 명곡’이라는 기획과 그들이 밝히는 배경에 비해 초라한 결과물이다.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해외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책임감이 보이지 않는다.

이 순위는 해외에서 케이팝을 다루는, 한국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음악 관계자'들의 피상적인 시각, 몰이해, 취재 부재를 투명하게 담고 있다. 이들이 해외 주요 매체에 케이팝을 소개하는 전문가들이다.

음악 매체의 영향력이 많이 줄었고, 진지하게 받아들일 게 아닌 재미로 보고 넘기는 순위라지만 내게는 전혀 재미있지 않다. 케이팝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에 관심을 두게 된 해외 음악 팬이 이 글의 내용대로 한국 대중음악을 이해한다면 슬픈 일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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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김도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