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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Power Station : Review, Column, Interview, etc

파멸의 히트곡 ③

이 노래는 오히려 더욱 혐오스럽게 느껴진다.

김도헌
김도헌
- 15분 걸림

파멸의 히트곡 ②에서 이어집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가사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Blurred Lines'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사람은 퍼렐 윌리엄스처럼 보였다. 노래의 천박함은 그에게 해당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매력적인 보조개 때문인지, 뻔뻔할 정도로 발랄한 태도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처음에는 그가 자유롭게 매력적인 창작 궤도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Blurred Lines'를 접한 그 누구도 끔찍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퍼렐에게도 시련이 닥쳤다.

여성 비하 비판을 비꼰 GQ와의 인터뷰에서 로빈 시크는 'Blurred Lines' 탄생기를 이렇게 회고했다. "퍼렐과 스튜디오에 있었는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가 마빈 게이의 'Got to Give It Up'이라 말했어요. '젠장! 저런 멋진 그루브가 담긴 노래를 만들어보자!'라고 생각했어요. 퍼렐이 연주를 시작하자마자 30분 만에 곡을 완성했습니다."

이보다 더 유쾌하게 범죄 사실을 자백하는 행위도 없을 것이다. 마빈 게이의 유족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 인용문을 2013년 말 공식적으로 표절 제기 소송의 초석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후 퍼렐과 로빈 시크의 증언을 통해 확인된 것처럼 GQ 인터뷰는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였으며, 퍼렐이 'Blurred Lines'를 만들 때 로빈 시크는 함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약과 술에 취해있던 로빈은 사실상 노래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Marvin Gaye’s Family Countersues Robin Thicke Over “Blurred Lines”, Also Claim He Stole Another Song
Gaye family also targets EMI in new legal filing

'Blurred Lines'를 둘러싼 법정 소송의 양상은 매우 다양해서 이 이야기만 가지고도 OTT 미니시리즈 한 편을 제작할 수 있을 정도다. 반드시 로빈 시크와 퍼렐 윌리엄스의 증언을 극적으로 교차 편집한 신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종종 잊히는 한 가지 사실은 바로 이들이 먼저 마빈 게이 유족에게 소송을 걸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Blurred Lines'와 'Got to Give It Up'의 유사성을 지적하자, 로빈과 퍼렐의 법무팀은 '원고의 작곡과 청구인이 주장하는 작곡 사이에 일반적인 음악 요소 외에는 유사점이 없다'라고 판결을 요구하는 소장을 제출했다.

이는 전형적인 '최선의 방어는 공격' 전략이었다. 마빈 게이 유족들을 협박하여 소송을 아예 포기하거나 신속하게 합의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상황은 그들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성적 동의, 헤픈 여자에 대한 고정관념, 민스트럴 쇼, 그리고 창의성까지 계속해서 논쟁을 만들었던 이 노래는 마치 모든 논쟁적인 이슈를 불태우기 위해 지구에 떨어진 암흑의 별처럼 보였다. 이 상황을 부추긴 것은 로빈과 퍼렐의 오만한 행동이었고, 그들은 더 큰 처벌로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퍼렐의 변호사들은 선제 소송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이 확실하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리고 이들은 법정에서 마빈 게이의 노래와 자신들의 노래가 일렉트로 피아노 그루브, 신시사이저 베이스, 카우벨 악센트 등 공통 요소를 공유하고 있으나 음표와 리듬 자체가 다르고 심지어 두 곡이 같은 키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귀가 있는 사람이라면 사실을 알았다.

http://copyright.nova.edu/blurred-lines-verdict/

기억하자. 처음 'Blurred Lines'가 나왔을 때 너무도 'Got to Give It Up'과 유사해서 많은 초기 매체들이 'Blurred Lines'를 샘플링 곡이라 착각했을 정도였다. 비록 로빈 시크가 창작을 했다고 해도 마빈 게이의 이름, 그리고 'Got to Give It Up'을 더듬었다는 사실은 마빈 게이의 정신이 창작 과정에 개입했다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스튜디오 세션에서 퍼렐은 여러 배경 소음과 부드러운 소리를 추가하여 표절 혐의를 교묘하게 은닉하려 했다.

퍼렐과 로빈은 계속 마빈 게이 유족들에게 강경 대응을 시도했지만, 판사는 퍼렐의 약식 판결 시도를 기각했고 마빈 게이 유족들은 몇십만 달러 수준의 낮은 합의금을 거부했다. 두 곡의 음악출판사가 EMI로 같아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는데, EMI는 게이 유족들은 은근히 괴롭혔다. 이에 게이 유족들은 '독특하고 중요한 구성 요소로 만든 곡의 지도를 노골적으로 베꼈다'며 퍼렐과 로빈을 고소했다.

“Blurred Lines,” Harbinger of Doom
How Robin Thicke, Pharrell, and T.I.’s cursed megahit predicted everything bad about the past decade in pop culture

2015년 3월 배심원단은 퍼렐 윌리엄스와 로빈 시크에게 저작권 침해에 대한 유죄 판결을 내리고 마빈 게이 유족에게 730만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충격을 받은 퍼렐은 '이 평결이 앞으로 음악과 창의성에 대한 끔찍한 선례가 될 것'이라 항소를 다짐했다. 실제로 'Blurred Lines' 패소 사건은 존 오츠, 한스 짐머, 리버스 쿼모 등 200여 명 창작가들이 서명한 탄원서 제출을 촉발할 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탄원서에는 "영감과 불법 복제 사이 경계를 가르는 의미 있는 기준을 제거한 이 판결이 창의성을 억압하고 창작 과정을 발해할 것이 분명하다"라고 쓰여있었다. 그러나 항소 법원 역시 마빈 게이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퍼렐과 로빈은 530만 달러 손해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의 여파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거대한 히트송에 대한 소송의 가치를 입증한 'Blurred Lines' 사태는 마빈 게이처럼 거대한 음악 유산을 카탈로그로 보유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의 재정적 가치를 입증했다. 오티스 레딩, 제임스 브라운, 스모키 로빈슨 등 인기 아티스트의 카탈로그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는 벤처 캐피털리스트들의 행렬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요즘은 팝송이 만들어질 때 다른 곡과 유사성이 있는지 법의학적 음악 분석을 거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혹은 니키 미나즈부터 서위티, 비비 렉사, 잭 할로우처럼 아예 유명한 노래를 도매로 샘플링하여 유통사에 수익을 보장하고 소송의 위협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

퍼렐 윌리엄스의 패소 이후 팝 음악가들은 과거 노래로부터 어설프게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는 대신 노래를 통으로 샘플링하여 저작권을 지급한다. Rick James의 'Super Freak'을 샘플링한 니키 미나즈의 'Super Freaky Girl'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퍼렐 윌리엄스는 법정에서는 패배했지만 여론 재판에서는 이겼다. 그의 표절 혐의는 창의적인 그의 역량과 명성을 약화시키기는커녕 강화시켰다. 퍼렐은 이성의 목소리이자 창작의 자유를 대변하는 순교자로 격상되었다. "감정에 저작권을 부여할 수는 없습니다"라 항변하던 그는 쉽게 동정을 샀다. 그러나 퍼렐과 로빈이 애초에 작곡가 명단에 마빈 게이의 이름을 넣고 유족들에게 로열티를 일부 지급했다면 법정 공방은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퍼렐 윌리엄스는 또한 2019년의 GQ 인터뷰를 통해 'Blurred Lines' 가사에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제 예전 노래 중 몇 곡은 지금이라면 절대로 쓰거나 부르지 않을 거예요. 여성을 이용할 때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남성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런 나쁜 행동을 제가 하지 않는다고 해서 노래에 써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됐죠. 제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 결과가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가 중요할 뿐이죠."

퍼렐 윌리엄스는 너무도 순수한 눈으로 이렇게 주장했다. "저는 미국이 남성우월주의 문화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몰랐어요. 제가 만든 노래 중 일부가 그 문화에 부합한다는 사실도 몰랐죠. 그래서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퍼렐을 지적하지 않았다. 거의 마술에 가까운 홍보 기술을 통해 퍼렐은 'Blurred Lines'가 창작 환경에 미친 영향과 문제 많은 메시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임에도 교묘히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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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seemingly blamed her for an upskirt paparazzi photo.

세월이 흐르고 'Blurred Lines'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며 이 노래는 더욱 혐오스럽게 느껴진다. 2013년에는 주류 미디어가 교차성을 논하거나 페미니즘적 시선을 갖추지 못했다. 미국 대중문화 전반은 본질적으로 호색적이었다. 팝 차트에서는 '브로(Bro)'라는 접두사로 정의되는 '브로 컨트리'와 '브로 스텝'이 등장했다. 2007년 2억 2,000만 달러 수익을 올린 저드 애퍼토우 감독의 'Knocked Up'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캐서린 헤이글이 영화의 메시지가 성차별적이라고 주장했다가 경력 단절 위기에 처했음에도 영화관은 저드 애퍼토우의 코미디 영화를 계속 걸어주었다. 파파라치들에게 치마 속을 촬영당한 여성 연예인들은 여전히 아침 뉴스쇼에 출연해 사과를 해야 했다.

이런 환경에서 'Blurred Lines'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외로운 목소리였다. 당시에는 노래의 잘못을 증명할 증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구체적이라기보다 암시적인 표현, '음란하다'는 표현에 의존했다. 그러나 그 후 10년 동안 이 노래와 관련된 더욱 충격적인 폭로가 이어졌다.

'Blurred Lines'가 무너지는 동안 티아이는 거의 방관자처럼 보였고, 우스꽝스러운 머리빗 춤을 추며 스케이트를 타고 지나가는 게스트 래퍼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1년 그와 그의 아내 타이니는 다수의 여성에게 약물을 투여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뮤직비디오 공개 당시 지루하고 경멸적인 연기가 노래의 여성 혐오 뉘앙스를 어떻게 뒤집었는지 인터뷰했던 모델 에밀리 라타코우스키는 2021년 회고록을 통해 어느 순간 로빈 시크가 자신의 맨가슴을 만지며 박수를 쳤다고 폭로했다. 뮤직비디오 감독 다이안 마텔이 이 사실을 검증해 주었다.

이 모든 암울한 성적 권력 역학 관계의 배후에는 2013년 사람들이 '테리 삼촌'이라 불렀던 한 남자가 있다. 'Blurred Lines'의 뮤직비디오 모든 장면은 빈 배경과 음탕한 시선, '로빈은 큰 XX를 갖고 있다'는 풍선까지 모든 면에서 테리 리처드슨에 대한 오마주였다. "다이안 마텔은 테리 리처드슨 같은 비디오 촬영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죠"라 로빈 시크는 증언했다.

다이안 마텔의 또 다른 작품, 마일리 사이러스의 'We Can't Stop'의 영감을 준 이 역시 테리 리처드슨이며 심지어 그는 직접 마일리 사이러스의 'Wrecking Ball' 뮤직비디오를 맡기도 했다. 2013년 'Blurred Lines' 뮤직비디오 제작 당시에 테리 리처드슨은 이미 성폭행 혐의를 제기받고 있던 터였다. 그를 문화계에서 볼 수 없게 되기까지는 5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이런 권력 구조가 'Blurred Lines'를 자리 잡게 한 배경이었다. 이 노래는 균열에 균열을 거듭하며 뿌리까지 썩은 모습을 드러냈다. 직장 내 성추행, 고발을 적극적으로 억압하는 권력, 연예계의 일상화된 성추행이 낱낱이 밝혀졌다. 'Blurred Lines'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재미있는' 노래가 이처럼 유독하고 방대한 어둠을 감추고 있었다면, 지금 우리는 또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그 해답을 찾고 있다.

'Blurred Lines'의 성적 동의(sexual consent) 왜곡 가사를 고쳐 노래로 만든 클립이다.

파멸의 히트곡 ①

파멸의 히트곡 ①
10년 동안 대중문화의 모든 나쁜 점을 내다본 노래다.

파멸의 히트곡 ②

파멸의 히트곡 ②
마일리 사이러스가 로빈 시크의 궤도에 진입하지 않았더라면 이야기는 진작 끝났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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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김도헌입니다.